
책 소개
이처럼 시적이고 지적인 세계: 베르나르 프리츠의 회화에 대하여 Dr. 강수미1) 1. 감각과 논리의 두 궤도 눈을 한 번 깜빡이면 레몬 빛 액체가 비오는 도시의 풍경 사이로 스르르 번져 나가고, 무지갯빛 비단실 뭉치들이 허공 속 소실점을 향해 주르륵 풀려나가는 것 같은 감각의 향연이 펼쳐진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이번에는 누군가의 꿈속에 나타나는 동양의 이미지, 이를테면 그/녀가 급행열차를 타고 중국 대륙이나 페르시아 제국을 횡단한다고 상상할 때 볼 것만 같은 속도감 있는 색채의 능선이 떠오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한여름 부서지는 햇빛 아래서 푸른 강물을 쏜살같이 헤엄쳐 나가는 어떤 생명체들의 역동적이면서 우아한 몸짓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 번, 다시 한 번 눈을 깜빡인다. 그때마다 언어로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 우리의 몸과 의식 어딘가에서 일렁인다. 베르나르 프리츠(Bernard Frize)의 세련된 색채 감각과 역동적인 붓질이 돋보이는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예컨대, 눈을 감았다 뜨는 작고 단순한 행위를 통해서도 매번 다르고, 매순간 환상적인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을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2013년에서 2014년 사이에 그린 신작 15점은 원색의 평면, 무지개 색 띠, 유기체적 형상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자극을 통해 감상자의 연상 작용을 돕는다. 또 그렇게 일회적인 아우라를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물론 프리츠의 작품들에는 분명 작가 특유의 창작 논리와 회화 개념이 존재한다. 이는 국제 미술계가 40여 년이 넘는 창작활동을 통해 성공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이 작가를 “개념적 화가(conceptual painter)”로 정의하고 그의 작업을 “과정을 지향하는 실천(process-oriented practice)”이라 명명하면서,2)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추상미술과 연관시켜 설명하는 데서 명확히 드러난다.3) 그렇기는 하지만, 예술작품 향유의 주체인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그 같은 논리나 개념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또 이 작가의 그림 앞에 섰을 때 감상자가 그런 것을 바로 인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감상자는 그 그림들이 왜, 어떻게 그려졌는지 보다는 자신의 감각기관을 타고 전해오는 화면의 풍요롭고 우발적인 질감과 운동, 빛과 색채의 변주에 고양되고 감동한다. 그만큼 프리츠의 회화는 물질적이고, 직관적이며, 감각 지각적(aesthetic)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프리즈의 미술세계를 논한 여러 이론가들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비평을 해왔다. 그 내용은 대체로 작가의 관점에 입각해서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의도, 방법론, 미적 논리, 그리고 미술사적 의의를 해석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2002년 에바 위토큭스(Eva Wittocx)는 「회화를 그리기」에서 “프리츠의 미술은 느낌을 표현하거나 현실의 파편들을 묘사하기 위한 매체로서의 회화가 아니라, 회화 그 자체에 대한 것”이라고 썼다. 요컨대 그는 과거 그린버그가 주장한 모더니즘 회화의 고유한 속성을 탐구하지만, 폴록, 로스코, 뉴먼 같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그림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특별한 감정이나 인상 등 “모든 사적인 결정조차 근절하기를 원하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4)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5년 케티 시겔과 폴 매틱(Katy Siegel & Paul Mattick)은 「미술과 산업」에서 당시 프리즈의 연작 회화 제목이 ‘공장(Usine, Factory)’이라는 점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그 미술을 해석한다. 즉 , , 같은 프리츠의 이전 그림들이 그 제목에 조응하는 재현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그의 회화는 근본적으로 18세기 이후 서구 모더니즘 미술이 실험해온 일상, 산업, 노동 등의 주제를 자기만의 개념과 방식으로 풀고 있는 “실천”이라는 것이다.5) 왜, 무엇을 근거로 그들은 이렇게 프리츠의 회화를 비평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1970년대 초부터 작가 자신이 만들고 발전시켜온 그리기의 목적과 규범이 그 비평의 기초가 되었다. 프리츠에게는 그 목적과 규범이 각 작품의 시각적 완성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이론가들이 그에 근거해서 비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 창작과 선물의 공존 우리에게 프리츠의 그림은 매우 자유롭고, 시적이며, 표현성이 강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지만, 신체가 느끼는 감각으로는 촉각적이고 청각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때부터 프리츠는 그림을 그리는 데 주어지는 “물질 또는 외적 압력에 의존”6)하면서 작가의 즉흥적 선택이나 주관적 표현이 제거된 회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 마치 모더니즘 화가들이 창작 주체의 주관성을 최소화하고, ‘회화의 평면성’ 이외에는 감상자에게 어떤 문학적 서사나 3차원 환영도 불러일으키지 않으려고 매체의 순수성(그린버그의 모더니즘미술 비평이 정식화한 바로 그것)에 복종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프리츠는 그렇게 회화 자체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근대 산업의 핵심 특성을 공유하는 생산 방식”7)으로 그림을 제작함으로써, 오히려 모더니즘 추상미술에 전제된 예술적 권위와 가상 또한 벗어나고자 노력해왔다. 이를테면 아이디어, 패턴, 붓질, 재료 및 도구의 종류와 양, 작업 시간, 심지어는 하나의 작품을 그리는 데 투여되는 조수들의 수까지 엄격하게 통제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규칙과 구조, 과정과 시스템을 각각의 회화 시리즈마다 새롭게 발명해왔다. 캔버스의 크기는 각 작품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되고, 캔버스 표면의 상태는 레진(resin)을 겹쳐 발라 매우 정교하게 세공되어야만 하며, 그 매끈한 평면 위에 미리 구상한 색 면, 색 띠, 형상, 패턴을 붓이나 다른 소도구를 써서 그려 넣는 식이다. 필요한 경우 프리츠는 여러 자루의 붓을 직선으로 연결시켜 만든 거대한 붓으로 채색을 하고, 일정한 면적을 규칙적으로 겹쳐 칠하기 위해 롤러를 쓰기도 하며, 어시스턴트들이 팀을 이뤄 패턴을 그리도록 한다. 심지어 그는 자연 현상인 중력까지도 이용하는데, 가령 그림을 뒤집어 말리면서 물감 자국이 우연한 효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이 모든 것들이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이뤄진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프리츠의 미술은 작가의 주체성(subjectivity)이 작품 제작에 개입할 가능성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사실 그것은 작가 주체(subject)의 매우 엄격하고 무거운 통제를 통해서 성공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이 여기 있다. 앞서 내가 이 글을 시작하면서 쓴 것처럼 나는 프리츠의 최근작들을 보면서 매우 시적이고, 문학적이기까지 한 감상에 젖어들었다. 그 감상은 프리츠의 그림들에 나타난 색채와 이미지가 내게 특별한 연상 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에 가능했고, 작가가 자신의 창작에 미리 설정해둔 개념이나 규칙과는 별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나는 이미 프리츠가 어떤 작가이고,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으며, 그가 자신의 미술에서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리츠 미술에 대한 무지가 그런 감상을 만들어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그림들은 내게 현대미술작품으로서의 이론적 인식보다는 미적인 것에 대한 순수한 지각 경험을 선물했다. 그 선물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많은 감상자들, 미술작품을 어떤 선입견이나 선지식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고, 그 존재 자체를 즐겁고 풍요롭게 수용하고자 하는 감상자에게 주어지는 종류의 것이다. 프리츠가 자신을 통제하면서 창작에 들이는 아주 엄밀하고 무거운 지적 노고는 그렇게 감상자에게로 옮겨가는 가운데 무지개의 스펙트럼처럼 다양하면서 가벼운 시적 향유가 된다. 그 향유는 한시적인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고, 이내 덧없이 사라지는 경험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예술의 향유로서 가치를 지닌다. 각주)----------------- 미학자. 미술평론가. 동덕여자대학교 서양미술이론 교수. 『비평의 이미지 The Art of Criticism』,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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