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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해요, 미스 젬!

부탁해요, 미스 젬!

주희서 (지은이)

Fioret(피오렛) :삼양출판사·2017-11-28

  • 383쪽
  • 문학
  • KDC 8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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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31. 진실 게임(2) 먼지 낀 환풍기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카피레가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입구를 제외하면 밖과 이어진 곳이라곤 저 손바닥만 한 환풍기와 천장에 뚫린 구멍이 다였다. 본은 뛰어난 기사지, 원숭이나 메뚜기가 아니었다. 2층 높이를 점프해 천장까지 올라가는 건 무리였다. 또 여기 갇히는가. 또 실패하고야 마는가. 카피레는 머릿속이 진흙탕이 되었다. 실험관에 갇혀 유리 놈의 조롱을 받아야 했던 그 날의 기억이 해일처럼 덮쳤다. 말없이 닫힌 문을 바라보던 본이 불쑥 뱉었다. “귀 막고 기다리십쇼.” “……뭐?” 생각할 틈도 없었다. 본이 그대로 멧돼지처럼 문을 향해 돌진했다. 곧이어 쿵, 하는 소리가 터졌다. 벽이며 천장 할 것 없이 부르르 진동했다.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카피레는 눈을 의심했다. 철문이 발로 밟은 음료수 캔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못마땅한 낯으로 어깨를 돌리던 본이 “흐읍!” 하고 숨을 들이마시곤, 찌그러진 문짝에 주먹을 내질렀다. 크고 무거운 것이 나자빠지는 소리가 고막을 땅땅 때렸다. 무시무시한 충격파에 카피레의 앞머리가 위로 풀풀 날렸다.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콜록콜록하며 눈물 콧물을 닦아 내면서도, 카피레는 어안이 벙벙했다. 반파된 문 너머로 시커먼 복도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이 카피레에게 눈짓했다. “얼른 튑시다.” 오늘따라 본의 전신 근육이 평소보다 단단해 보였다. 얼굴에 늠름한 기운이 그득했다. 백전무패의 영웅이 강림한 양, 이보다 더 든든할 수가 없었다. 때맞춰 실험관에서 붉은빛이 깜박였다. 문을 부수는 과정에 뭘 건드렸는지 애애앵, 하는 경고음도 울렸다. 카피레가 부리나케 본의 뒤를 따랐다. 둘은 미친 듯이 달렸다. 계단을 넘고 저택 뒷문을 빠져나가 우거진 숲을 헤쳤다. 저택이 나무에 가려 꼭지만 겨우 보일 즈음에야 둘은 달리기를 멈추었다. 카피레가 나무를 짚고 간신히 섰다. 다리가 금방 부러질 것처럼 후들거리는 것은 물론,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듯 숨이 찼다. 한 발자국만 더 디뎠다간 폐가 터져 죽을지도 몰랐다. 그에 반해 본은 호흡만 약간 거칠 뿐,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본이 습관적으로 카메라와 무기, 기타 등등 소지품을 정리하다가 멈칫했다. 낡은 손수건에 꽁꽁 싸인 손가락 때문이었다. 퍼뜩 지나간 생각에 본이 카피레를 불렀다.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 손사래를 치던 카피레가 한참 뒤에야 대꾸했다. “……뭐, 왜, 뭐.” “이걸 증거로 쓸 방법은 없을까요.” 카피레가 뭔 소리냐는 듯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본이 손바닥에 놓인 것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냄새나는 손가락 하나. 무서우리만치 가벼운 동시에 심장이 꽉 조일 정도로 무거웠다. 본이 “그러니까, 유리를 잡는데 말입니다” 하고 조심스레 카피레 눈치를 살폈다. 카피레는 그저 조용히 본을 쳐다보았다. “……왕비의 시체를 도의에 어긋난 연구 목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실패하자 증거를 인멸하려다 들켰다. 이런 건 어떻습니까?” 선왕은 정신을 놓아 증언할 수 없고, 증거는 카피레 손에 있었다. 현재 왕가의 실권은 모두 보르누에게 있었다. 보르누 역시 유리에게 이를 갈고 있는 터. 잘만 요리하면 그럴듯한 작품이 나올지도 몰랐다. 카피레는 본이 손바닥에 쥔 손가락을, 초상화와 박제로만 기억하던 어미의 흔적을 보았다. 어렸을 적엔 자주 거울을 보며 어머니를 상상했더랬다. ###회상(크기―1, 기울임, 검정70)### “돌리를 쏙 빼닮았구나.” ###끝### 그게 아비의 입버릇이었다. 왕은 어미의 초상화를 앞에 두고 하염없이 카피레를 쓰다듬곤 했다. 이유야 어쨌건, 카피레는 그 시간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도 분명 어미를 그리워했다. 직접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어미의 흔적이었다. 비록 토막 난 손가락 하나만 남았을지언정…… 카피레는 입술을 깨물었다. 살아생전엔 사랑의 묘약에, 죽어서는 박제로 놀아난 어미의 시체였다. 단 하나 남은 어미의 손가락을 증거로, 놈을 무너뜨리는 무기로 쓴다는 데 본능적인 거부감이 일었다. 땀이 식어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나뭇가지가 몸을 흔들어 나뭇잎을 떨구었다. 색 바랜 나뭇잎이 카피레 어깨에 앉았다. 카피레가 나무를 짚고 일어나 본 손바닥에 놓인 손가락을 집어 품에 갈무리했다. “……일단 돌아가자. 찾아볼 게 많아. 저리 뒤집어 놨으니 놈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본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곧장 지름길로 부지를 빠져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안나 부인 저택으로 돌아오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카피레는 이게 겨우 몇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란 걸 믿을 수 없었다. 얼른 젬을 보고 잔소리를 들어야 현실감이 돌아올 것 같았다. 본과 카피레가 지친 기색으로 차에서 내렸다. 저택이 입구부터 소란했다. 오가는 이들이 뭐라 소곤대며 한숨을 쉬거나 하다가 카피레를 보곤 급히 입을 다물었다. “뭐야, 왜 저래? 야,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카피레가 두 팔을 벌려 본에게 보였으나 본은 고개만 갸우뚱했다. 땀과 먼지로 꼬질꼬질한 것을 제외하면 딱히 문제 될 점은 없었다. 급한 걸음으로 중앙 계단을 내려오던 마담 D가 카피레와 본을 발견하곤 우뚝 멈추었다. 깨끗한 손톱이 난간을 꼭 쥐어 희게 질렸다. 본이 말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마담? 저택이 소란하군요.” 부인이 카피레 눈치를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심상찮은 기색에 카피레가 낯을 굳혔다. “무슨 일 있습니까? 젬은요, 돌아왔습니까?” “그것이…….” 본이 뒤를 돌았다. 조용한 저택 로비에 커다란 언성이 오갔다.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카피레!” 익숙한 음색이었다. 카피레가 뒤돌았다. 반백 머리를 집사를 아슬아슬하게 따돌리고 뛰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코다였다. 칙칙하고 펑퍼짐한 시종복이 마구잡이로 구겨져 있었다.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했고, 신발은 짝짝이 슬리퍼였다. 그가 “카피레!” 하고 무너지듯 카피레 팔뚝을 잡고 매달렸다. 본이 급히 떼어 내려는 것을 카피레가 제지했다. 코다의 눈동자에 혼란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사, 사실입니까? 진짜로 중매 선생이…….” “무슨 소립니까? 제, 젬이 뭔 일이라도 당했습니까?” “중매 선생이 닥터 유리를 독살했단 얘기 말입니다!” 카피레가 “……뭐?” 하고 되물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먼저 나왔다. 당황한 본이 눈치를 살폈다. “하하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젬이 사람을 죽여? 아서라 아서. 녀석은 독극물 제조엔 취미 없다구. 맛은 그에 못지않긴 하지만…….” 팔뚝을 움켜쥔 손등을, 카피레가 토닥였다. 코다가 대꾸 대신 입만 뻐금뻐금했다. 카피레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게다가 놈은 유리야. 너도 알잖아. 놈이 어디 약 하나 잘못 먹었다고 꼴까닥할 놈이야? 그랬음 내가 벌써 백번은 죽였겠다. 그렇지, 본?” “카피레 왕자님…….” 마담 D가 침중한 목소리를 냈다. 기이한 침묵이 카피레를 불안하게 했다. “……단체로 날 놀릴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카피레가 쓴웃음으로 마담 D를 보았다. 잠시 뒤, 카피레의 얼굴에서 웃음이 거품처럼 꺼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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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해요, 미스 젬! 4권 목차 31. 진실 게임(2) 32. 지하 감옥 33. 영혼을 바쳐서라도 34. 운명의 실 에필로그 외전 1. [막간극] 사실 본은 별생각이 없었다. 외전 2. God bless you 외전 3. 플래닛 독점 인터뷰! 새신랑 왕자, 카피레 바리우스 편! 외전 4. [막간극] 내 솜사탕, 내 검은 토끼, 하나뿐인 나의 젬(gem) 외전 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꽃 외전 6. 소년 리스의 우울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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