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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인간들

두더지 인간들

제니퍼 토스 (지은이), 정해영 (옮긴이)

메멘토·2015-11-30

  • 392쪽
  • 사회과학
  • KDC 3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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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서문 ‘두더지 인간’에 대해 내게 처음 말해준 사람은 당시 열 살이던 크리스틴이라는 아이다. 크리스틴은 내가 컬럼비아 대학원생 시절 할렘 지역 방과후 개인지도 프로그램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 가르치던 학생들 중 하나였다. 우리는 매주 만났다. 나는 그 아이가 구구단 외우는 것을 도와주었고 그 아이는 내게 뉴욕의 거리 생활에 대해 알려주었다. 어느 날 아침, 우리는 리버사이드 파크가 내다보이는 안락한 인터내셔널 하우스1)1) 대학원생과 연구원, 실습생, 인턴 등을 위한 비영리, 사설 주거 시설. 홀에 놓인 푹신한 빨간 소파에 함께 앉아 있었다. 바깥 날씨는 추웠지만 볕이 좋아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우리는 따사로움과 행복을 느꼈다. 슬슬 공부에 싫증이 나기 시작하는 데다 사람들의 관심에 굶주린 크리스틴은 높다란 천장으로, 반짝거리는 피아노로, 벽화로 계속 시선을 옮기며 뭔가 기분전환이 될 만한 것을 찾았다. “우리 학교에 줄리라는 애가 있는데, 그 애는 이렇게 살지 않아요. 지하 터널에서 살죠.” 크리스틴이 말을 꺼냈다. 이 아이가 뭔가 흥미로운 얘기를 시작할 때면 항상 그런 것처럼, 두 눈이 커지며 흥분으로 빛났다. 나는 웃었다. “정말이에요. 진짠데.” 그녀가 구부정한 등을 곧게 펴고 끈질기게 말했다. “정말 터널에서 산다고요.” 나는 크리스틴에게 줄리가 친구냐고 물었다. “아뇨. 걘 친구가 없어요. 늘 꼬질꼬질하고 이상한 냄새도 나거든요.” 크리스틴이 진저리를 쳤다. 크리스틴은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익숙한 특유의 미소를 떠올리더니, 갑자기 킬킬거리며 덧붙였다. “걘 두더지 인간이에요.” 이어서 두더지 흉내를 내려는 듯 코와 눈을 잔뜩 찌푸리고 입가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수염을 표현했다. 그런데 막상 그 모습은 설치류보다 고양이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나는 웃었고 크리스틴도 따라 웃었다. 난 크리스틴의 이야기가 의심스러웠지만, 줄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물었다. 그리고 크리스틴은 내가 토요일 아침 모닝사이드 파크에 있는 그네 앞에서 줄리와 줄리 아버지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그들은 나를 만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이야기는 이 책의 소재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하의 집으로 나를 데려가 달라는 제안만큼은 한사코 거절했다. 사실 노숙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편치만은 않았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닐 때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지만, 뉴욕에 와보니 이곳 노숙자들은 거칠고 무서웠다. 내가 컬럼비아 대학원에 다니던 1989년에서 1990년 사이에 거리 곳곳에 상주하는 노숙자들의 수가 세 배쯤 늘어난 것처럼 보였고, 잔디밭을 차지하기 위해 옥신각신하는 노숙인들의 앞을 지날 때면 왠지 위협이 느껴졌다. 또한 당시에는 젊은 여자 노숙인들이 주삿바늘로 지나가는 행인을 공격하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모두들 바늘이 에이즈에 감염되었을 거라고 겁을 집어먹었다. 그러나 두 가지 경험이 노숙자들과 대화하는 것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었다. 당시 컬럼비아 대학원에 함께 다니던 로버트 메이터스라는 친구는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놀랍도록 열린 마음으로 대했고, 종종 그들을 끌어안기도 했다. 가끔은 자정 무렵 자신의 밴드와 함께 컬럼비아 대학 동상 옆에 자리 잡은 길고 하얀 관리동 계단 앞에서, 온 누리를 하얗게 밝히는 달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노숙자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 지역 노숙자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로버트는 길들여지지 않은 위험한 존재로만 보였던 사람들에 대해 내가 막연하게 품었던 두려움을 깨주었다. 또 하나의 경험은 좀 더 내가 용기를 내도록 인도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기분이 몹시 안 좋은 상태로 밖에 나갔다가 빈 깡통과 낡은 옷으로 채워진 쓰레기 봉지를 손수레에 싣고 가는 한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내게 돈을 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가진 돈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고 미소 지었다. 그때 내 눈에 맺힌 눈물을 본 그녀가 따스한 눈빛과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위로하더니 쓰레기 봉지에 손을 넣어 빛바랜 시들시들한 카네이션 한 송이를 내게 건넸다. 결국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단순히 거리에서 돈을 구걸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며칠 전에 집을 잃었다고 했다. 자식들은 친구와 함께 있으며, 그녀는 ‘깡통과 행운’을 찾아 거리를 뒤지는 중이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눈 뒤로는 거리에서 노숙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덜해졌다. 대학가의 노숙인들은 조금은 황당해 보이는 두더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는 보았지만 실제로 그들을 본 적은 없었다. 이듬해 여름, 나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뉴욕 지국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취재를 계속했다.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그랜드센트럴 역에 거주하는 많은 노숙인들이 두더지 인간을 본 적이 있거나 그들의 공동체에 가본 적도 있다고 했다. 그중 몇 명은 나를 두더지 인간들이 있는 터널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은 없었고, 나는 내심 안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노숙인이 인근에 있는 성 아그네스 무료급식소로 나를 데려갔다. 거기서 나는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 그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어요”라고 말하더니, 곧 “내려가 보진 않았고요”라며 얼버무렸다. 내가 다그치자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다고도 못하겠군요.” 그는 나를 배웅하면서 그랜드센트럴 역에서 노숙자 지원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뉴욕 시 광역교통국 경찰 브라이언 헨리 경사를 찾아가 보라고 넌지시 귀띔했다. 헨리 경사의 작은 사무실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침내 그곳을 찾았을 때 그는 다른 경찰과 함께 있었다. 내가 지하 세계 노숙인들에 관한 기사를 쓰고 싶다고 설명하자, 그들이 웃으며 말했다. “두더지 인간을 말씀하시나 보군요.” 곧이어 헨리 경사가 딱 잘라 말했다. “지하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그냥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죠.” 다른 경찰관이 자리를 뜬 뒤 내가 지금껏 주워들은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놓자, 헨리는 좀 더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노숙인들이 나를 터널로 데려다주기로 했다고 말하자, 헨리 경사는 그들의 이름을 물었다. 내가 그동안 들은 대로 터널 안의 여러 장소들이 어떤 상태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여자 경찰관이 들어왔다. 그녀는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다 얘기한 거야?” 그녀가 헨리를 나무랐다. “대체 왜 그래?” 헨리는 난감한 듯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그녀에게서 내게로 시선을 돌리고 책상에 걸쳤던 발을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일어서서 그녀를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좋아요.”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얘기해 드리죠. 그곳은 아주 커요. 말하자면 땅 밑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 셈이죠.” 다른 많은 이들처럼, 헨리도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지하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인 주 정부와 시 당국에 좌절했다. 그래서 결국 열악한 상황을 주지사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어 올버니로 가져갔다. 그는 곧 지원이 있을 테니 그때까지 조용히 있으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지원 같은 것은 없었다. 내가 학교를 갓 졸업한 신출내기라서 그랬는지, 처음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 이야기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 사람들이 당신을 놀린 거예요.” 한 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강간이나 살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터널로 유인하려는 모양이로군.” 다른 기자가 경고했다. 그러나 다른 기자들, 특히 캐런 터멀티는 내게 그 이야기를 추진해보라고 격려했다. 특히 내가 J. C를 사무실로 데려온 뒤에는 더욱 그랬다. J. C는 헨리 경사가 내게 소개시켜준 사람으로, 자칭 200명 규모 그랜드센트럴 지하 사회의 대변인이었다. 캐런과 로저 스미스 편집자는 내게 이 이야기를 계속 추적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거기다 모두들 하나같이, 심지어 분명 알 만한 위치의 사람들마저도 지하 노숙인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는 현실이 나의 의욕에 더욱 불을 댕겼다. 몇 달 간의 취재 과정에서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한 장의 서류를 입수했는데, 지하 노숙인들의 상황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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