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촛불 시민 혁명을 불러온 주권자들의 절망과 분노는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을 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국가는 없다’고 모든 국민이 안타까워할 때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헌법이 약속한 국민의 안전과 존엄을 국가가 어떻게 취급해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정부는 재난에 빠진 국민을 구하는 일에 무능하고 무관심한 반면, 국민을 통제하거나 여론을 조작하는 일에는 무서우리만치 높은 집중력과 능력을 발휘했다. 재난 수습에 무능한 국가는 정부에 항의하는 가족들의 행진을 가로막는 데는 재빨랐다. 진상을 규명하라는 압력을 회피하느라 피해자인 가족들을 공격하고 모독하며, 심지어 ‘시체 장사’나 하는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법은 국가 폭력이나 권력 남용을 정당화하는 시민 통제의 도구로 동원되기 일쑤였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집회와 시위를 보장하기보다는 억압하고 제한하는 데 주로 이용됐다. 정부를 비판한 국민이나 국책 사업에 반대한 주민들을 입막음하는 수단으로 명예훼손 소송이나 손해배상 소송이 남발됐다. 국민은 작전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국가 기구가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펼치고 선거에 불법 개입하기도 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을 ‘종북’ 또는 ‘테러리스트’로 매도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사찰하거나 피해를 줬다. 특권과 반칙을 일삼는 유착 권력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거치며 ‘멸사봉공’을 늘 강조하던 국가 기구와 권력이 현실에서는 소수 특권층의 사적 이익을 위해 불공정하게 작동해온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국회 청문회, 검찰과 특검의 수사,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 여러 언론에 경쟁적으로 보도된 제보 등을 거쳐 드러난 특권 집단들의 민낯은 영화나 드라마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박근혜 정권과 재벌, 여러 특권 세력들이 저지른 국정 농단 전체, 그리고 이 세력들이 쌓아온 적폐의 아주 일부일 뿐이다. 정치 검찰이나 국가정보원 같은, 좀더 구조적인 ‘적폐 세력들’이 더 심각하고 체계적인 국정 농단을 자행해왔다. ‘김영한 비망록’과 ‘안종범 업무 수첩’ 등이 숨겨진 실체의 일부를 보여준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몇몇이 구속됐지만, 국정 농단 사태의 몸통들은 아직 본격적으로 수사나 조사를 받지 않았다. 민주적 통제와 개혁의 예외 지대에 있는 검찰, 경찰, 국정원 같은 사정 기구들은 때로는 정권과 재벌의 시녀나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때로는 사정을 빌미로 뒷거래하면서 특권과 반칙의 질서를 공고히 하고 기득권을 확대했다. 여기에는 선출되지 않는 또 다른 권력인 사법부도 한몫했다. 보수 정부 아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특정 대학 출신의 보수 성향 남성 법조인들로 채워졌다. 이 사람들은 특권층의 반칙과 정권의 권력 남용에는 관대하고 국민의 인권과 주권을 옹호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이 유착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특권과 반칙의 질서는 또다시 부활할 수 있다. 혐오와 차별, 부와 권력의 대물림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이라는 최순실 딸 정유라의 발언은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했지만, 역설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실체를 드러낸다.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고, 국가 기구와 정치 제도 같은 공적 시스템이 본디 취지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구성원들이 느끼면, 사회 전반에 냉소와 불신이 만연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신뢰 적자’라고 말한다. 신뢰 적자는 앞으로 사회 양극화를 극복하고 복지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도 심각한 사회적 걸림돌로 작용한다. 정부의 공적 기능을 불신하면 줄 서기보다 줄 대기, 납세보다는 탈세, 공적 연금보다는 사적 연금, 사회적 연대나 협동보다는 각자도생을 더 효과적이고 안전한 선택이라고 믿게 될 수 있다. 더구나 절망이 냉소를 넘어 공격성을 띠게 되면 극단주의가 된다. 혐오 발언이나 혐오 폭력은 특권을 누리는 계층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다. 여성, 성소수자, 이주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힘겹게 의무를 다하는 ‘정상인’에게 기생하거나 무임승차함으로써 상대적 ‘특권’을 누린다고 여겨진다(한국 사회에서 ‘보통’ 또는 ‘정상’의 기준은 대체로 군대를 다녀온 양성애자 남성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직면한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재앙에 책임이 있는 소수 특권층들이 원하고 반기는 상황일 수 있다. 촛불 개혁은 국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공적 책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맞춰져야 한다. 작동하지 않는 대의 정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이게 나라냐’는 탄식과 분노를 쏟아낼 때까지 정치는 문제 해결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국정 농단 사태와 촛불 시민혁명은 대의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역대 보수 정권과 그 정권의 하수인을 자처한 정치인들은 정략적 이익을 위해 수준 이하의 극우 단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했다. 사회학자 김동춘이 말한 대로,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거나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발언을 보면 극우 인사들은 반대편을 절멸의 대상으로 보고 정치 과정 자체를 내전의 연장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치의 문제점을 싸잡아 이념의 과잉으로 단순화하는 태도를 취하려면 신중해야 한다. 도리어 이념적 다양성이 부족한 현실이 본질적 문제다. 안보 국가의 무차별 종북 몰이는 다양한 이념적 모색의 가능성 자체를 질식시켰다. 심각한 정쟁이나 진영 대결은 이념 차이가 아니라 승자 독식의 정치 제도와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냉전적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승자 독식 구조는 다양한 민의가 다양한 이념을 만나 다양한 정책으로 반영될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특정 지역이나 연고에 기반한 획일적 대결 구도를 재생산한다. 촛불 대선으로 여당이 된 지난날의 제1야당도 승자 독식의 정치 제도가 보장하는 기득권에 안주했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정당 지지율이나 전체 득표율을 온전히 의석에 반영하지 않는 현행 선거법 덕에 개혁과 보수를 막론하고 제1당과 제2당은 지지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간다. 결과적으로 승자 독식형 정치 제도는 서로 대결하면서도 의존하는 과두 정치를 낳고, 정치의 주인인 주권자를 소외시키며, 다양한 민의를 단순 대결 구도로 왜곡한다. 과두 정치에 안주한 지배 정당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민의를 고르게 반영하려는 선거 제도 개혁, 주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확대, 국회를 상대로 한 주권자의 직접적 감시와 개입 권리 강화 같은 정치 개혁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거부해왔다. 기울어진 공론장과 정보 권력의 남용 정치적, 이념적, 문화적 다양성의 질식은 제도 정치뿐 아니라 영향의 정치를 위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공론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냉전적 잣대 탓에 이미 기울어진 공론장에서는 의제 자체가 제한되고 왜곡된다. 더욱이 종합편성 채널을 무더기 허가하고 공영 방송에 직접 개입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은 기울어진 공론장을 더욱 가파르게 만들었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6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전체 180개 조사 대상국에서 70위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에 31위를 기록한 뒤 보수 정부에 들어서서는 2013년 50위에 이어 2015년 60위로 빠르게 추락했다. 지식 사회도 갈수록 권력과 자본에 포획돼 독립성을 잃고 있다. 지식과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은 커지는 데 견줘 학문과 사상의 자유는 점점 더 위축되는 중이다. 특히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시민적 자유를 확대하기보다 방송과 통신 검열, 무제한 사찰, 국가 권력이 저지르는 여론 조작과 공작, 시장 권력이 저지르는 사적 정보의 남용 등을 더욱 고도화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 행동하는 시민과 민주주의의 재발견 반칙을 일삼는 특권 세력, 국민을 공격하는 국가, 작동하지 않는 대의 정치. 이 모든 것들은 지난겨울과 올봄에 걸쳐 왜 그토록 많은 주권자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어야 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광장의 촛불은 철 지난 단어로 치부되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했다.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행동하는 주권자가 없으면 민주주의 제도는 작동할 수 없고, 민생도 복지도 불가능하며, 특권과 반칙만 난무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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