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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이승훈 베드로 “한국 최초의 세례자”

하느님의 종 이승훈 베드로 “한국 최초의 세례자”

최영미

(재)천주교수원교구유지재단 하상출판사·2014-06-13

  • 종교
  • KDC 9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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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글쓴이의 말 이 책의 주인공인 이승훈 성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 최초 의 세례자입니다. 이는 어린이 여러분들의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 52쪽에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나와 있지요. “정조 때에는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오면서,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행해졌던 신앙 활동이, 상민과 부녀자들에게도 널리 퍼지게 되었 다.” 그렇습니다. 동지사로 북경에 가게 된 아버지 이동욱을 따라 이승훈 성현 은 1783년 겨울 북경(베이징)에 도착해, 북경 천주교회(북당)를 찾아갔던 것이지요. 이승훈 성현은 북경 천주교회에서 예수회 출신의 그라몽 신부님을 만나, 27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돌아왔지요. 세례명은 베드 로였습니다. 조선 천주교회의 주춧돌이 되리라는 희망을 담은 세례명입니다. 1784년 봄에 이승훈 성현은 북경에서 얻은 많은 책과 십자고상, 상본과 성 물 등을 갖고 돌아온 후, 이벽 성조의 집이 있는 수표교에서 이벽 성조와 여 러 선조들에게 세례를 주며, 교회의 기초를 다져 나갔어요. 이후 정약종·약전·약용 삼형제, 김범우, 권철신·일신 형제 등이 세례를 받았고, 점차 믿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서울 명례방(명동성당 부근)에 있던 김범우의 집으로 교회를 옮겨 기도모임, 세례식 등을 갖게 되었지요. 이렇게 교회의 기틀을 다지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나가던 이승훈 성현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1801년 4월 8일에 4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셨습니다. 박해자들이 서둘러 이승훈 성현을 처형한 이유는, 무엇보다 북경에 가서 최초로 영세하고 왔다는 사실 자체를 몹시 미워하였고, 이승훈 성현을 죽여야 다른 선비들이나 신자들이 겁을 먹고 천주교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승훈 성현은 천주교회 역사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영향력이 컸던 것이지요. 한겨울, 왕복 다섯 달 가까이 걸리는 먼 길을 마다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북경 천주교회까지 가서, 세례를 받고 온 이승훈 성현의 용감한 도전과 실천은 어린이 여러분들이 본받아야 할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또한 혼자만 세례를 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십자고상과 천주교 서적 등을 갖고 와서 신앙에 목말라하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신앙을 담대하게 전한 모습은 훌륭한 모범이 됩니다. 이후 엄청난 박해에도, 하느님을 믿고 신앙을 지키고자 목숨까지 바친 순교의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교훈이 됩니다. 이 책이 조금이라도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이는 첫째로 우리나라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 덕분이며, 둘째는 이승훈 성현과 같은 신앙 선조들의 굳건한 믿음 덕분이며, 셋째는 그 사랑과 신앙을 잘 이어받으려는 어린이 여러분의 열린 마음 덕분입니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 여러분들이 신앙 선조들의 정신적 유산을 잘 이어받 아, 교회의 기둥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마 음을 모아, 신앙 선조들이 성인품에 오를 수 있도록 기도하기를 염원합니다. 아멘! 2015년 봄 글쓴이 최 영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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