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머리말 나는 1946년 경북 경산에서 빈농(貧農)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나는 나이차이가 46세나 된다. 옛날에는 거의 손자라 해도 믿을 나이였다. 위로 형님 두분이 있었지만 모두 어릴 때 돌아가서 나는 사실상 독자로 자랐다. 내가 다섯 살때 아버님께서 청주에 있는 5촌 당숙 댁으로 양자(養子)로 입양(入養)이 되시면서 나는 사실상 고향인 청주에서 자라게 되었다. 극심한 가난속에서 중학교 진학조차 할 수 없어 초등학교 졸업후에 바로 시내에 있는 양복점에서 보조로 시작하여 20세가 될 무렵엔 재단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자가 되었다. 23세에 청원에 있는 대농(大農) 집안의 딸 오경자 씨를 만나 결혼하여 슬하에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낳아 길렀다. 평생을 양복점에서 양복을 만드는 일을 했으나 우여곡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중동(中東)의 사우디에서 건설 노동자로 외화를 벌어서 재기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2전 3기 끝에 신림동에서 GQ양복점을 창업(創業)하여 30여년을 일하였다. 가난했던 시절, 나는 어떻게 해서든 성공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1등 신랑, 1등 아빠가 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열심히 산 대가가 50대 중반이 다 되어 시작한 건축업을 통해 꽃을 피우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은퇴를 생각할 때 나는 새로운 일을 하여 더 활기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운이 아니다. 30대 시절 신림동, 척박하고 가난했던 동네에서 지역을 위해 새마을 운동을 하며 수십년간 쌓인 봉사와 신뢰의 관계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부터 어려운 일을 많이 겪어서 봉사하고 베푸는 것을 주 목적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지역일에 많이 관여하게 되었고 신림 5동의 동명(洞名)이 바뀔 때 신림5동 이름 보존(保存)을 위해 노력하여 결국은 ‘신림동’을 지켜낼 수 있었다. 지금도 현역으로 건축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 지역일을 돕고 있다. 최근엔 한국노인인권협회 관악지회장 직을 맡으면서 노인 빈곤 문제, 인권 문제 등을 위해 봉사의 영역을 확대하려 한다. 나와는 늘 가깝게 지내며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배정웅 회장님이 2011년에 관악구에서 자서전을 출간했는데 이번에 나를 추천하여 갑자기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내가 배움이 짧아서 직접 쓰기 어려웠는데 제작을 맡은 희망사업단 유명종 대표가 내 이야기를 잘 듣고 여러 가지 제작에 도움을 주었다. 중년에 온 큰 건강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나와 함께 살아준 아내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하다. 그리고 각자 독립하여 가정을 일구고 후손을 낳아 기르고 있는 사랑하는 두 딸과 아들 가족 모두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2017년 신림동에서 저자 최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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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머리말 _ 1부. 가난의 시절(時節) 1. 가난한 집안의 외아들이 되다 _ 2. 학업을 중단하다 _ 3. 양복(洋服) 기술자가 되다 _ 4. 결혼(結婚) _ 5. 창업(創業)과 시련 _ 2부. 서울, 제2의 고향 6. 상경(上京), 새로운 도전 _ 7. 신림동에 정착하다 _ 8. 두 번째 실패 _ 9. 중동(中東)으로 가다 _ 10. 다시 시작하는 양복점 _ 3부. 섬김과 봉사의 여정 11. 지역사회를 섬기다 _ 12. 아내 치료를 위한 헌신 _ 13. 건축업에 도전하다 _ 14. 가족(家族) 이야기 _ 에필로그 _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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