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머리말 2008년 보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아니 사실은 그 이전부터, 대한민국 보수들은 다문화라는 보기 좋은 탑을 꽤 오래 공들여 쌓아 올렸다. ‘아름다운 세상, 사랑과 희망의 다문화 공동체’라는 멋진 문구를 내걸고 공존과 연대와 평화를 추구하는 보수라니! 그들을 수구꼴통이라고 비웃던 사람들의 눈에는 실로 앞뒤가 맞지 않고 이상한 풍경이었겠지만, 보수들의 다문화 정책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살이 붙기 시작했고 가끔씩은 반짝반짝 빛도 났다. 지난 보수 정부의 정책 과제 중에서 가장 핵심적 역할을 맡았던 단어가 ‘다문화’였는데, 어느 누구도 왜 보수?우파 진영에서 그토록 다문화에 대해 소리 높여 외치는지 말해주지는 않았다. 더구나 다문화 담론이라면 진보?좌파 진영의 것일 거라 짐작했던 사람들에게, 보수?우파들이 주장하는 다문화주의는 참으로 낯설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은 ‘다문화주의’라는 이념을 들고 보수?우파들이 그려내고 있는 한국의 모습은 무엇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다문화주의를 그토록 소리 높여 외쳐왔는지, 대한민국 보수?우파가 지향하는 다문화주의는 ‘다문화주의’라는 비교적 폭넓은 이념적 스펙트럼의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보-좌파들이 앞으로 그려내야 할 다문화주의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해서도 함께 다룬다.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자’라는 등식이 만연하고, ‘저들’범죄자들을 돕는 ‘좌빨들’이 더 문제라고 생각했던 분들에게도, 뭔가 대답은 필요할 듯했다. 또한 민족주의를 강고한 종교처럼 여기고 받들면서, 민족을 말살하는 “다문화를 중단하라.”소리 높이시는 분들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대한민국 보수 논객들의 생각의 궤적을 찾아 헤맨 지 한참 되었다. 내 평소 생각과 상반되는 글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끝없이 반론들이 튀어 올라, 불편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글을 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원고를 마감하기 직전 우연히 조선일보 모 논설위원이 백낙청 교수의 『2013년 체제 만들기』에 대해 쓴 칼럼을 만났다. 그런데 재미있었다. 그분도 백 교수의 책을 읽다가 화가 치밀어서 “여러 번 책장을 덮었다.”고 한다. 어찌 안 그러겠나.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만큼 불편하고 불쾌한 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보수?우파들은 그 불편한 일을 꽤 오랫동안 해오고 있었다. 꾸준히 진보?좌파 진영에서 내놓는 저술들을 들여다보며, 책장을 덮기도 하고 혹은 던져버리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진보?좌파 진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진보?좌파 진영에 10년 동안 대통령 자리를 넘겨줬을 때, 보수?우파 학자들은 스스로를 다그쳐가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대선에서는 연거푸 패했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돈도 있었고 주류 언론도 곁에 있었다. 학맥이든 지연이든 잘 짜인 카르텔 안에서, 그들은 듣기 싫고 불편한 이야기를 인내심을 갖고 파고들었다. 그 노력의 결과 보수-우파들은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고, 그 힘이 박근혜 정부로도 이어졌다. 과연 그들 편에는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경제인들과 곡학아세하는 삼류 지식인들만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돈과 권력 뒤로 지식인이 줄을 서온 지 오래라 겉보기에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보수?우파 학자들은 온화하고 겸손한 모습을 하고 갑갑할 만큼 성실하게 공부한다. 비정치성의 정치성. “나는 정치 따윈 몰라요.”말하고 수줍게 웃으면서, 그들은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연구를 하고, 가시적인 성과도 낸다. 그에 반해,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지금까지 그런 불편한 공부를 덜 해온 것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 논쟁처럼 크게 두드러지는 사안에 방어적으로 대처한 연구들을 제외하면, 잘 정리된 우파 연구서를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보수 연구 혹은 우파 연구, 즉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집단의 구동 방식에 대해 파고든 연구가 이리도 안 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우파를 연구하지 않고 그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더군다나 요새는 중산층 사로잡기 혹은 좌우 경계 지우기의 전략적 효율성을 이야기하느라 다들 바쁘고, 따라서 보수-우파들에 대한 논의는 이미 한물간 어떤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한 전략이 선거용으로 쓸 임시 처방전으로는 어느 정도 통하기도 하겠지만, 보수-우파들에 대해 더욱 정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도 이기는 싸움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바로 지금이 다문화 담론 형성과 실천 과정에 대한 치열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다문화 정책은 이제 정착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데, 아직까지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보수-우파들이 다문화주의를 주류 담론으로 선택한 이유조차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되도록 많은 분들이 둘러앉아 다문화주의 및 다문화적 실천에 대한 크고 작은 질문들을 함께 던질 수 있으면 좋겠다. 끝으로, 이 책의 얼개를 처음 기획할 때 함께했던 습작당 애묘(愛猫) 선생님과 동료들의 격려를 오래 기억하고 감사드린다. 엉성했던 초고를 꼼꼼하게 읽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손봉기와 전우진에게 고맙다. 이 책이 출간되어 나오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힘써주신 상상너머 식구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언제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내 가족이 세상에서 제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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