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외전 1. 결혼식 “그래서, 지하는 그대로 두는 게 어떨까 해요.” 방 안에서 세이레나가 말했다. 그녀는 방금, 드래곤이 빠져나간 지하를 메우려면 어마어마한 공사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한 뒤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애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해.” “그리고 지하 통로를 만들어서 여차할 때 쓸 수 있는 도주로로 사용하면 어떨까요.” 이어진 그녀의 제안에 애쉬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는 드러난 세이레나의 목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물었다. “거긴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졌는데?” “눈속임용으로요. 출구를 완전히 반대쪽으로 만들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요.” 가능하면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왕궁은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도록 도주로를 만들어 놓기 마련이다. 이미 지하까지 뚫어 놨으니 다른 탈출로와 반대로 통로만 약간 더 만들면 된다. 아니면 아예 미로로 만들거나. 세이레나의 말에 애쉬는 다시 그녀의 목에 입을 맞췄다. “좋은 생각이야.” 목이 간지러워서 세이레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애쉬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상태로는 몸을 비트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애쉬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말했다. “당신은 원하는 거 없어요?” 애쉬는 세이레나의 손바닥에 입술을 눌렀다. 그녀가 손을 빼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손은 그의 손 안에 잡힌 상태였다. “글쎄.” 검정색 눈동자가 진득해졌다. 그의 입술이 닿은 손바닥이 데일 것처럼 뜨겁게 느껴져서 세이레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질문을 잘못했다. 아니면 그의 무릎에 앉은 거부터가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이레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건축가가 가져온 도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데니스에게 들어와 달라고 할 걸 그랬다. 왕궁 건축 건으로 이야기하는 자리라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이 적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만 불러야 한다. 하지만 데니스라면 분위기가 이렇게 되자마자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다면서 자리를 피해 줬을 게 분명하니…… 상황은 똑같았으려나. “레나.” 애쉬는 고개를 기울여 세이레나의 시선을 따라왔다. 두 사람의 입술이 부딪쳤다. 애쉬는 세이레나의 입술을 빨고 가볍게 깨물었다. 안 되는데. 세이레나는 애쉬의 어깨를 끌어안은 채 왜 키스하면 안 되는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이유가 있었는데 그의 입술이 닿자마자 휙 날아가 버렸다. 뱃속에 찌르르하게 뭔가가 울리는 느낌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 순간, 애쉬가 우뚝 멈췄다. 그는 입술을 떼고 세이레나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댄 채 눈을 감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공작 부인, 의상실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애쉬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세이레나는 시종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뭐라고? 시종이 뭐라고 했는지 머릿속에 빠르게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에서 애쉬가 천천히 눈을 뜨는 게 보였다. 진득한 욕망이 고여 있던 검정색 눈동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산뜻했다. “맙소사.” 세이레나는 눈을 꽉 감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누구에게, 뭘 먼저 지적해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웠다. 의상실에서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었던 건 애쉬도 알고 있었다. 의상실 사람 앞에서 옷을 갈아입고 만들어진 옷을 확인해야 하는데 사람을 이렇게 달아오르게 만들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키스하는 순간 그걸 싹 잊어버린 세이레나도 문제다.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왜 이 남자와 키스만 하면 바보 천치가 돼 버리는 걸까. “공작 부인?” 이번에는 익숙한 목소리가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근위대원의 목소리에 애쉬는 피식 웃더니 문밖을 향해 말했다. “알았어.” 그리고 세이레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타이밍이 좋았어.” 그게 어쩐지 얄미워서 그녀는 그를 흘겨보며 물었다. “그래요?” “음. 하마터면 흔적을 낼 뻔했거든.” 그렇게 말하며 애쉬는 세이레나의 뒷 목을 쓰다듬었다. 사실 약간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긴 하다. 하지만 강하게 빨아들인 건 아니니까 곧 가라앉을 거다. “갔다 와.” 그는 방금 전의 키스와는 전혀 다르게 예의 바르고 건전하게 세이레나의 뺨에 키스하며 말했다. 이게 마지막 가봉일 거다. 그는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세이레나의 웨딩드레스 모습이 아주 많이 기대가 됐다. “저녁 같이 먹을 거죠?” 세이레나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테이블 위에 쌓인 서류를 쳐다봤다. 어제도 서재에서 데니스와 샌드위치를 먹었다고 들었다. 일하면서 식사를 해결한 건 세이레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적어도 모아나와 여기사 클럽에서 먹었다. 이렇게 바빠서야 하루에 얼굴을 보는 시간은 잠잘 때뿐이다. 아니면 지금처럼 왕궁 건축 문제처럼 함께 의논해야 할 사안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거나. 애쉬는 영지 분쟁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서로 시선을 던졌다가 세이레나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래.” 세이레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둘 다 바쁘지만 애쉬는 세이레나의 두 배쯤 바빴다. 그는 그녀가 잠이 들면 침대로 들어왔다가 그녀가 깨기 전에 일어났다. 세이레나는 애쉬의 뺨을 손으로 감싸고 한숨을 내쉬었다. “잠은 자고 있는 거죠?” 그녀의 질문에 애쉬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는 씩 웃으며 물었다. “매일 밤 부인 옆에서 잠들고 있는데?” “내가 잠들면 들어오잖아요. 그리고 내가 일어나기 전에 나가고요.” 애쉬의 손이 세이레나의 손을 감쌌다. 그의 눈동자가 다시 깊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이 마지막 가봉이지?” 뜬금없는 질문에 세이레나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떠올랐다. 가봉이 왜?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자 애쉬는 다시 세이레나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자신의 입술을 누르며 말했다. “오늘 밤에 말해 줘. 어디가 옷으로 가려지는 곳인지.” 잠깐 이해하지 못한 세이레나는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가 곧 입을 딱 벌렸다.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애쉬!”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지만 애쉬는 웃지 않았다. 그는 한 번 더 그녀의 손바닥에 입술을 누른 뒤 간신히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저녁때 봐.” 그녀가 서재에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하인이 고개를 숙였다. 곧이어 그가 의상실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세이레나를 안내했다. 그레이윈드 저택의 복도를 걸으며 세이레나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왕궁의 무너진 잔해는 거의 정리가 되었다. 거리도 다시 재정비되었고 남은 건 왕궁을 다시 짓는 것뿐이다. 세이레나는 원래라면 왕궁이 보였을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기분이 이상했다. 결혼식은 이제 겨우 삼 일 남았다. 그리고 애쉬의 즉위식은 결혼식 이튿날이다. 그녀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애쉬는 결혼식을 먼저 해야 한다고 우겼다. 예전에 그녀가 왕이 아닌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는 거다.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부부 사이고 침실도 같이 쓰고 있다. 세이레나는 새벽에 잠시 깨어났을 때 그녀를 끌어안고 잠든 애쉬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봤던 것을 떠올리며 가볍게 얼굴을 붉혔다. 때때로 그녀는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사실 그녀는 아직도 그 감옥 안에서 죽어 가고 있고, 지금 이 모든 것은 죽기 전의 그녀가 만들어 내는 환상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하지만 마치 그녀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맞은편에서 키가 훤칠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 헌터.” 세이레나처럼 아름다운 금발과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아랫사람을 향하는 듯한 태도였다. 이 저택에서, 아니, 타인머스에서 세이레나를 아랫사람 대하듯 대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극히 드물다. 현 공작 부인, 나흘 뒤면 왕비가 될 사람을 누가 쉽게 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세이레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남자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세이레나라고 부르세요. 곧 성이 바뀔 테니까요.” “아, 맞다. 너희 둘 결혼한다고 했지.” 새삼 놀랍다는 태도를 지으며 남자는 턱을 쓸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다. 세이레나와 같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졌지만 그녀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굳이 따지면 애쉬와 비슷하지만 애쉬가 남성적인 아름다움이라면 남자는 중성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애쉬와 비슷한 키, 탄탄한 체격은 누가 봐도 남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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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슈발리에 외전 목차 외전 1. 결혼식 외전 2. 취향 외전 3. 로렌 외전 4. 소문 외전 5. 기적 외전 6. 정답 외전 7. 이용 외전 8. 공주님의 가출 외전 9. 과거와 미래 외전 10. 공주님의 키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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