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한국어판 서문 종교를 통해 인문학을 다시 본다 윤해동 유교는 종교인가, 아닌가? 혹은 종교가 정치적일 수 있는가, 없는가? 이 책은 이런 물음에서 출발하였다. 이 두 가지 질문은 식민지 시기 이후 한국에서 종교의 위상을 상징하는 것이다. 16세기 동아시아에 전파되기 시작한 천주교(학)는 그저 ‘서학’이었을 뿐, 어떤 믿음 체계를 일반화하는 개념으로 통칭되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이를 일반화하는 ‘종교’라는 개념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서구의 ‘religion’이라는 단어를 일본에서 번역한 것이다. 이 번역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후, 여기에 포함되는가 아닌가라는 기준으로 ‘믿음’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라지게 되었다. ‘유교(학)’는 이른바 ‘종교’에서 배제되었다. 유교에는 기독교와 달리 ‘신’도 ‘내세’도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유교에 그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문제의 본질이 그것의 유무에 있지 않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니 그런 것을 일부러 만들어보아도 그다지 쓸모가 없다. 유교를 종교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유교의 정치적 역할 때문이었다. 유교가 이른바 ‘종교’가 들어오던 시대에도 여전히 동아시아 사회의 지배적인 믿음 혹은 이데올로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정치에 관여할 수 없고, 정치도 종교에 관여할 수 없다는 명제를 서구인들이 가지고 들어온 것도 이와 깊은 관련을 가졌다. 이른바 정교분리 테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서구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정교분리 테제를 힘겹게 그들의 원칙으로 세워놓은 터였다. 이것은 새로운 세기가 ‘국가의 세기’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종교는 국가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제국주의 시기의 시대정신은 국내에서 경쟁을 그만두고 식민지에서 서로 협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교분리 테제는 식민지에서 국가와 종교가 협력할 것이라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이 테제는 식민지에 새로운 종교가 선교될 때에 구두선(口頭禪)처럼 되풀이하며 옹호되었다. 그러나 식민지에 선교되기 시작한 종교는 그 자체가 바로 정치 아니었던가? 어찌하여 이런 어긋남이 옹호되고 있었던 것인가? 종교는 정치적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식민지 통치 당국은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식민지에서 활동하던 어떤 ‘종교’도 또는 ‘종교가 되지 못한 종교’도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었다. 서구의 선교사들이 주로 전파하던 기독교의 여러 종파(이른바 종교)도, 유교도, 천도교도 또는 증산교나 보천교 등(이른바 종교가 되지 못한 종교=유사종교)도, 모두 정치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혹은 정치적이기를 포기하는 순간, 식민지 상황에서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식민지 조선에서 정교분리는 누구도 믿거나 지키지 않는, 그저 필요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하게 내세울 수 있는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대신 식민지민들에게는 종교에 버금가는 세속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민족주의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속적 믿음의 체계인 민족주의가 종교 혹은 어떤 초월적 믿음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종교가 되지 못한 종교 혹은 유사종교가 민족주의를 대신하여 비타협적인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곧바로 민족주의가 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종교와 유사종교와 민족주의가 서로 얽혀 있던 시공간이 바로 식민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종교’ 개념을 만들어낸 서구인들과 그것을 식민지 조선으로 가지고 들어온 일본인들과 그 전파 대상인 한국인들이 어울려 만들어낸 복합적인 시공간이었다. 그렇다면 종교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정교분리의 믿음에 비추어볼 때, 종교는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정치는 공개적이고 공적인 공간에서 기능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의 관계가 그렇지 않다는 것쯤은 누구나 훤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종교는 이미 공적인 역할을 수행해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뻔한 위선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는가? 물론 정치와 종교의 내용과 역할이 달라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종교가 사적인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공공성의 역할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렇다면, 곧 종교가 공공성을 가진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인정하게 되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게 되는가? 물론 여기에서 종교는 서구인들이 만들어서 식민지에 가지고 들어온 종교를 지칭한다. 지금 우리는 ‘종교’ 개념의 폐기에 대해서, 다시 말하면 ‘대안적 종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어떤 초월성 같은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근대적 종교 개념 혹은 ‘근대성’을 넘어서는 어떤 믿음의 체계 같은 것을 지칭한다. 이것이 바로 대안적 종교가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책에서 우리가 말하려는 바는 이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지역의 대학 제도에서 종교 연구가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히 모호하기도 하거니와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경우 종교 연구는 대부분 신학 영역에서 수행되고 있으며, 또 당연하게도 신학 연구의 일부분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렇지 않고 인문학 영역 속으로 편입된 경우에도, 철학의 하위 분과 정도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앞서 간략하게 살펴본 바 있고 또 이 책의 주요한 문제의식을 이루는 것이지만, 아마도 종교의 범위와 역할이 서구 중심적인 방식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종교의 범위와 역할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다.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이 책에서 필자들이 의도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서구적 ‘종교’ 개념에서 탈피하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종교를 다시 생각하기. 이 책의 일본어판은 ≪植民地朝鮮と宗敎≫(磯前順一·尹海東 編著, 三元社)라는 제목으로 이미 2013년 1월에 일본에서 출판되었다. 원래 계획은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출판하는 것이었으나, 일본어 원고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출간도 늦어지고 말았다. 책의 구성이나 차례에는 두 판본 사이에 차이가 없지만, 한국어판에는 공동 편자인 이소마에 준이치 교수의 보론이 추가된 점이 다르다. 보론은 ‘종교 연구의 돌파구-포스트모더니즘·포스트콜로니얼 비평·포스트세속주의’라는 제목의 논문인데, 종교 연구의 세계적 동향을 정리한 것으로서 한국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책 출판의 바탕이 된 심포지엄에서 통역을 맡아주었고 아울러 단행본의 원고들도 번역해준 김태훈, 배귀득, 심희찬 세 분의 젊은 연구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한국어판을 기꺼이 출간해준 도서출판 책과함께의 류종필 사장님, 그리고 들쭉날쭉한 여러 원고를 깔끔하게 정리해준 편집부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3년 10월 15일 편자를 대표하여 윤해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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