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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사월의책·2013-10-01

  • 사회과학
  • KDC 33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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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머리말 20대 후반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까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조부모까지 모시고 사는 전통적 대가족은 아니지만 부모와 세 살 터울의 4남매가 복닥거리며 사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족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은 그 시절치고는 흔치 않았던 연애를 통해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그렇다고 유별나게 금슬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도 않으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지나치게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우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우리 가족 안에는 딱 필요한 만큼의 다툼도 있었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족 간의 사랑도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특별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아침 7시까지 등교하라는 학교방침 때문에 통학시간을 줄일 작정으로 학교 근처에 셋집을 잠시 얻어 자취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 말고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논문 준비를 핑계 삼아 한시적으로 가족을 떠나 한 학기 동안 하숙생활을 했던 게 고작이니,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나를 둘러싼 자연스러운 환경과도 같았다. 심지어 병역조차 지금은 사라진 단기사병 제도, 즉 ‘방발이’라 비하해서 부르던 방위로 집과 군부대 사이를 출퇴근하며 복무했다. 이처럼 가족은 내가 20대 후반까지 잠시도 벗어나지 않은 울타리였다. 울타리 안에 있었을 때는 그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외부에서 사는 사람은 고아뿐이라는 이미지를 어느새 새기고 있었던 나는 그 울타리 밖의 삶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방위 소집 해제 후 유학을 떠나면서 비로소 독립을 하여 단독 가구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독립도 유별날 게 없는 과정이었다. 대단한 의지를 표방하는 선언을 통해 가족으로부터의 분리를 감행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분히 실용적인 이유로 이루어진 독립이었다. 유학을 가기로 결정은 내렸고 마침 결혼은 하지 않았다. 혼자 유학을 가지 않으려고 급하게 선이라도 봐서 결혼하는 건 무척 촌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그 시절에도 여전히 맞선이라는 절차를 통해 결혼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이미 대세는 연애로 기울어져 있었다. 당시 내가 겪은 가족으로부터의 분리는 실용적인 이유가 다분했기에 ‘독립’이란 단어는 너무 거창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가족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을 리 없다. 아무런 구체적 계획도 없었기에 가족 구성은 그냥 잠시 보류한 것에 불과했다. 가족으로부터의 분리가 우연이었던 만큼이나 결혼 보류도 무슨 대단한 ‘주의’의 산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우연을 통해 나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삶’을 시작했다. 그 시작은 ‘1인 가구’라 부르기에는 너무 거창한 것이었고, 아마도 ‘자취’라는 단어로 부르는 게 상황 묘사에 더 적절할 것 같다. 하지만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나는 외국에서 혼자 사는 삶에 쉽게 적응했다. 살림은 때로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상실감을 주기도 했지만, 언제 끝날지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지루한 공부와 달리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요리의 세계는 나름 신선했다. 혼자 사는 삶에 과도하게 적응이라도 한 것일까? 잠정적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자취’의 상황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유학을 마치고 난 후 한국에 돌아와 짧지 않았던 강사생활을 거쳐 교수까지 되고 보니 어느새 ‘자취’라는 단어가 조금은 어색한 중년이 되고야 말았다. 귀국 후 “자취하세요?”라는 질문에 반쯤은 농담 삼아 “아니요, 독립한 1인 가구입니다”라고 대꾸할 때만 하더라도 ‘1인 가구’라는 표현은 진지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1인 가구’는 사회적 문제로 격상되었다. 반쯤은 농담으로 사용하던 단어가 매우 진지한 시사용어로 탈바꿈한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사이에 이 문제적 사회 집단으로 분류되고 편입되었다. 내가 싫어하건 좋아하건 말이다. 적어도 통계상으로는 나도 저출산 고령화에 기여하는 사회 문제의 주범인 셈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매우 다양한 반응을 경험한다. 고령화 속도와 낮은 출산율이 사회 이슈로 부각될 때마다 미혼의 혼자 사는 사람은 사회의 암적 존재로 격하된다. 사회의 문제 집단인 혼자 사는 사람은 소비재 판매 기업들의 마케팅을 통과하면 순간 골드미스 또는 골드미스터로 격상되며, 찬양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통계상으로는 동일하게 취급받는 1인 가구라 해도, 이들이 모두 동일한 속성을 지녔다고 볼 수는 없다. 듀오와 같은 결혼정보회사가 1인 가구를 말할 때는 미혼의 청춘남녀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사회복지사의 1인 가구는 독거노인들을 부르는 말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편한 대로 1인 가구에 대해 이렇고 저렇고 말을 늘어놓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혼자 사는 인구의 모습은 그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결혼하지 못한 농촌 총각도, 기러기 아빠도, 돌아온 싱글도, 시집 가지 못한 노처녀도, 고독사로 발견된 독거노인도 다 들어 있다. 아마도 이 때문에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반응도 시시각각 다른지 모르겠다. 한 동료교수가 술자리에서 내게 안타깝게 충고를 한다. “이대로 그냥 가면 독거노인 됩니다. 독! 거! 노! 인! 이요.” 이런 과분한 애정은 그냥 농담으로 넘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독거노인 된다고 그렇게 나를 걱정하던 사람이 때로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여준다. 방학 내내 장기간의 여행을 다녀온 후 검게 그을린 얼굴로 학교로 돌아가면 “독! 거! 노! 인!” 했던 양반이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한다. 심지어 어떤 선배 교수는 술자리에서 “아니, 언제 국수 먹게 해줄 거야?” 하고 물은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혼자 살면 좋지 뭐. 부럽다, 부러워!” 하는 말을 던진다. 냉온탕을 오가는 주위 사람들의 변덕스런 태도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것은 처세술 때문이 아니다. 신경질 부리는 노처녀 히스테리처럼 보일까봐 걱정해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주위 사람들이 변덕스러운 것은 그 사람들이 일관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래 혼자 산다는 것이 냉탕과 온탕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삶은 때로는 자유롭고, 어떤 때는 처량하고 그런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한 사람도 매우 많다.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확고한 철학이나 이념을 추종해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혼자 사는 사람이 된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이념을 신봉해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결혼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고, 이혼의 철학 때문에 이혼을 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이혼을 택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혼자 사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종족으로 묶을 수 있는 이념이나 철학 따위는 이 세상에 없다. 모든 ‘1인 가구’를 설명할 수 있는 만능의 사회학적 개념틀도 세상에는 없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혼자 살기에 대한 이러저러한 염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이미 적지 않은 규모의 사람들이 혼자 살고 있는 사회로 접어들었다. 핵가족이 확대가족을 대체하기 시작한 커다란 변동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이미 핵가족의 시대에서 1인 가족의 시대로의 급격한 변화와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 변화를 우려의 시선으로 보건, 아니면 드디어 자기 세상이 왔다고 무릎을 치건 간에 그런 개인적 호불호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이 책은 혼자 사는 사회의 도래를 담담하게 사회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 삶의 단계 단계마다 혼자 사는 것의 뉘앙스는 달라진다. 서점에서 요리책과 함께 인문학 책을 사는 남자에게서 매력을 느끼고 혼자 사는 것에서 환상을 느낀다면, 젊고 잘생긴 남자가 아니라 늙고 추한 남자가 요리책과 인문학 책을 사는 모습과 마주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판타지의 대상인 싱글과 사회적 사실로서의 혼자 살기는 다르다. 싱글이 판타지로 다루어질 때는 상상력만 필요하다. 상상력은 현실로부터 가장 멀리 달아날 때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다. 판타지의 충족감은 현실과의 거리에 비례해서 커진다. 그러나 사회복지의 대상인 독거노인은 눈곱만큼의 판타지도 허락하지 않는 순도 100퍼센트의 리얼리티이다. 화려한 싱글에는 리얼리티가 없고, 독거노인에게는 삶의 판타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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