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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영성

식탁의 영성

이찬수 (지은이), 김재성, 법현, 전병술, 최수빈, 박태식, 박현도, 이길용, 조승헌, 이봉석, 류제동, 고용석, 김대식, 오현석, 윤법달, 유영근

모시는사람들·2013-05-05

  • 종교
  • KDC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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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책을 펴내며 인간적인 밥상을 위하여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도 먹어야 살고 무언가 ‘먹어야’ 삽니다. 심지어는 신神도 먹어야 산다는 듯, 사람들은 신을 향해 제단에 음식을 바치곤 합니다. 살면서 먹는 행위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지극히 일상적이어서인지 너무나 당연해서인지, 먹기는 하되 먹는 행위가 무엇인지 의식하지도 못할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 것인지, 내 식탁 위의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인지, 그다지 성찰하지 않고삽니다. 매일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 음식을 직접 만들 줄 아는 이도 많지 않습니다. 주로 남이 해 준 음식을 무심코 먹거나 공장이나 식당에서 대량 생산해 놓은 식품을 돈 주고 사 먹을 뿐입니다. 학교에서는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는 열심히 외워도, 요리법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가정에서의 음식은 어머니가 준비해 주는 것이 당연한 양 그저 떠넘기고 맙니다. 제과점의 고소한 빵은 제빵사쯤 되어야 만드는 것으로 여깁니다. 집에서는 겨우 인스턴트 라면이나 끓여 먹으면서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인 양 착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입시 공부 때문인지 사업 때문인지, 왜들 그렇게 바쁜지 겨우 짬을 내 후다닥 밥을 배 속에 밀어 넣듯 식사하기 일쑤이고, 심지어는 걸어가면서 또는 차 안에서 공장식 패스트푸드로 한 끼 식사 를 때우기도 합니다. 음식의 원료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과자 한 봉지에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 된장이나 고추장을 어떻게 만드는지 당연히 잘 모릅니다. 각종 채소의 이름도 모르고, 나물 종류는 더욱이나 모릅니다. 시장에 보기 좋게 진열된 고기를 그저 음식으로만 생각하지, 그 고기가 우리 앞에 오기까지 벌어진 일들은 외면합니다. 도살 현장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유통 과정에 생명이 돈으로 치환되는 현상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음식이 돈벌이 수단이 된 지도 오래되고, 음식으로 돈 버는 사람이나 기업도 많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이들도 그에 못지않게 많습니다. 굶다 못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먹던 과자 버리고 다른 아이스크림 사 달라며 떼쓰는 아이도 있습니다. 음식이 넘쳐나 그대로 버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초콜릿 과자 한 봉지가 내 앞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각종 원료들이 엄청난 운송비를 들여 모이고 보태지는 과정에 비인간적 착취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도 그다지 안중에 없습니다. 그저 지금 돈을 주고 초콜릿을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만 만족해합니다. 이 모든 현상은 먹거리를 그저 소유하고 소비만 할 뿐, 생산하고 분배하는 것은 훈련해 보지도 가르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오늘날 음식에서 ‘인간의 얼굴’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음식을 일일이 만들어 먹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이 일견 풍요로운 것 같기는 합니다. 단박에 음식을 사 먹고 나머지 시간에 일을 해서 더 많이 생산한 뒤 다시 소비하며 삽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삶을 내심 부러워합니다. 이것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일까요. 먹거리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심지어 식량이 무기화될 가능성마저 있는데도, 지천에 널린 들풀이나 열매를 구분할 줄도 먹을 줄도 모르는 삶이 과연 인간다운 삶일까요. 이 모든 일은 먹는 행위의 의미를 성찰할 기회도 없이, 그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만으로 만족해 온 데서 벌어지는 모순들입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근본적인 행위, 즉 먹는 행위의 인간적·사회적 의미에 대한 성찰 교육이 부족한 탓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의 열여섯 명 연구자들이 먹는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각도로, 가능한 쉽게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먹거리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먹는 행위가 무엇인지, 인간적인 식사와 생태적인 밥상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채식과 소식은 왜 필요한지, 밥이 누군가에게 독점되지 않고 분배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또한 수천 년 이상 지혜를 전승해 온 동서양 종교의 가르침에서 먹는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한다고 가르치는지, 종교적 위인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등을 전공자별로 하나씩 살펴보고 가능한 쉬운 표현으로 정리했습니다. 음식을 사업의 수단으로 삼으며 벌어지는 음식의 경제학 속에서 반성해야 할 것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경제학이나 정치학, 채식운동과 평화활동가의 입장을 반영하며 저마다의 생각을 모았습니다. 음식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는 생산자의 선의뿐만이 아니라 기업의 영리적 판단이 있고, 먹거리가 상품화되는 과정에 인간과 자연에 대한 억압과 차별도 깃들어 있다는 문제의식을 다 함께 공유한 결과입니다. 생명 원리가 반영되는 음식 문화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먹는 행위가 돈의 논리에 종속되지 아니하며, 모든 이가 공평하게 먹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면서, 음식의 경제학 또는 먹거리의 정치학이 공정하고 인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보다 많은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이러한 취지를 쉽고 간결하게 전하고자 여러 차례 회의를 했고, 집필자들이 서로의 원고를 읽고 토론하면서 난이도를 조율하는 과정도 거쳤습니다. 출판 과정에서도 몇 차례 교정을 하였습니다. 인간답게 먹을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이 일이 먹는 행위에서 생명의 원리를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데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먹는 행위에 평등한 인간의 얼굴과 깨끗한 자연의 모습이 동시에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더디 가더라도 음식을 직접, 그리고 생태적으로 조리하고 나누어 먹을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들을 대신하여 이 찬 수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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