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지은이의 말 신의 본질은 하나다 이 책은 성당이나 교회에서 영세를 받지 않았거나, 영세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교회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만들었습니다. 신은 창조자로서 본체론적으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의 존재Sein와 비존재Nicht-Sein를 통합하여 하나의 관점에서 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과 세상, 정신과 물질, 존재와 비존재는 결코 둘로 나누어져 있지 않습니다. 서구에서 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궁극적인 실재’인데, ‘궁극적인 실재’는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현현하지만 그 본질은 하나입니다. 이를 바다에 비유해 보지요. 바다에서는 파도가 일고 물결이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든 물(바다)의 요소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는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나는 일본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동양의 지혜를 통찰하게 되었고 서구 그리스도교의 믿음 체계를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종교적인 모델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적 모델에 따라 자기 자신과 지금 사는 세상을 설명하고 해석합니다. 모델21이라는 것은 요구(원망)로 생겨난, 그야말로 유형일 뿐이지 결코 궁극적인 실재 자체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학자들이 다루기 어려운 선례와 범례를 설명하기 위해 어떤 모델을 만들었다고 가정할 때, 우리는 이 모델이 결코 핵심이 아니며 해석을 돕기 위한 표본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따라서 이런 모델은 새 이론이 등장하면 버리거나 바꾸어야 합니다. 이를 종교에 대비해 볼까요? 종교에서도 이런 모델을 신자에게 보여줍니다. 세상의 시각과 시대정신이 바뀌고 변했다면 종교 역시 변화의 조짐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도권 종교들은 새 모델을 제시해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시대정신의 확산을 막고 진화를 지체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기존 그리스도의 교리와 많이 다르다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나 역시 이 점을 깊이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기존 그리스도교에 대해 약간은 도발적으로 보일 수 있는 태도와 견해를 저변에 깔고 종교와 신비주의에 관해 새로운 대화를 나눈 것은 현존하는 종교 관념을 평가절하 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단지 낡고 새롭지 못하며 시대의 유행에 뒤처진 묵은 교리들을 다른 시각에서 조명해 보고 싶을 뿐입니다. 기존 종교의 명성을 떨어뜨리고 비난하기보다는, 이런 통찰을 통하여 존재의 현존하는 의미를 밝혀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장기간 사목 활동을 하면서 많은 이를 만났는데, 그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대화를 원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교적인 믿음의 길로 가고 있는 이들이 나의 책에서 힘과 원기를 북돋고 도움을 받았으면 합니다. 오늘날에는 어떤 종파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경건한 종교적 믿음을 지닌 사람도 많지요. 이들에게도 이 책이 유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나는 왜 사는가? 예순, 일흔 아니면 여든 살까지 사는 동안 나의 생이,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보잘것없는 작은 먼지 알맹이에 불과한 이 지구 한 귀퉁이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지 늘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동양의 영성을 체험하면서 영성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였고, 동양의 영성이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와 다르지 않고 절대적으로 동등함을 깨달았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신비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찾았던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신비주의는 위기에 빠진 서양 신학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와 힌두교에는 신앙교리성8이라는 기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톨릭에는 인간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규정하는 신앙교리성이라는 기관이 존재하지요. 시대정신은 늘 쇄신을 요구하고, 신비가의 경험과 지혜를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음에도 종교 안에 이런 부서를 두면서까지 신자들의 믿음을 제한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물론 동양 종교도 믿음 체계와 종교적인 실행 부분에서 어두운 면이 있지만,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지혜로운 신비가의 신비체험으로 종교가 성장하고 발달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연인가? 운명인가? 나는 지금 부르스펠데Bursfelde 수도원(옛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마침 이곳에서 명상 코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수도원은 중세 시대 종교개혁이 처음 시도된 곳 중 하나입니다. 신비적인 믿음이 팽배하던 때에 평신도들은 경건한 신앙 형태, 즉 ‘새로운 경건성die devotio moderna’9을 적극 받아들였는데 그 운동이 이곳 수도원에까지 미쳤던 것입니다. 부르스펠데의 개혁운동은 여러 곳으로 퍼졌고, 특히 베네딕도 수도원은 이를 받아들여 명상적인 기도 방식과 전례 예식을 아침과 저녁의 개인적인 명상에 끼워 넣었습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몇백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이러한 성향의 신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관상 기도를 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였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종교의 새로운 융합과 새로운 성향이 이 책을 통해서 더욱 고무되기를 바랍니다. 빌리기스 예거Willigis Jae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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