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빈방에 서다 사람이 모두 떠나버리고 없는 빈집, 빈방에 발을 들여 놓을 때마다 흡사 관 속에 들어가는 것 같은 서늘함을 느껴야 했다. 한 때는 가족의 희망이며 보금자리였을 공간이 이제는 모든 희망을 걷어가 버리고 절망과 회한만을 남기고 간 자리로 남아있다. 빈방의 창문은 희미했으며 그곳에 걸린 커튼은 사람이 살았었다는 나지막한 고백 같았다. 빈집, 빈방을 찍는다는 일은 맥이 빠지는 일이다. 살았던 사람들의 기가 쇄진해 버린 데다 그나마 있던 기력마저 데리고 가버린 공간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공기조차 무거워 무덤 같기도 했다. 철거 대상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는데다 미로 같았고 천정은 낮았다. 어떤 공간에 들어서니 창문도 없는 방에 부서진 침대 하나가 남아 있는데 여분의 공간은 한 치도 없었다. 그 방에서 침대를 제작하지 않으면 도저히 들여올 수 없는 구조였다. 눅진한 공기 속에서 삐져나온 매트의 속살들은 섬뜩함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 날 산꼭대기 빈집에 들어섰다. 들어서는 현관에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대개의 빈집들은 문이 꼭꼭 잠겨져있다. 그 중 문이 열린 집은 폐허의 빛깔이 선연했다. 나는 애써 아무 감정도 없이 신발을 신은 체 방문을 열어 제치고 들어섰다(때로는 열 문도 없다). 방안으로 쪽문이 나있고 안은 창문도 없이 어두컴컴했다. 그 곳에 밧줄 한 자락이 드리워져있고 그 아래 창백한 중년의 여인이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흘러 내려진 밧줄 아래로 드러난 모습이 인형 같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얼른 돌아섰다. 그 순간 어떻게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후 수습은 절차를 밟아 처리 되었다. 오랫동안 아른거리는 아픔이었다. 그런데도 내 사진은 빛이 밝다. 꽃무늬 벽지와 오렌지색 커튼과 바다를 닮은 파란 벽들은 순진하게 밝다. 더 이상 무거워 질 수 없는 오기 같은 것이 있었다. 어제 사진 찍고 간 빈집이 오늘 헐리는 것을 보는 일은 충격이었다. 건물을 제거하는 것은 사람의 기억과 인격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거의 손에 쥔 거 없이 쫓겨나다 시피 하는 철거민들에게 ‘보금자리’라는 임대 아파트를 짓고 회유의 손짓을 하지만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도시의 미관을 위해서 ‘판자촌’은 깔끔히 정리가 된다. 누구를 위한 미관이란 말인가? 간혹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진을 찍고 가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냐고 묻는데 대꾸 할 말이 없었다. ‘당신들이 살았던 곳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말 한들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어느 초여름, 그 빈집 앞에는 유채꽃과 황매화가 만발하고 있었다. 김지연
리뷰 남기기
로그인하면 리뷰를 남길 수 있어요.
리뷰 0개
아직 리뷰가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