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사람은 불안 속에서 외로움을 끌어안고 산다 과거 절이라는 곳은 지역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장소였습니다. 시주님을 위해 법회를 열고 묘지를 지키는 역할만 하는 곳이 아니었지요. 에도 시대에는 데라코야(寺子屋)라는 학교를 열어 교육 기관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승려들은 때로는 시주님들의 상담 상대가 되어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을 해드렸고, 마을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요. 절의 경내는 언제나 누구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논밭에서 일하던 마을 사람들이 잠시 쉬러 오기도 하고, 저녁이 되면 남자들이 모여 서로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또 동네 꼬마들은 틈만 나면 경내로 놀러 왔지요. 해가 질 무렵이면 주지 스님은 “곧 해가 떨어질 테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려무나”라며 아이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주지와 승려들이 항상 지켜봐 주는 경내는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놀이터이기도 했지요. 마을에 재해가 일어나면 절은 피난처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태풍이 불거나 해일이 밀려오면 사람들은 일단 절로 피난을 갔습니다. 절에 가면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가 준비되어 있었지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니 쓸데없는 불안에 휩싸일 일도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절은 지역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자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였습니다. 절이 맡았던 중요한 역할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오갈 데가 없는 아이들을 맡아서 키우는 역할이었지요.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어머니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키울 수 없게 된 아이들, 양친이 모두 타계해 고아가 된 아이들,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아이들을 맡아 학교에 보내면서 키웠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아동 보호 시설 같은 역할을 했지요.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일입니다만, 시주님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비록 자신이 맡아서 키울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자신의 밭에 서 딴 채소와 쌀을 절에 보냈습니다. 지역 사회가 하나가 되어 아이들을 소중히 키웠던 것이지요. 절에 맡겨진 아이들은 동자승으로서 승려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경내 청소를 돕고 심부름을 하는 등 함께 생활하면서 무엇이든 했습니다. 마치 한 가족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주지 스님이 아버지를 대신했고, 젊은 승려는 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끼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고 학교에도 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만 보면 참으로 축복받은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의 외로움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사별이든 생이별이든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진 아이들의 마음은 허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자신을 안아 줄 사람도 없고, 마음껏 울 수 있는 장소도 없었지요. 반항기가 되어도 친아버지에게 하듯이 스님에게 반항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마음속에 외로움과 불안을 가득 끌어안은 채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은 하나의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외로움을 끌어안고 산다. 밀려드는 불안 속에서 괴로워한다’는 진실 말이지요. 열네 살이나 열다섯 살이 되면 아이들은 진로를 선택합니다. 마을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아이도 있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아이도 있습니다. 혹은 출가해서 승려가 되기 위한 수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주지 스님은 따뜻한 눈길로 아이들을 지켜봤습니다. 수행의 길을 선택한 아이에게는 부모 대신이자 스승이 되었습니다. 절을 떠난 아이에게도 주지 스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승려의 길을 걷지 않더라도 인생 그 자체가 수행임을 가르쳤습니다. 매일 좌선을 하지 않더라도 항상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인생을 올곧게 살기 위한 길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쳤습니다. 주지 스님은 어른이 되어 가는 아이들에게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인생은 불안이라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과 같단다. 외로움이라는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오지. 하지만 그런 불안과 외로움이 있기에 인간은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란다. 불안과 외로움은 부정적인 감정일지 모르지만 어떻게 해야 그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꿔 나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살아야 한다.” 부정적인 것을 어떻게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 나갈 것인가. 바로 이것이 선禪을 기반으로 한 발상의 원점입니다. ‘불안 따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외로움 같은 건 느껴 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저는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마음속에 엉겨 붙은 그런 감정들은 때때로 공포심으로 우리 자신을 엄습합니다. 짓눌려 버릴 것 같은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불안, 외로움과 싸우며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정면으로 맞서고, 때로는 외면하면서 살아갑니다. 불안을 떨쳐 내기 위해 싸울 때도 있습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도망칠 때도 있습니다. 외로움을 숨기려고 본의가 아닌 행동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결코 그런 행동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면으로 맞서기도 하고, 벽을 뛰어넘으려고 발버둥치기도 하고 혹은 도망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밀고 때로는 당기면서 인생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니다. 무작정 불안을 떨쳐 내려고 할 필요도 없고, 외로움에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당연히 우리 곁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십시오. 불안과 외로움에 잘 듣는 약. 그런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런 약이 있다고 해도 처방전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저것 마음의 약을 시험해 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인생은 그런 것입니다. 제가 가진 약상자를 열어 보고 발견한 것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제가 수행하면서 배운 점, 많은 사람의 고민을 들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처방입니다. 이 가운데 여러분에게 잘 듣는 약이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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