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울진인 의리정신, 그 충과 효와 열 머리말 울진의 여러 동리에 가면 수령이 200~300년을 족히 넘는 느티나무, 팽나무, 참나무, 소나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나무의 허리에는 새끼줄이 휘감겨 있다. 그런 나무를 신목(神木)이라 부른다. 신목 곁에는 오랫동안 풍우를 함께 견뎌온 성황당이 있다. 오늘날, 성황당은 헐리고 신목만 남은 곳이 많지만, 예전에는 신목과 함께 성황당이 있었다. 신목 아래는 평상이 놓여져 있고, 촌로들이 모여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운다. 다가가서 울진 출신의 충신, 효자, 열녀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꾼이 되어 목청을 돋운다. 신목과 성황은 무속의 영역이고, 충신과 효자와 열녀는 유학의 영역이니, 무속의 영역에서 유학의 영역을 거론하는 셈이 된다. 매우 의아하다. 무속과 유학만을 놓고 보면 양자는 도저히 화동(和同)할 수 없는 관계이다. 무속에서는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에서는 무속을 배척한다. 의리정신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무속과 유학이 손을 잡고 의리정신을 뒷받침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의리정신이라고 하면 충?효?열 정신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충?효?열 정신을 유학사상으로만 여길 경우에는 무속과 유학이 하나가 되는 현상을 해명할 길이 없다. ‘충?효?열’이라는 명칭이 유학에서 나오기는 했어도 ‘충?효?열’의 근본 취지는 무속에서도 있었다고 이해할 때, 비로소 해명의 단서를 확보하게 된다. 울진 지역에서는 의리정신이라는 개념에 유학과 무속이 함께 관여했고, 그런 의리정신이 울진정려자 관련 설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울진의 정려 설화를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울진의 정려 설화는 정려비각의 주인공과 관련된 설화이다. 울진 출신의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느라고 정려비각을 세울 때 정려비각의 주인공은 으레 설화의 주인공이 된다. 이른바 정려 설화의 화자는 주인공이 천지신명과 교통하는 비범한 인물이라고 하며, 주인공의 행적에 화자의 가치관과 소망을 덧입힌다. 화자의 가치관과 소망은 살아 움직인다. 일개인의 가치관과 소망은 여러 화자의 입을 거치면서 집단적이고 공리적인 가치관과 소망으로 변해간다. 점점 커져가는 가치관과 소망을 두고 어찌 살아 움직인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점에서 정려 설화야말로 울진인 의리정신을 탐색하는 최적의 자료이다. 울진인 의리정신을 탐색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한가지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정려 설화의 주인공과 호흡을 같이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현장을 돌아다니면 놀라운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놀라운 현상이란 ‘신성성의 기운 느끼기’다. 정려비각의 규모나 위치도 범상치 않았거니와 설화 화자의 얼굴은 더욱 범상치 않았다. 근엄하면서도 형형한 빛으로 변해가기 때문에 이렇게 볼 수 있다. 구연 내용은 주인공이 위대한 품성을 타고났다고 하거나 주인공이 삼라만상의 기운을 받고 대자연과 소통한다고 한다. 설화를 구연하기 직전만 해도 장난기 흐르던 화자의 얼굴은 구연이 시작되면서부터 장난기가 싹 가셔진다. 사뭇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유학사상의 충?효?열에 무속신앙의 신성성이 가미되면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현재 본 조사?연구팀은 뿌듯함과 아쉬움을 동시에 맛본다. 사명을 완수했기 때문에 뿌듯하고, 놀라운 체험을 더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쉽다. 2014. 8. 30 울진인 정신 조사·연구팀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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