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작가의 말 열일곱 살, 대학 입시 전날 밤 나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숭고한 삶과 죽음’ 앞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으로 전율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다섯 살,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영문도 모른 채 봉원사라는 절에 갔는데 대웅전 불상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여섯 살,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천주교 성당 안에서 홀로 무릎을 꿇고 십자가를 쳐다보며 이상한 감동으로 전율했던 적이 있다. 일곱 살, 언니들이 읽고 있던 『성 프란시스 전기』를 읽고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웠다. 오십 살, 성만찬 예배에서 소나기가 쏟아지듯 성령이 내 영혼을 적셨다. 오십 세 살, 몸과 마음과 영혼이 참혹하게 무너져 있을 때 바흐의 과 그레고르 알레그리의 을 듣고 영혼이 떨렸다. 오십 여덟 살, 미국 서부 그랜드캐니언년을 보고 내 존재가 태풍에 휘날리는 티끌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영혼이 무(無)와 합일되면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체험했다. ‘숭고체험’이었다. 그리고 60살에 나는 『마야의 달』을 쓰기 시작했다. 인간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을 두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이유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일까? 인간은 왜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의 아니,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의 안위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는 걸까? 그런 인간을 볼 때 왜 우리는 감동의 전율을 느끼는가? 왜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나는 걸까? 왜 성현들과 성자들의 삶과 죽음은 아직도 우리의 영혼을 떨리게 하는 걸까? 그들의 숭고한 영혼이 우리의 영혼을 울리기 때문일까? 인간은 왜 숭고함과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일까? 우주의 본질이 숭고하고 성스러워서일까? 어렸을 적부터 오늘 날까지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숭고’를, 학문적 글쓰기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주제를, 마침내 소설로 표현해보았다. 『마야의 달』은 혼자 쓴 작품이 아니다. 소설을 처음 써보는 나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조언과 비평을 해준 식구들,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이루어낸 공동 작업이다. 건국대학교 김종갑 교수님, 서윤호 교수님, 창원대학교 이수정 교수님, 연세대학교 최종철 교수님, 순천향 대학교 이정임 교수님, 그리고 부산대학교 임창건 교수님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사랑의 눈으로 원고를 읽어주시고 격려해준 가족들, 철환 오빠, 부련 언니, 복연 언니, 나영 동생, 철수 동생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감사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 『마야의 달』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완성 될 때까지 19개월을 끊임없이 나와 대화하면서 영감과 격려를 주었던 김정아 언니이다. 그녀의 깊은 예술성과 철학적 성찰이 함께 하지 않았으면 『마야의 달』은 결코 지금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 못할 것이다. 끝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구도소설’을 마다않고 출판해주신 청어출판사 이영철 사장님, 그리고 쉽지 않은 구조와 문체를 정성스럽게 다듬어주신 방세화 편집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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