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애도와 찬미, 그 의미의 역전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모든 미적 “즐거움(pleasure)”이 명료하게 즐거운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예술, 사실 대부분의 심오한 예술은 완전히 편안할 수 없는 감정,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중략) 더욱이, 이러한 미적 경험은 삶의 신비, 죽음, 인간 이해의 한계처럼 정신이 사실상 완전히 파악하기 불가능한 무언가를 붙잡도록 부추긴다. Carolyn Korsmeyer, Gender And Aesthetics: An Introduction,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04, pp. 136-137. 윤진영은 곰팡이를 배양해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은 곰팡이를 발견하면 불편해 한다. 작가는 곰팡이를 바라보며 안도감을 느낀다. 곰팡이는 더럽고 혐오스럽다. 작가의 곰팡이 사진은 아름답다. 매혹적이다. 윤진영의 사진이 곰팡이를 촬영한 것이라는 ?예측했던-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당황한다. 진짜가 아닌 이미지에 불과한데도 역겨움을 느낀다. 대부분의 역겨움은 곰팡이처럼 경계(boundary)가 모호한 대상들, 불확정적이고 유동적인 대상들에 의해 유발된다. (2016), (2016)가 보여주듯 지정된 한계, 장소,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사이의 모호한 혼합물 같은 곰팡이는 독립된 동물이나 식물이 아님에도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기생(寄生)하여 살아가는 그것에 잠식되는 오브제는 온전한 정체성이 서서히 침범당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곰팡이는 마치 주체(subject)의 정체성과 단일성을 위협하는 애브젝트(the abject)와 같다. 종국에는 애브젝트-곰팡이-에 완전히 잠식된 오브제도 그 스스로 경계 없는 혹은 경계를 넘나드는 모호한 존재가 되어 우리를 위협한다. 더 이상 명확히 지정된 경계나 규칙적 흐름들이 일어나지 않으며 정체성을 잃어버린 혼합물이 되어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는 상징계(the symbolic)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존재로 변모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게 되어버리는 이 소멸해가는 오브제는 우리 자신, 주체의 안전이 위협당하는 순간을 상상케 한다. 오브제를 뒤덮은 곰팡이가 나의 몸을 감쌀 수도 있다는 상상력이 발휘될 때, 역겨움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로 이어진다. 곰팡이 대신 혐오가 우리를 뒤덮는다. 비천한 대상을 마주했을 때 갖게 되는 거부와 불쾌, 위협의 감정인 혐오는 본능적이다. 그것은 경계를 지키는 감정, 경계를 지키기 위한 억압을 감정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이자 그 경계의 취약성과 양면성을 드러내는 감정이다. 또한 미움이나 증오보다 즉흥적인 감정이기에 시선을 돌리거나 멀리 떨어지려는 시도와 같은 즉각적 반응이 동반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윤진영의 사진, 그 비천한 대상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극단적 거부와 극단적 끌림의 공존, 그것은 필연이다. 역겨움이 미적 즐거움으로 작동될 때에 일어나는 숙명은 명료한, 그러나 한계에 갇힌 언어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작품이 가진, 과장되었다고 느껴질 만큼 강렬한 매혹과 혐오의 공존은 작가의 작업 방식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윤진영은 곰팡이 균을 선택하고, 조율하고, 배양할 때 오직 시각적인 효과만을 생각한다. 그것의 성분이 가진 부정적 또는 긍정적 영향, 독성, 냄새와 촉감 등은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곰팡이는 죽음의 원인이 되는 질병-특히 호흡기로 병을 옮기는 질병-을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그것의 독성 때문에 작가 역시 곰팡이를 배양하는 작업실에 들어갈 때에는 안전 장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작가에게 곰팡이는 조형의 대상이자 미적 실험을 위한 매체이다. 오직 촬영된 이미지로만 공개되는 만큼 보여지기 위한 곰팡이를 만들기 위해 고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인식과 해석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임을 깨닫게 된다. 과장된 곰팡이 사진들, 그 이미지들을 보고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위적이다. 이미지는 부유한다. 잡을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으로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한 감정을 불러내는 기준은 무엇인가? 누가 정한 것인가? 윤진영의 작업처럼 혐오의 대상을 작품의 중심에 놓는 것은 위험하지만 매력적이다. 이러한 미술은 자연과 문명, 생명과 죽음, 종교와 과학 사이를 유동하는 메시지를 담아내며 우리가 현실에서, 최소한 미술이라는 영역에서 감추고 지워버리고 싶어 했던 무언가-진실-를 드러낸다. 윤진영의 사진 역시 우리가 결코 현시(顯示)할 수 없는 것, 현시하길 원하지 않던 것을 나타내 보인다. 윤진영의 거대한 곰팡이 사진은 과도하게 클로즈 업(close up)된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의 엄지발가락, 사람의 입, 동물의 뼈와 같다. 바타유의 표현대로 기괴하고 흉측한 형상들은 이 세계에서 형상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음에도 밀려났다. 인간의 역사는 그것들을 넘어서는 알 될 금기로 억압했다. 그러나 밀려났다 하여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제 예술가는 밀려난 것들을 보여주는 행위만으로 우리를 압도하고, 금기를 깨뜨려 세계를 요동치게 한다. 그러고 보니 ‘숭고와 역겨움은 모두 무제한적이고 무정형적이며 위협적이다.’ 경악과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초월성을 선사한다. 그것은 정서적 고통이자 쾌락이다. 괴로운 즐거움이다. 그러한 기본적인 혐오감이 미적 반응으로 승격될 수 있다는 것은 공포가 숭고로 변모하는 것만큼 역설적이다. 확실히 그것은 더 역설적일 수 있는데, 전통적인 해석에 근거하면 역겨움은 긍정적인 미적 전환을 경험할 수 없는 유일한 정서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렇지만 전술했듯, 역겨움은 몇 가지 방향에서 동시대의 “미적 취향”으로 분명히 진입했다. Carolyn Korsmeyer, 2004, pp. 144-145. 곰팡이는 오브제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깨뜨린다. 곰팡이는 오브제의 경계를 명확히 한다. 보호한다. 곰팡이가 번성할수록 원래의 형상은 사라진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형상이 가려질수록 숨겨진 진실-매 순간 파괴와 창조가 일어나는 우리의 세계-이 드러난다. 그것은 진실에 보호막을 입혀 온전히 우리에게 선사한다. 마가렛 애트우드(Margaret Atwood)의 시 「기다림 Waiting」(1995)에서 “빵을 뒤덮은 흰 곰팡이(the mildew shroud on bread)”가 죽음을 은유하듯 (2016), (2016)의 곰팡이로 뒤덮인 동물의 형상에서 우리는 생명의 끝인 죽음 이후를 마주한다. 곰팡이가 뒤덮은 무언가는 재생의 희망이 없어진 상태, 즉 존재에서 비존재로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윤진영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나 샘 테일러 우드(Sam Taylor-Wood)처럼 바니타스(Vanitas)의 오래된 전통을 재해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특히 타임랩스(timelapse) 기법을 사용한 (2015)과 (2015)에서는 눈동자만 움직이는 동물의 두상이 등장하여 몸이 서서히 굳어져 가는 죽음의 순간 혹은 영혼이 몸속에 갇힌 채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 같다. 일정한 속도로 들리는 심장 박동 소리는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에서는 동물 형상의 주재료로 숯이 사용되었는데 화장(火葬) 혹은 희생제의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 모든 상상들의 귀결점은 죽음이다. 곰팡이에게 잠식당하는 오브제가 원초적인 생명력, 야생성을 암시하는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은 삶과 죽음의 모순적 공존을 두드러지게 한다. 곰팡이가 피어나는 오브제를 인간의 두상에서 동물의 두상으로 바꿈으로써 작가는 죽음으로부터 최소한의 거리 두기가 가능해졌고, 잠시 동안이라도 죽음을 타자화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주체-의 죽음이 아니라 동물의 죽음, 동물의 해체일 뿐이라고 자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의 유효 기간은 길지 않다. 이내 인간의 정신에 ‘거대한 균열’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거대한 균열’을 피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작가는 동물의 두상에 인간의 눈을 합성함으로써 인간도 사진 속 오브제들처럼 죽음을 맞이할 동물임을 암시한다. 죽음의 운명에 직면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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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OMPOSER 목차 -이준 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 -윤진영 작가 -이문정 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 -최광민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교수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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