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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한 이씨 부인은 적고 또 적어

총명한 이씨 부인은 적고 또 적어

양연주 (글), 정주현 (그림)

머스트비·2014-11-30

  • 문학
  • KDC 9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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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창의력을 길러주는 역사 인물 그림책 조선시대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 총명한 이씨 부인은 적고 또 적어 글: 양연주 그림: 정주현 1. “아버지, 이것 좀 가르쳐 주세요.” 어린 소녀가 또 아비를 졸라 대. “저번에도 가르쳐 줬잖느냐.” 다들 여자는 글을 알면 안 된다고들 했어. 하지만 아비는 딸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었지. “이미 다 외워 버렸어요. 이젠 이 책이 궁금해요.” 아, 글쎄 그 사이 책을 또 한 권 골라든 거야. 아비는 어린 딸을 무릎에 앉히고 읽어 주기 시작했어. 2. 어느 날, 딸이 방에서 노래하듯 글귀를 읊어.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고.” 아비가 그 말을 받아서 한자로 말했어. “부생아신父生我身, 모국오신母鞠吾身.” 이번에는 아비가 먼저야. “독서근검讀書勤儉은 기가지본起家之本이라.” “책을 읽으며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은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허허허.” 아비는 대견한 딸의 모습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야. 3. 그림 속 한지 위에 한시를 넣어주세요. 그림에 넣을 한시 문장 髮膚受父母 何事視若塵 이 소녀를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어. “책 욕심이 그리도 많다하지 않나.” “선비 찜 쪄 먹을* 실력이니, 여자 선비일세 그려.” 선비들만 칭찬하는 게 아니었어. 아낙들도 처녀들도 부러워했지. “여자여도 총명함이 남자한테 뒤질 게 없다지.” “어떤 짝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구먼.” 사람들은 만났다 하면 소녀를 칭찬하곤 했어. *찜 쪄 먹다: 꾀, 재수, 수단 따위가 다른 것에 견주어 비교가 안될 만큼 뛰어나다. 4. 책 좋아하던 그 소녀가 시집가는 날이야. 집안이 시끌벅적하고 맛난 냄새로 가득해. “서 씨 집안이랑 치르는 거라지.” 노릇노릇한 전을 부치던 아낙이 소곤거렸어. “아, 그 책 많은 집말이오? 수천 권이 넘는다지 아마.” 나물을 푸지게 무치던 여인네도 알은 척 했지. 연지곤지 찍은 새색시 가슴이 울렁거렸어. 얼굴까지 발그레하게 달아오르면서 말이야. 책이 많다는 말만 들어도 좋아서 가슴이 뛰는 거야. 5. 혼사 치른 새색시랑 수염 허연 시할아버지가 마주 앉았어. “『소학』*에서 어떤 구절이 네 맘에 들더냐?” “말보다 행동이 앞서서는 안 된다는 구절입니다.” 새색시가 얼굴을 붉히며 또박또박 답했지. “참으로 똑똑하고 겸손한 아이로구나. 허허허.” 시할아버지는 새색시를 무척이나 대견해 했어. 시할아버지는 소문난 최고 장서가* 집안 서명응*이고, 새색시는 이 씨네 막내딸 빙허각이야. *소학(小學): 8세 안팎의 아동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책. *장서가: 책을 많이 모아 둔 사람. *서명응(1716~1787): 조선 후기 학자로, 조선 최초로 서양의 천문학과 기하학을 연구함. 6. 빙허각이 또 책에 코를 박고 있어. 글자를 죄다 삼킬 기세야. 새색시가 이러면 어떡하느냐고? 듬직한 신랑도 함께 책에 빠져있는 걸 뭐. 책을 좋아하는 색시가 와서 신랑은 신이 났지. 책이 가득한 집안이니 새색시 빙허각도 좋고. 둘은 마주 앉아, 주거니 받거니 시를 나누곤 했어. 7. 세상살이가 만만치가 않은 모양이야. 화창한 날이 있으면 비바람 부는 날도 있잖아. 그리 잘 나가던 서 씨 집안도 형편이 어려워졌어. 벼슬에서 밀려났으니 먹고 살기가 힘들어. “이사할 수밖에 없구려.” 남편 말에 빙허각은 두말없이 짐을 쌌지. 쫓기듯 이사하면서도 책은 빠짐없이 챙겼어. 한양에서 동호 행정*으로 이사 간 거야. *동호 행정: 지금의 용산 근처를 가리킴. 8. 살림이 어려우니 항아리까지 바닥을 드러내. 느는 건 걱정이요, 한숨이지.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빙허각이야? “누에를 키워봐야겠어요.” 빙허각은 팔을 걷어붙였어. 하지만 누에가 제 알아서 자라주는 건 아니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총명함이 무딘* 글만 못하구나.’ 빙허각은 이책 저책 찾아보고, 또 생각을 기록했어. 하나씩 부딪히면서 일하다 보니 솜씨도 늘어갔어. *무디다: 매끄럽지 못하고 투박하다. 9. 그 뒤로 빙허각은 책에서 찾은 것을 한곳에 적어뒀어. 이 책 저 책 찾을 필요가 없도록 말이야. “뭘 그리 적으시오?” 종이에 뭔가를 적는 빙허각에게 남편이 물어. “어제 누에 먹이다가 생각난 것을 적어요. 적어두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또 찾게 되잖아요.” “맞는 말이구려.” 남편은 먹을 갈고, 아내는 글을 썼어. 둘은 사랑하는 부부였지만, 이럴 땐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보였지. 10. “올해는 면화가 풍년이구려.” 남편 말에 빙허각 얼굴도 솜처럼 몽실몽실 피어났지. “작년에는 키만 쑥 커서 면화가 별로 안 열렸어요. 그래서 올해는 길이가 자라면 위를 무질러줬지요.*” 작년에 적어둔 걸 보고 올해 면화 농사를 지었거든. “기록을 해두었더니 여러모로 유익하구려. 대단하오.” 남편은 고맙고 존경스러운 마음에 빙허각 손을 꼬옥 쥐었어. *무지르다: 한 부분을 잘라 버리다. 11. 집안이 어려우니 누에 키우고 차밭 가꾸고 해서 생활을 꾸려나갔어. 사실, 양반집 부인이 돈을 번다는 건 부끄러운 일로 여기던 때였지. 하지만 빙허각 생각은 달랐어. 먹고사는 일이 부끄러운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열심히 돈을 벌면서도 돈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했어. 돈은 좋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한 물건이라 여겼으니까. ‘돈이란 날개가 없는데 날아다니고, 발이 없는데도 달리는 물건이다.’ 빙허각은 이런 생각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뒀어. 12. “마님, 여쭐게 있어서 왔어요.” 김 대감 댁 삼월이가 설기떡 한 접시 들고 찾아왔어. 이맘때면 늘 같은 걸 물으러 오곤 해. 초겨울에 생일인 김 대감 생일상에 올릴 술 때문이거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맘때면 같은 걸 물어왔지. “국화꽃 두 되*를 주머니에 담아서 술독에 담아 두어라.” 빙허각이 삼월이에게 국화술 담그는 법을 알려줬어. *되: 곡식, 가루, 액체 따위의 부피를 재는 단위. 13. 새색시 옥분이가 애를 가졌대. “건강한 애를 낳고 싶은데, 조심해야 할 게 무엇인가요?”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니까 빙허각한테 물으러 온 거지. “옷을 너무 덥게 입지 말고, 너무 배부르게 먹지 말고, 무거운 걸 들지 말게나.” 어디 이뿐이겠어? 빙허각은 필요한 걸 두루 알려주고 당부도 잊지 않았지. ‘한곳에 적어서 두루 나누면 참 좋겠구나.’ 옥분이가 간 뒤 빙허각은 잠시 생각에 잠겼어. 14. 읽은 것, 겪은 것, 생각한 것, 실험해본 것을 죄다 정리했지. “이것도 유익하겠구나.” 뱃속 아기 교육부터 아플 때 응급처치 하는 법도 적었어. “이것도 필요할 때가 있을 거야.” 집안 귀신 쫓는 법까지 빼놓지 않았어. 옛글을 구해보고, 이 책 저 책 펼쳐보고, 이 내용 저 내용 따져보고, 궁금한 게 또 생기면 책을 폈어. 집안사람들이 쓴 책도 무척 요긴했지. 15. “내가 내용이 비슷한 것끼리 정리해 주겠소.” 믿음직한 남편이 나섰어. 지금껏 빙허각이 적어둔 것을 책으로 묶기로 했거든. 두 사람은 힘을 합했지. 삼월이가 묻던 음식 관련 내용도, 집안일 하는 법도 따로 모았어. 옥분이가 묻던 출산 관련 내용도, 농사짓는 방법도 빼놓지 않았지. 그밖에 것들은 그것대로 각각 정리했어. 16. “여러분을 위해 그동안 모아 온 기록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람들 앞에 선 빙허각을 남편이 자랑스럽게 바라봤어. “이 책의 내용은 건강에 주의하고, 집안을 잘 다스리고, 실생활에서 도움을 받기 위한 것들이에요.” 다들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하다는 표정이야. 삼월이도 옥분이도 더는 빙허각을 찾아오지 않아도 돼. 이 책 속에 다 있거든. 빙허각 남편은 이 책에 ‘규합총서’라는 이름을 붙였어. 총서는 책을 모아놓은 것에 붙이는 이름이야. 17. 여자들 여럿이 모여 책을 돌려보고 있어. “이 책 모르는 아낙들은 없을 걸. 다 욀 정도라니까.” “어디 아녀자들뿐인가.” 집 주인도 이 책을 들고 이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두고두고 물려줄 거야. 딸도 주고, 손녀도 주고, 증손녀도.” “어이쿠, 몇 백 년 살 건가 보네.” “나야 죽더라도 책은 남잖은가.” 너도나도 책을 베끼려고 했지. 빙허각은 오늘도 또 책을 펴들고 앉았어. “책이란 자고로 실제 생활에 보탬이 되고 여러 사람을 위해 쓰여야지.” 못 말리는 빙허각 이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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