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국가 권력과 부를 송두리째 쥐고 있던 로마의 귀족들은 호민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부지 어린애처럼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들의 이웃과 동포들은 굶주림과 상심으로 분노하고 있었고, 이들을 달래어 병사로 삼은 로마 장군들은 정복 전쟁을 통하여 전리품을 나누어 주고 사병화시킨 다음 이 군사력으로 독재의 기초를 닦았다. 이들 장군들은 사소한 기회라도 맞닥뜨리면 언제라도 병사들을 이끌고 로마로 진격하여 귀족들의 오만과 탐욕을 짓밟고 군정의 깃발을 꽂을 태세였다.○ 술라의 독재를 거부하던 카이사르도 결국 독재의 길을 걸었으며, 그 힘으로 시민들의 배고픔을 덜어 주고 오락을 베풀었다. 자유의 투사들이 카이사르에게 단검을 들이대고 이제는 질곡의 고리를 끊고 자유를 얻었다고 외쳤지만 시민들은 그 자유란 귀족들만의 자유임을 단박에 알아챘다. 그래서 그들은 브루투스를 용서하지 않았고 카이사르를 살해한 자들을 자유의 투사가 아닌 암살자로 낙인찍어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갔다.○ 자유의 투사들은 카이사르만 없다면 다시금 공화정이 꽃피고, 자신들이 보여 준 놀라운 용기로 시민들의 찬사 속에 후세에도 소멸되지 않는 드높은 명예가 부여되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언젠가 카이사르가 암시한 것처럼 그의 죽음은 로마 세계를 혼돈과 내전의 비참함에 빠지게 했을 뿐이었다. 국가에 닥친 독재의 기운은 단 한 사람의 죽음으로 걷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 지도층의 변화를 요구했지만 그들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마침내 카이사르란 이름을 양도받은 젊은이가 위선이라는 무기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여 더할 수 없이 강했던 정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로마를 수중에 넣었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거친 후 최후의 승자가 결정되자, 로마 공화정은 맹렬한 기세로 문이 닫혔고 귀족들은 시민의 지도자요 통치자라는 지위에서 한 계단 내려와 왕과 닮은 시민 대표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명령을 받들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로마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왕을 보게 되자, 그제야 지난 과오를 뉘우치며 한탄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깨달음이요 때늦은 후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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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제3권에 들어가며 02-4 독재 권력의 출현 BC 88년∼BC 27년 00마리우스의 욕망과 술라의 권리(BC 88년) 000 / 플라쿠스(Flaccus)의 실패(BC 86년)와 핌브리아(Fimbria)의 죽음(BC 84년) 000 / 아테네 최후의 날(BC 86년) 000 / 술라의 담판(BC 85년) 000 / 킨나의 죽음(BC 84년) 000 / 술라의 식언(BC 81년) 000 / 마리우스의 부관참시 000 / 안티스티아(Antistia)의 불행 000 / 술라의 잔혹성 000 / 스테니스의 정직함 000 / 술라의 역행 000 / 술라의 악행과 기행 000 / 여인을 통한 소망의 실현(BC 74년) 000 / 크라수스(Crassus)가 받은 의심(BC 73년) 000 / 크라수스의 축재 000 / 루쿨루스(Lucullus)의 위기(BC 71년) 000 / 폰투스 왕 미트라다테스(Mithradates) 6세 가족의 최후(BC 71년) 000 / 키케로(Cicero)의 등장(BC 70년) 000 / 폼페이우스(Pompeius)의 군 복무 해제 신고(BC 70년) 000 / 카이사르(Caesar)의 한탄(BC 69년) 000 / 폼페이우스의 위선(BC 66년) 000 / 루쿨루스의 추락(BC 66년) 000 / 티그라네스(Tigranes) 2세의 항복(BC 66년) 000 / 노예 신분의 변화 000 / 기강을 세운 재무관 카토(BC 64년) 000 / 카틸리나(Catilina) 음모(BC 63년) 000 / 크라수스의 성품 000 / 체면 깎인 폼페이우스(BC 61년) 000 / 로마에서 루쿨루스의 삶 000 / 제1차 삼두 정치(트리움비라투스triumviratus)(BC 60년) 000 / 굴욕을 당한 집정관 비불루스(Bibulus)(BC 59년) 000 / 클로디우스의 복수(BC 58년)와 키케로의 부동산 000 / 헬베티족 대이동에 대한 카이사르의 판단(BC 58년) 000 / 리스쿠스의 고백과 디비키아쿠스의 눈물(BC 58년) 000 / 루카 회담(BC 56년)과 카르하이 전투(BC 53년) 000 / 카이사르의 결혼과 동성애, 여성 편력 000 / 카이사르의 계책과 원로원의 판단(BC 55년) 000 / 율리아의 묘지(BC 54년) 000 / 티투리우스 사비누스(Titurius Sabinus)의 실책(BC 54년) 000 / 카르누테스(Carnutes)족의 항거 000 / 갈리아(Gallia)인들의 파문 000 / 콤미우스(Commius)의 분노(BC 51년) 000 /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유린 000 / 쿠리오(Curio)의 조삼모사(BC 50년) 000 / 루비콘강을 건너다(BC 49년 1월 10일) 000 / 카이사르(Caesar)와 폼페이우스(Pompeius)의 클리엔스 000 / 쿠리오의 죽음과 누미디아 왕 유바의 판단(BC 49년) 000 / 카이사르 진영과 폼페이우스 진영 000 / 폼페이우스가 받은 의심과 파르살루스(Pharsalus) 전투(BC 48년) 000 / 코르넬리아(Cornelia)의 통곡(BC 48년) 000 / 카이사르 군의 항명(BC 48~47년) 000 / 폼페이우스의 최후(BC 48년) 000 / 떠난 자에 대한 예의와 키케로의 표리부동 000 / 카시우스(Cassius)의 배반 000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BC 47년) 000 / 키케로에 대한 카이사르의 우정(BC 47년) 000 / 카토의 죽음(BC 46년) 000 / 카이사르의 독전(督戰) 000 / 카이사르의 악행과 기행 000 / 카이사르의 특권(BC 45년) 000 / 안토니우스(Antonius)의 경거망동(BC 44년) 000 /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의 오판(BC 44년) 000 / 카이사르 암살의 전설 000 / 브루투스(Brutus)의 루비콘강 000 / 키케로의 필리피카(BC 44년) 000 /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의 결혼 000 / 옥타비아누스의 인내와 카이사르의 평가 000 / 원로원의 책략(BC 43년) 000 / 옥타비아누스에 대한 의혹과 제2차 삼두 정치(BC 43년) 000 / 필리피 전투와 브루투스의 죽음(BC 42년) 000 / 풀비아(Fulvia)의 분노와 브룬디시움 협약(BC 40년) 000 / 살비디에누스(Salvidienus)의 변절(BC 40년) 000 / 미세눔 협약(BC 39년)과 섹스투스 폼페이우스(Sextus Pompeius)의 실패 000 / 해임된 벤티디우스(Ventidius)(BC 38년) 000 / 레피두스(Lepidus)의 오판(BC 36년) 000 / 옥타비아누스의 폭로(BC 32년)와 악티움 해전(BC 31년) 000 / 헤롯 왕의 연명책 000 / 승리자에 대한 옥타비아누스의 시기심 000 부록 군사제도 000 │ 연대표 000참고문헌 000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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