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 사람의 일대기를 역사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기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적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근대와 현대 인물, 그중에서도 독립운동 관련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애국주의 사관’의 ‘위인전 쓰기’에서는 이 글의 주인공인 민영환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된다. 민영환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는 한 말 풍운정국의 내우외환과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는 근대 이행기 전체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태어날 때부터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치기로 되어 있었던 인물은 분명 아니었다. 한국 근대사에서 갑신정변 이후 갑오개혁까지는 근대사에서도 가장 내정이 부패하고 외교력도 약했던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이때 정치적 주도권은 민영환에게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큰 시대사적 역할을 한 사례는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후 권력 핵심에서 멀어졌다. 이 기간 외교적 목적으로 간 것이었지만 두 차례에 걸친 유라시아 일주를 통한 세상 밖 구경은 당시 『독립신문』의 표현처럼 그를 구래의 척족 ‘민판서’라는 의식에서 환골탈태해서 ‘새 사람’이 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이후에도 민영환은 오랫동안 정부를 대표하는 고위관료였지만 여러 면에서 이전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체제개혁과 시대변혁을 주장하는 경세론자였던가? 아니면 역사에 의미를 남길 만한 뚜렷한 정치적 족적을 남겼는가? 보황론자인가 민권론자인가? 정치적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있었던가? 그의 장점은 공공성과 통합능력인가?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미지는 이보다는 오히려 순국자결을 통해 대중에게 국권회복의 메시지를 주었다는 점이 아닐까? 그것도 대한제국의 고위관료로서 말이다. 여전히 오늘날 우리에게 민영환은 국가 멸망 시기 이에 맞선 절의와 순국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민영환이 세상을 뜬 지도 어느덧 한 세기 이상 되었다. 세월은 계속 흘러갔지만 그렇다고 지금 우리의 현실과 주변 상황이 그 당시보다 좋은 편은 결코 아니다. 이 시점에 그의 발자취를 통해 근대 이행기를 살아갔던 동시대 사람들의 애환과 시대인식, 그의 발걸음을 독자들이 ‘추체험’의 형태로나마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 글을 쓴 사람으로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작업 시작 후 3년 만에 완료된 난삽한 원고를 깔끔한 책으로 환생시켜 주신 역사공간 편집부 성미애 선생께도 감사드린다. 2014년 12월 조 재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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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영환의 집안과 관직 생활 왕후 민씨와 민영환의 집안 임오군란과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 정치활동을 재개하다 민씨 내부의 권력 투쟁과 주변 상황 2. 두 차례의 사행, 세계를 보다 아관파천과 환궁 운동 특명전권공사 일행의 1차 사행 실패로 끝난 2차 사행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 두 번의 사행 3. 계몽운동 후원과 내각 개혁 도모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다 국정 개혁 의지와 황제의 신임 내각 개혁을 도모하다 4. 『천일책』 속 시국 해결 방안 시국 해결 방안을 제안하다 시세 4조목 비어 10책 5. 세계와 근대문화에 대한 깨달음 6개월간의 여정을 담은 기록들 1896년 러시아 황제 대관식 특사 근대국가를 경험하다 세계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이해하다 자본주의 기술문화와 제도 무엇을 얻었는가 6. 대한제국 시기 개혁론의 방향 군사제도를 개혁하다 대한제국의 기반을 마련하다 흥화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다 7.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자결하다 러일전쟁 이후 위태로운 현실 죽음으로 국민을 깨우치리라 민영환의 순국으로 나라가 들끓다 의열투쟁의 선구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추모 사업 민영환의 삶과 자취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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