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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한자루 농법

호미 한자루 농법

안철환

들녘·2016-09-26

  • 216쪽
  • 기술과학
  • KDC 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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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머리말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 생활이 힘들면 사람들은 그랬다. “에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 이게 무슨 고생인가.”라고. 말 그대로 해석하면 농사짓는 사람 입장에선 기분 나쁠 일이다. 농사를 무슨 개나 소나 다 짓는 우스운 일쯤으로 여긴다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표면적인 해석 말고 이 말에 담긴 두 가지 배경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하나는 누구나 도시 생활이 힘들면 돌아가 쉴 수 있는 고향이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나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시대였다는 것이다. 원래 도시는 뿌리를 내려 안착해 사는 곳이 아니었다. 공부나 벼슬, 장사 등의 이유로 도시나 서울에 일정 기간 동안 거주하거나 머무는 정도였지 조상 대대로 도시에 산다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도시 생활이 힘들면 부모님 품인 고향에 돌아가 농사지으며 재충전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와 도시의 삶을 이어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돌아갈 고향이 없어졌다. 불가피하게 도시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야만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게 도시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다. 돌아갈 곳이 없어진 도시는 불안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가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가 되고 우울증이 급증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취직을 못하거나 직장을 잃는 등 경제력을 상실하면주변으로부터 고립되고 단절되는 위태로운 삶으로 쉽게 내몰린다. 삶과 죽음이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수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목도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죽음으로 이어질 위태로운 삶이 되어버린 것이다. 몇 년 전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한 작가의 사연이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도시에서 경제적 삶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는 걸까? 최근 등산, 골프, 캠핑 등 아웃도어 스포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도시 사람들이 즐기는 이러한 취미활동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흙’이다. 예전에는 흙을 자연스럽게 밟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고향의 부모님들이 하나 둘씩 연로해지시고 돌아가시니 명절에 엄청난 교통 정체를 무릅쓰고 달려가는 귀경 행렬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귀경 행렬이 짧아지는 만큼 흙냄새를 맡으러 가는 행렬은 점점 길어진다. 과연 과장된 이야기일까? 나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흙에서 한시라도 벗어나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가출한 우리 집 진돗개는 산책을 나가면 꼭 흙만 밟으려 했다. 똥을 싸도 흙에다 누고 뒷발로 똥을 덮는다. 그걸 보고는 나는 그랬다. “네가 인간보다 낫구나.” 인간과 모든 생명은 흙에서 왔다. 그러니 죽어서는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게다. 나는 기독교도 아니고 아무 종교도 없지만, 왜 하필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기독교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참으로 심오하다. 하필 하나님은 인간을 꼭 흙으로만 만들었을까? 대리석이나 금, 혹은 황동으로 만들던가, 아니면 요즘처럼 콘크리트로 만들면 오래 갈 텐데. 그러나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을 흙으로밖에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흙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원천이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기독교의 인간 창조설은 모든 것을 음양의 조화로 해석하는 동양 사상과도 닮은 면이 있다. 하나님은 양이고 흙은 음인 셈인데 양과 음이 만나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천지인(天地人) 사상과도 통한다. 하늘님(天)과 땅님(地)이 만나 온 세상의 생명(人)을 만든 것이다. 다시 기독교의 언어를 빌리면, 나는 아직까지도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본다. 에덴동산이 뭔가? 바로 흙이다. 어머니의 자궁 같은 그런 흙이 바로 에덴동산이다. 그런데 그 흙을 더럽게 여기고 다들 편안한 콘크리트, 플라스틱, 유리 상자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제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콘크리트 병원에서 나서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살다 콘크리트 화장터로 돌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몸은 흙을 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몸 안의 유전자는 흙을 안다. 회귀본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흙에 살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것을 DNA는 알고 있어 콘크리트를 벗어나 흙냄새를 맡으러 산으로 야영장으로 골프장으로 그리고 텃밭으로 달려들 가는 것이다. 모두가 흙에서 살 때는 먹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돈도 필요 없었다. 들이나 산에서 나물을 캐 먹든, 논밭에서 곡식과 채소를 심어 먹든 다 그렇게 살았으니 먹고사는 일이 배부르지는 않았어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시골 가서 농사나 짓고 살아야겠다는 말을 누구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보릿고개도 있었고 누군가 말했듯 굶주림은 단군 시대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면의 진실일 뿐이다. 보릿고개를 나는 ‘풀 먹는 고개’라고 부른다. 보릿고개는 보리를 수확해 먹으려면 한 달은 기다려야 하는데, 봄에는 사실 먹을 게 있을 수 없다. 지난해 수확해 저장해 둔 곡식은 다 먹었거나 또 가난한 백성들에겐 수확량이 남을 만큼 농사지을 수 있는 넓은 땅도 없었다. 혹여 남았더라도 늦은 봄까지 저장해 두기도 힘들었다. 이른 봄에 심은 채소들은 아직 먹을 만큼 자라지도 않았다. 그럼 뭘 먹을 수 있을까? 바로 들녘에서 나는 나물들이다. 입춘의 냉이와 단오의 쑥이 대표적인 연산 풀들이다. 사실 단오 전까지는 못 먹는 풀이 없다. 아직 날이 덥지 않고 풀이 어리기 때문에 독초조차 순하다. 그렇다고 독초를 먹으라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풀이야말로 바로 자연이 준 공짜 보약이다. 입춘 냉이는 겨울잠을 깨는 약이요, 단오 쑥은 무더운 여름을 대비하는 예방약이다. 자연산 풀을 채집해 먹든 농사지은 것을 수확해 먹든 배불리 먹을 수는 없었어도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먹을 것을 스스로 자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골 가서 농사나 짓자는 말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가 매우 어려워졌다. 거의 프로 농부가 아니고서는 지금의 농산물을 아무나 재배할 수 없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지금의 농사는 소수의 농부들이 짓는 것으로 대다수 국민의 주식을 해결하고 있으니 그만큼 많은 수확물을 얻기 위해 농사 기술이 고도화 되고, 다양한 농기계?농자재 및 시설들이 필요해졌다. 그러니 농사가 어려워질 수밖에. 우리는 이미 그렇게 해서 생산한 농산물을 먹고 산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 농부’들은 그런 농사를 목표로 하다가는 뱁새 가랑이처럼 찢어져버릴 것이다. 그럼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아챘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에서 호미를 가지고도 쉽고 생태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과연 호미 한 자루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자, 이제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 보자. 이 글을 읽고 많은 분들을 지적과 관심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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