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머 리 글 1. 어느 교수님과 대화 중에 “예전에 창(唱)을 하던 이들은 무리 중에 교육자요, 지도자였던 것, 아세요? 그는 무리에게 보다 교육적 효과를 전달하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엄선하고, 경전 속의 구절이나 정가의 노랫말을 풀어서 민요로 전달하였답니다.”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름대로 제자를 교육시키는 내게도 아주 뿌리 깊은 사명감의 정체를 느꼈었다. 좌창(坐唱)이라 함은 앉아서 부르는 노래이니, 노동요(勞動謠)와는 그 목적에서 구분된다 하겠다. 작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동요와는 달리, 창(唱)과 감상(感想)을 통하여 군자가 되기 위한 수양의 수단으로 활용하였을 것이다. 음악이 국가 통치의 주요수단이던 그 시절에, 빙 둘러 앉아 좌창(坐唱)을 부르고 듣는 일, 양반과 기녀가 함께 하던 좌창은 지금의 작은 공연을 연상시킨다. 양반들만이 즐길 수 있던 좌창(坐唱)을 중인(中人)들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를 좇았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서도좌창(西道坐唱)을 공부하고, 즐기면서 가사를 전해지는 그대로 익히다보면 저절로 그 장면들이 눈에 밟힌다. ‘공명가’를 부르면 적벽대전의 화염과 화룡도에서 관운장에게 목숨을 구걸하던 조조의 모습이 보이고, ‘초한가’를 부르면 초패왕과 한왕의 전쟁, 그리고 우미인과 초패왕의 사랑에 눈물 젖기도 한다.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반복적으로 익숙해지면서 니 그 옛날 있었던 그 일을 보다 깊이 알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제자에게 가르칠 때에도 앵무새처럼 따라하게 하기보다는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주어야 할 필요를 느끼면서 한국민족 대백과 사전을 들추기 시작하였다. 필자가 본 책 속에 나열한 자료들, 좌창(坐唱)에 대한 설명글은 백과사전과 인터넷을 통하여 수집한 글이다. 세세한 글을 책임감있게 내놓지 못함은 박학비재(博學非才)한 탓이니 더 이상의 세세함은 학자를 통하여 해결하시기를 바란다. 좌창의 설명글과 더불어 국악인으로서의 삶, 시인 아내로서의 삶, 문화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내 마음을 적었다. 근년에 남편이 11년째 운영하여 온 ‘서해시창작아카데미’에서 2년의 교육을 받으면서 나름대로 붓 가는 대로 쓴 몇 편의 글과, 시 몇 편을 함께 실었다. 내 마음 속을 드러낸다는 일이 부끄러웠지만, 전북 임실에서 성장하던 어린 시절의 고향 생각,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성장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시고 젊어서 타계하신 아버지 생각, 산고를 치루시고 나의 육신을 내어주신 어머니 생각, 문화예술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 문화원장이 된 남편을 바라보는 일 등의 단상(斷想)을 적어 보았다. 이러한 글이 누구나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으나, 그래도 국악인 박입엽의 음반, 소리동행을 6집까지 발간하면서 계보에 속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사비로 발매하는 음반이기에, 약간의 기록을 더하는 것이 내 인생에는 중요한 일이라 여겨져, 무례를 범하게 되었다. 2. 어려서 시조창과 판소리를 공부하기도 하였으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서도소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였다. 버스 속에서 우연히 들은 수심가(愁心歌)의 매력에 이끌려 서른이 갓 넘어서 이춘목 선생님을 찾아간 것이 인연이 시작이었다. 몇 년의 수련을 거쳐 당시 서도소리 전수조교이시던 이춘목 선생님과 함께 무대에 오른 것이 1990년부터였다. 그러다가 서도소리의 또 다른 명인 김광숙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이춘목 선생님과 친구사이인 김광숙 선생님에게도 자연스레 출입하며 서도창을 익혀나갔다. 1991년부터 2005년까지 출입했으니 꽤 긴 세월 문하에 있었다. 2005년에 서도소리 이수 시험을 치루고 이춘목 선생님의 이수자가 되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 박일엽’이라는 말이 자랑스러워 공연 팜플렛을 만들 때면 자랑스럽게 기록하고는 하였다. 그리고 다시 10년의 흘렀다. 힘겨웠지만 시흥시의 국악인으로 자리잡으며, 서도소리 가르치고 공연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음반을 일찌감치 내고 싶은 욕심은 있었으나, 실력이 부족함은 말할 것도 없었으나, 전통예술을 생업으로 하면서 음반 한 장 낼 여력이 안 되었었다. 4집까지는 가족의 도움으로 발매하였고, 이번 서도 좌창 음반(박일엽의 소리동행 5,6집)은 지인의 도움으로 내게 되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29호로 지정된 서도소리 계보는 한말에는 허덕선(許德善)이 유명하였으며, 김관준(金寬俊) ·최순경(崔順慶) ·이인수(李仁洙) ·김밀화주(金密花珠) 등과 같은 명창이 나와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서도소리를 떨쳤다. 김밀화주를 이은 장학선(張鶴仙)이 초대 보유자였고 이어서 김정연(金正淵) 선생이 이어 받았다. 김정연 선생과 함께 오복녀, 이은관 선생도 보유자로 지정되었는데, 현재 김정연의 후계로 이춘목 선생이, 오복녀의 후계는 김광숙 선생이, 이은관의 후계로는 김경배가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김정연 선생의 후계자 이문주, 한명순이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3호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스승 이춘목의 스승이신 김정연 선생은 온 세상을 휘젓던 명창이시면서 시조시인이시기도 하셨는데, 이어서 국악양성소 출신인 이춘목 선생께서 보유자가 되셨고, 나는 이춘목 선생님의 이수자 1호로 등록되었다. 마침 시조시 창작에도 관심이 많아 근년에는 김정연 선생님의 흉내를 내어 시조시 몇 편을 창작해 보기도 하였다. 항시 1번 이수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소리를 1등 해야지, 제일 오래 된 것만을 자랑하면 안 된다는 핀잔을 주기도 하셨다. 이 모든 일들이 선대의 스승의 그림자라도 닮고 싶어하는 마음인데, 그런 마음으로 오랜 기간 수련하여도 그 그림자도 닮지 못함이 늘 숙제다. 내가 이수 받은 뒤로 이수를 받은 사람은 최연화, 박준길, 정은희, 유명옥, 김용자, 배미숙, 이효진, 백춘자, 지수스님, 범산 스님, 유삼순, 박정숙, 임강섭 등이 이수를 받았다. 서도소리인이 많지 않은 터이기에, 이수자들이 자리잡고 서도소리의 맥을 이어 나갈 수 있어야 하겠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서성이는 서도소리, 일제 강점기 시절, 평양과 개성의 예인들이 경성을 출입하면서 뽐내던 그들의 예술세계가 지금은 고향에 발붙이지 못하고, 타지에서 서성인다. 이북오도청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은 외롭고 쓸쓸한 길이다. 예술인이 경제인에 비해서 곤궁한 삶을 살고 있고, 그 중 전통예술인들의 길이 더욱 비좁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그 중에서 실지(失地)를 연고(緣故)로 둔 서도소리인들은 더욱 그렇다. 내가 공부해온 30년 가까운 세월에 서도소리에 발을 댔다가 떠난 사람의 수가 무척 많다. 그 때보다 가창자가 약간 증가는 하였으나, 자연스럽게 번성하지 못하는 실정이 안타깝다. 이번에 해설집과 함께 발매하는 서도 좌창 음반이 서도소리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도움되었으면 좋겠다. 2014년1월22일 밀물 썰물 드나드는 시흥시 월곶포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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