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문 철학에 눈뜰 때, 멘토들과 함께 그리스 신화를 읽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뱀의 해가 가고 말의 해가 왔다죠? 그것도 푸른 말의 해라고 합니다. 인생에서 청소년기는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는 가장 푸르른 시기입니다. 말은 약동하는 생명의 힘을 가장 잘 표현하는 동물이죠. 기운 찬 말이 푸른 벌판을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을 것입니다. 목가적 평화를 느끼게 해주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삶은 결코 평화로움으로 가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 후회와 비탄을 느낄 때가 많죠. 청소년 시기는 인생의 고난을 어렴풋이 경험하게 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픔이 많은 법이죠. 여러분의 아픔은 대체로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느껴집니다. 성적이라는 이름 아래 말이죠. 고통스러워 죽을 지경일 때, 아무도 자기를 이해해 주지 않을 때 누군가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 어루만져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어린 시절 놀라고 상처 받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치료해준 부드러운 손길이 어디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랍니다. 어느덧 광활한 벌판을 질주할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존재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언젠가는 따뜻한 가정의 품을 벗어나서 온전히 제 다리로만 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를 위하여 여러분은 제 맘 속에 자리한 어린 아이의 정신과 조금씩 작별하는 연습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작별은 쉬운 게 아닙니다. 처음 해 보는 것이라 다소 고통스러운 일이죠. 다행스럽게도 이 고통은 여러분에게만 부여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를 헤쳐 나갔습니다. 수많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만나는 모든 주인공들도 성장이 부여하는 좌절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답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 속에서 누군가는 성공적으로 극복하지만, 누군가는 끝내 비극적인 최후를 맡습니다. 그러나 결말에만 시선을 두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과정뿐입니다. 결말은 우리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시련입니다.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죠. 물론 그것은 신화의 형식 속에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화는 수많은 의미가 숨겨진 보고이기 때문입니다. 시련에 봉착한 사람들의 신화적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들은 성장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 영웅이나 신의 이야기라서 위화감이 드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영웅이거나 고귀한 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고통을 겪은 후 많은 사람들의 영혼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생의 거인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오이디푸스와 같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실패를 맛 본 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삶의 영웅이자 생의 거인입니다. 그는 부당하게 부여된 운명의 시련에 불평을 늘어놓으며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부여된 생의 길을 회피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 나가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테세우스는 그리스 건국의 시조입니다. 우리에게는 단군과 같은 사람이죠. 그러나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이방인의 땅에서 공인받지 못한 혼인을 통해 태어난 사생아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국 땅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자 합니다.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침내 ‘낯선 조국’ 땅에서 영웅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죠. 내가 누구인지, 나는 내가 소속된 무리에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답은 고난을 던져주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역시 꺾이지 않는 의지에서 나옵니다. 에로스와 프시케는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던져줍니다. 사랑은 달콤한 열매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아픔과 시련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문득 낯설게만 느껴지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을 알게 됩니다. 이밖에도 오뒤세우스, 센 혹은 치히로는 모두 인생이 파놓은 고난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좌절에 늪에 빠져 절망하지만 이내 그들은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죠. 극복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고난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 자유인의 정신에서 그 답을 풀이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대 그리스인들 혹은 서구 문화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자유의 정신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소개되는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모두 고난에 굴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보이는 이들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야기 주인공들의 결말보다는 시련에 대처하며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 더 눈길을 모아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직이 들려주는 굳세고도 위대한 자유인의 속삭임을 들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역시 고난에 무릎 꿇지도 회피하지도 않는 자유인이 되기를 빕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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