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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눈동자

포르투나의 눈동자

햐쿠타 나오키 (지은이), 오근영 (옮긴이)

북뱅 :조선뉴스프레스·2016-12-23

  • 423쪽
  • 문학
  • KDC 8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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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프롤로그 기야마 신이치로는 환승역인 게이큐 가와사키 역에서 운좋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목적지까지는 5분 정도 남았지만 잔업 때문에 줄곧 서 있었던 다리와 허리를 쉬고 싶었다. 시간은 오후 열 시를 지나 있었다. 전철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 무심코 정면에 서 있는 남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남자는 검은 바탕에 빨간 꽃무늬가 찍힌 셔츠를 입고 있었다. 회사원은 아닌 듯했다. 피곤에 지친 표정으로 보아 자신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이며 공장에서 잔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이도 서른 전후로 자신과 비슷하게 보였다. 남자는 피부가 희고 가냘픈 체구를 하고 있었다. 졸린 눈을 감고 손잡이를 잡은 오른손에 체중을 싣고 있었다. 손도 여자처럼 가늘다. 신이치로는 무심코 그 손에 시선을 주다가 ‘어라?’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의 손이 투명해서 그 너머 전철의 천장 부분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그는 실눈을 만들어 그 남자의 손을 자세히 보려고 했다. 역시 손을 뚫고 그 위로 천장이 투과되어 보였다. 소매에서 나와 있는 손목 부분은 흐릿한 윤곽만 남기고 투명하게 보였다. 눈이 피로한 탓인가 싶었다. 조금 전까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계속 자동차의 작은 흠집을 체크했기 때문이다. 하얀 차에 생긴 아주 작은 흠집을 확인하기 위해 몇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서 차체를 응시하는 일은 눈에 큰 부담이 된다. 잠깐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한 번 가죽으로 된 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 남자의 오른손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손이 방금 전과 똑같이 투과되어 보였다. 차 안의 조명 각도 때문인가 하고 머리 위치를 조금 바꿔보았다. 그러자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남자의 손을 투과하여 보이는 차량 내의 광고가 이동하는 것이었다. 신이치로는 손가락으로 두 눈을 비비고 나서 다시 남자의 오른손을 응시했다. 역시 투과되어 보인다. 눈의 착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설마 눈앞에 있는 남자가 유령이란 말인가. 시선을 달리해서 남자의 얼굴을 밑에서 치켜봤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턱이 가늘고 야윈 얼굴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왼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이어서 전신을 훑어보았다. 셔츠와 바지는 전혀 투과되어 보이지 않는다. 두 다리도 멀쩡하게 있었다. 신이치로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다시 남자의 오른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그 손은 역시 투명하다. 자세히 보니까 주먹 안에 쥐고 있는 동그란 손잡이 부분도 보인다. 마치 투명한 비닐로 만든 손으로 잡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말도 안 돼, 하고 신이치로는 눈을 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인간의 손이 투과되어 보일 리가 없다. 이건 뭔가 트릭이다. 그가 ‘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손이 아니고 투명한 트릭 장치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남자는 자기처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고 마술사나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여기서 새로 만든 마술을 연습하고 있을 것이다. 기막히게 잘 만든 속임수다. 아니면 천장에서 내려온 가죽 끝에 어떤 장치가 있는 걸까. 그때 전철이 커브를 돌면서 흔들렸다. 눈앞의 남자는 살짝 균형을 잃고 손잡이에서 손을 잠깐 떼었다가 얼른 다시 잡았다. 대단하다! 마치 진짜 손 같다. 신이치로는 감탄과 찬사의 시선을 남자에게 보냈다. 남자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서서 자는 척하고 있는 걸까. 무심을 가장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는 걸까. 주위의 승객 중에 남자의 이상한 오른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투명하게 보이는 남자의 손을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전철이 역에 도착했다. 남자는 손잡이를 놓고 많은 승객들과 함께 내렸다. 신이치로는 방금 전까지 남자가 쥐고 있던 손잡이를 쳐다보았다. 아무런 장치도 없는 가죽 끈 끝의 손잡이가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가와사키다이시 역을 나와 세 들어 사는 집에 도착한 순간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부터 간토 지방에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텔레비전 일기예보에서 그랬었지, 하고 기억을 떠올리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지은 지 30년은 족히 넘었을 목조 2층짜리 사글세 방의 바깥계단은 한 발을 디딜 때마다 끼익, 끼익 소리를 냈다. 그의 방은 부엌과 다다미방 하나밖에 없다. 신이치로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사시사철 깔아 놓는 이부자리 위로 벌렁 누웠다. 창밖에서 거세진 빗소리가 들린다.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크게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가 내뿜자 연기가 천장을 향해 올라갔다. 그 연기를 보면서 문득 전철 안에서 본 광경을 떠올렸다. 그때는 마술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착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남자는 우연히 천장과 똑같은 색깔의 장갑이나 뭔가를 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자체가 보호색처럼 되어 투명하게 보였던 게 분명하다. 오른손을 위로 쳐들고 손바닥을 펼쳐본다. 이 손바닥이 천장과 똑같은 회색이라면 투명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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