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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입이 크다

학교는 입이 크다

박일환

(도서출판)한티재·2014-07-14

  • 문학
  • KDC 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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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시인의 말 내가 청소년시를 쓰는 이유 교사의 길로 접어든 지 27년이 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거쳐 지금은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참으로 많은 시간을 청소년들과 함께 보낸 셈입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가 뒤늦게 시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지도 17년이 되었군요. 역시 적지 않은 시간을 시와 더불어 살아 왔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교사와 시인이라는 역할에 바쳐 왔다면 지금쯤 꽤 괜찮은 교사와 시인이 되어 있어야 할 텐데, 돌아보면 부끄럽고 초라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을 다 바쳐 열과 성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어쩌면 가진 것 자체가 부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사와 시인이라는 두 개의 끈을 붙들고 있으면서, 아직은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로 위안을 삼곤 합니다. 그러다가 2010년에 박성우 시인이 쓴 『난 빨강』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만나게 됐습니다. ‘우리 10대들을 위한 첫 번째 청소년시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청소년들을 가장 많이 만나고 청소년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있던 교사 시인이 아니라 일반 시인이 먼저 청소년들을 위한 시를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겁니다. 교사이자 시인으로서 일종의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다는 자책감이 들면서 이제부터라도 청소년들을 위한 시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몇몇 시인이 또 다른 청소년시집을 펴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청소년시’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낯선 말이었던 것이 어느 정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이 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동안 ‘청소년소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왔지만 ‘청소년시’는 이제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시’라는 개념과 장르가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이어지게 될지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태어나 있는’ 존재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니, 가능하면 잘 살리고 키워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청소년시’라는 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를 해야겠군요. 이런저런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들은 바가 있으니까요. 그분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청소년시’라는 말이 상업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시를 책으로 묶어서 서점에서 판매한다는 측면을 놓고 볼 때, 시 역시 돈으로 교환되는 상품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이왕이면 많이 파는 것을 목적으로 할 테고, 그러한 영업 전략에서 ‘청소년시’라는 개념을 만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책이 잘 팔리지 않아서 문을 닫는 출판사들이 많습니다. 문학 분야, 특히 시집 같은 건 더욱 팔리지 않는 상품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청소년’이라는 말을 붙이면 부모들이 그런 책들을 골라서 자녀들에게 사주고, 학교 도서관에서도 우선 구입해서 비치해 놓으니 출판사로서는 솔깃한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에 작가와 시인들이 호응해서 너도나도 청소년 출판물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거지요. 이러한 지적은 상당 부분 타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비판은, 청소년들에게 그냥 좋은 시를 찾아서 읽히면 되지 굳이 ‘청소년용’ 시를 따로 만들 필요가 있냐는 겁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인들이 세상에 내놓은 무수한 시들이 있고, 그중에는 청소년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시들이 많다는 거지요. 나아가 ‘청소년용’으로 제작된 시들이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다며 시의 수준을 떨어뜨린다면 오히려 시를 망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귀담아 들을 만한 말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나라에는 ‘동시’라는 개념도 없다고 합니다. 시 중에서 어린이들이 이해할 만한 작품을 골라서 읽히고 있고, 시인들도 굳이 시가 아닌 동시를 따로 쓴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쓴다는 겁니다. 그러니 시와 동시를 구분하고, 나아가 청소년시까지 따로 떼어놓는 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비판들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나는 청소년시를 씁니다. 참, 얼마 전에는 동시집을 내기도 했군요. 그렇다면 시와 동시, 그리고 청소년시는 서로 어떤 차이와 연결점이 있는 걸까요? 이론을 들어 설명하는 건 평론가나 연구자들이 할 일이겠지만, 대체로 다들 동의하는 지점은 세 가지 모두 본질은 시라는 겁니다. 이 말은 동시라고 해서 무조건 쉽고 예쁜 말로만 써야 하는 게 아니며, 청소년시 역시 청소년의 입맛에 맞는 언어와 내용으로만 채워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동시는 어린이와 어른이 똑같이 재미와 감동을 느끼며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청소년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동시나 청소년시도 시가 요구하는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하며, 그에 걸맞은 공력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동시의 영역은 어디까지이고, 청소년시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요? 이 말은 이렇게 뒤집어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시 중에서 어린이들도 충분히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게 동시가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같은 기준으로 청소년시도 비슷하게 정의를 내려 볼 수 있겠습니다. 청소년들의 감성과 이해 수준, 그리고 그들의 삶에 밀착한 시라고 말이지요. 물론 이러한 정의가 충분치는 못합니다. 우선 청소년이라는 개념이 포괄하고 있는 범위가 모호한 측면이 있거든요.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인식 수준은 제법 커다란 차이가 있고, 같은 고등학생이라도 고1과 고3의 수준은 또 다를 테니까요. 같은 문제의식에서 동시도 유아용 동시, 저학년용 동시, 고학년용 동시로 나누기도 합니다. 또 다른 문제로는 자칫하면 소재를 청소년들의 생활로만 국한할 경우 시가 지닌 자유로운 상상력을 위축시키거나 고정시키고, 사물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나아가 인간의 삶과 우주의 비밀을 파고드는 탐구정신을 사라지게 할 거라는 겁니다. 지나치게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쪽으로만 몰고 가면 시의 세계를 좁게 인식하도록 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시는 과연 어떤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시는 이런 것이라고 정의를 내려왔지만 사실 시에 대해 완전무결한 정의를 내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시의 영역은 무한대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시의 형식 역시 원래부터 이런 것이라고 고정된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시에 대한 개념과 형식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실험정신으로 충만한 탓에 시를 쓴 사람만 이해하거나 그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신문기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다음 시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시란 이런 것이라고 미리 정의해 놓고 들어간다거나, 마찬가지로 청소년시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칫 말놀음으로 그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청소년시는 이제 막 탄생했으니 지금부터 틀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으며, 조금 더 지난 다음에 정의를 내려도 늦지 않을 겁니다. 말이 길어졌군요. 이제 내가 왜 청소년시를 쓰고 있는지를 말해야 할 차례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청소년을 위해서 씁니다. 청소년시가 아니라도 청소년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시를 접하며 살아갑니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라면 교과서에 실린 시들을 외면할 도리가 없습니다. 시험을 보고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시를 시로 대하는 게 아니라 문제풀이 대상으로 보게 되고, 더구나 자신의 고민과 전혀 상관없는 시를 억지로 배우는 동안 시는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주문 같은 것쯤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런 점이 우선 안타까웠습니다. 나 역시 교과서에 갇힌 수업을 진행하고 그 안에서 문제를 내곤 했으니,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런 내 죄를 조금은 탕감 받는 동시에 청소년들이 조금이나마 시를 가까이하면서 마음에 담아 두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한편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청소년 가운데 가장 불쌍한 청소년들에 해당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겁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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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어린 염소의 등극 어린 염소의 등극 조건반사 새들의 교실 강아지풀 별은 숨어 있는 게 아니다 독도의 꿈 자이로드롭 체르니 30번 슬픈 ㄹ 나도 변태일까? 달리는 자전거 꼭지가 돌다 괜찮은 인간 의리에 대해 후유증 털어놓지 못한 비밀 제2부 선생님은 순진해 도토리 교실 종례 시간 선생님은 순진해 공책 좋아하는 마음 말은 청산유수 우울한 지구에 대한 보고서 UFO 삼선슬리퍼 간사한 마음 비엔나소시지 미친 년 무릎담요 컴사를 날려라 어느 날의 일기 제3부 학교는 입이 크다 찔리십니까? 찔리시냐고요? 찔리실 겁니다 학교 담을 넘다가 걸렸다 웃기는 짬뽕 학교는 입이 크다 교훈 뒤집기 하파타 순 정답이 뭘까요? 운명교향곡 하필이면 배울 學 고3열차 좋아할 수 없는 이유 가여운 술래 제4부 날개의 행방 바오밥나무 화산 지대 의자는 의자다 운동장에서 바둑의 도(道) 날개의 행방 잠자는 공주가 부러운 날 돌직구 키 작은 향나무 가물치 덕 대통령감 김밥천국 책보다 거울 이상한 자매 열일곱 나의 친구에게 시인의 말 _ 내가 청소년시를 쓰는 이유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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