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jayu.org
디자인 디자이너 디자이니스트: 디자인이 만연한 일상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심

디자인 디자이너 디자이니스트: 디자인이 만연한 일상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심

박경식

(주)영진미디어·2014-06-30

  • 예술
  • KDC 658.04

로그인하면 내 서재에 추가할 수 있어요.

책 소개

요즘 국내 디자인을 보면, 소위 좋은 디자인이라 불리는 것들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해주려는 분위기가 사회전반에 형성되어있다. 이를테면 해외의 - 그것도 오로지 서양 - 인지도나 트렌드, 학연/지연, 각종 공모전의 수상경력 등으로 마치 ‘우리의 디자인은 우수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듯 하다. 하지만 디자인 분야의 실상은 그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 실력이나 창의력이 아닌 부수적인 것들로 인해 디자인에 대한 좋고 나쁨이 판단되는 이 시대에 디자인의 우열을 가리기는 더욱 어렵고 모호하게 되어버렸다. 설사 디자인뿐이겠는가 하지만 말이다. 디자인은 이제 경영과 마케팅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 요소가 되어버렸다. 국내 대기업들의 홍보전략을 살펴보면 여실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심지어, 자동차 제조사들도 안전, 연비, 승차감, 가격까지 뒷전으로 한 채 오로지 디자인에만 승부를 걸고 있다. 몇 년 전 삼성전자와 애플이 치열하게 다툰 법적 공방도 결국 디자인에 대한 싸움이었고, 지금도 기업들은 디자인 우위를 가리느라 거액의 돈을 디자인 개발에 쏟아 붓고 있다. 기업은 이제 디자인 없이 생존할 수 없다는 의미인데, 이는 디자인의 높아진 위상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디자인이 더 이상 디자이너에게 전적으로 맡겨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디자인은 곧 클라이언트가 이미 수립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에서 비롯된 것인데, 거기에 마케팅 전문가들이 내린 결정으로 디자인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 작업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경쟁 입찰로 수집된 디자인 회사의 작업 안들을 짜깁기해 나중에 채택된 디자인 회사에 “이렇게 만들어주세요.”라며 도안을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안 그래도 치열한 분야를 더 약육강식으로 만들고 있는 경쟁 입찰. 기업들은 대외적으로 좀 더 투명하고 공정한 디자인 업체 선정방법으로 입찰을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디자인은 본래 아이디어 싸움이고, 독창성과 창의성이 함축된 일인데, 비교 우위의 객관적인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 아이디어보다 더 좋은가? 더 열등한가?’를 어떻게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경쟁입찰은 바로 그런 불가능한 기준을 억지스럽게 끼워 맞춰 업체 선정에 나선다. 결국, 입찰을 통한 선정 기준이 ‘일정 -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는가 -’과 ‘가격 - 얼마나 싸게 할 수 있는가 -’에 매달려 있어 본심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또한, 시안까지 요청하는 업체들이 있어 더욱 심각하다. 결과로 이어질 디자인 방향에 대한 시안을 - 다수의 디자인 기업에 - 실제로 요청한다. 결국 참여 회사들은 디자인을 새로 만들어 고스란히 클라이언트에게 바치는 셈이다. 정말 구제불능인 클라이언트들은 취합된 디자인 시안을 모아서 마치 짜깁기하듯 최종 디자인 방향을 결정짓기도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 기업의 모습이나 목소리를 창조하는 일이 폴 랜드Paul Rand나 티보 칼맨Tibor Kalman 같은 옛 디자인 거장들의 일이었다면,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클라이언트가 미리 짠 대본에 대사를 읊는 정도의 일만 한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대부분의 작업들은 독창적인 디자인이나 소통 방식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이전에 성공한 전략에 기대어 ‘복제’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를 기업측에서는 재정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정책으로 정당화하는데, 결국엔 디자인을 획일화시키고 끝내 디자이너를 단순 기술 직종으로 전락시키는 것밖엔 안 된다. 한편, 디자인 분야의 전문화와 세분화로 인한 결과로도 볼 수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아이덴티티 개발만 해도 CI기업 아이덴티티부터 UI대학교 아이덴티티, TI서체 아이덴티티, HI병원 아이덴티티 등 디자이너들 스스로가 불필요하게 분야를 세분화시켜 자신들의 설 자리를 점점 좁히고 있다. 닭강정이나 돼지국밥처럼 우리나라 디자인은 유행에 아주 민감하다. 몇 년 전 국내에 불었던 ‘더치 디자인’의 유행은 어느덧 위력을 잃고 좀 더 말초적인 - 그렇다고 더 좋은 디자인은 아닌 - 디자인들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의 등장으로 싸이월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처럼 유행이 지나면 흔적조차 남지 않는 게 우리나라 디자인이다. 아쉬운 것은 여기서 드러나는 좋지 않은 모습이다. 이는 마치, 불빛이 환하면 모여 들었다가 불빛이 꺼지면 다른 빛을 찾으러 다니는 나방의 습성과도 같아 보인다. ‘서비스 디자인’이 바로 그런 유행을 선도하는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다. 몇몇 디자이너들은 브랜딩, 기업 아이덴티티를 치환할 분야라 말할 정도로 맹신한다. 물론 서비스 디자인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시각 디자인과 브랜딩, 기업 아이덴티티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수용하고 디자인의 또 다른 갈래로 여겨야 한다. 닭강정, 닭갈비, 찜닭 중 요즘 대세는 단연 닭강정이다. 찜닭을 파는 식당은 그래도 몇 개 남아있지만, 닭갈비집은 여간 찾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유행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반짝하는 유행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그라진다. 단언컨대 - 이 역시 유행하는 토시인데 - , 몇 년 후 해석적 디자인Interpretive Design이 국내에 유행해 너나 할 것 없이 해석 디자인, 해석 디자인을 외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부디 이 책을 기억하기 바란다. 기왕 이야기한 김에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자. 요즘 디자인 공모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렇다면 사람들은 공모전에 왜 참여하는가? 아마 학생들이나 일을 갓 시작한 새내기 디자이너들이 누군가에게 인정 받기 위해서 공모전에 응모하는 경우가 통상적일 것이다. 수상실적이 경력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끝내 취직하는데 도움되는 것에는 큰 불만이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내 작업을 보고 다른 사람 작업과 비교해 우위를 정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혹여 수상이라도 하게 되면 마치 등단한 듯 착각에 빠지고, 수상하지 않으면 실력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테니 말이다. 거기다가 언제부턴가 ‘iF’나 레드닷 같은 국제적인 디자인 공모전에 글로벌 기업들이 가세해 기업화된 이런 수상기관들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공모전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만약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거나 수상을 위해 디자인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느니 차라리 재능기부를 하거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소신 있는 후원자를 모집해 자신의 이름으로 디자인을 실현시킬 방도를 찾는 편이 훨씬 현명하겠다. 이 책은 국내 디자인을 비판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10년 남짓 국내 디자인에 몸 담은 한 개인이 느끼고 경험하고 고민해 나름 정리한 생각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불경기 속에 한가하게 이런 잡념을 한다고 생각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디자인이 주목 받고 있는 요즘 한국 디자인의 위상을 한 단계라도 더 높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2006년부터 국내, 국외 다수 디자인 간행물에 기고한 글들을 정리해 모았다. 디자인에 대해 쓰고, 학교에서 디자인을 가르치고, 직접 일로도 하면서 정리한 생각들인데, 이제 겨우 십 년 남짓한 세월이지만,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향로를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인 셈이다. 그런데 컴퓨터 화면에서 원고들을 하나씩 열어보니 대부분 인터뷰 형식의 기사였는데, 소위 ‘잘 나가는’ 디자이너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작업을 보여주는 뻔한 형식의 글들이었다. 대게 이런 글들은 쓰고 나면 두 번 다시 보기 조차 꺼려진다. 억지스러운 과찬과 겉치레가 대부분이어서 쓰는 것도 민망하지만, 자신이 쓴 글임을 알고 다시 읽어보는 것도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굳게 마음 먹고 집에 혼자 있는 주말에 그 글들을 다시 읽었는데, 역시 손발이 오그라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보는 내내 몇 번이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마치 과거의 잘못이 드러난 듯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글을 읽다 보니 당시에 고민하고 있었던 디자인 이슈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고 스물 몇 편의 원고 중…

리뷰 남기기

로그인하면 리뷰를 남길 수 있어요.

리뷰 0개

아직 리뷰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