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머리말 가장 오래된, 여전히 재현되는 말의 예술 구비문학은 《한국 고전문학 작품론》 시리즈에서 특이한 위치를 지닌다. 글이 있기 전에 말이 있었다. 구비문학은 역사적으로는 한문문학·향찰문학·국문문학이 생성되기 전부터 존재했고, 이런 기록문학들이 형성되고 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뿐만 아니라 말의 문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구비문학을 고전문학이라는 역사적 범주 안에 가둬둘 수 없다. 구비문학은 고전문학이면서 현대문학이다. 나아가 근대적 문자중심주의의 시선을 내려놓고 보면 구비문학은 문학의 일부이자 말의 문화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미흡하나마 이런 변화된 시각을 반영하려고 애썼다. 구비문학의 갈래는 1971년 《한국구비문학론》이 출간되면서 설화·민요·무가·판소리·민속극·속담·수수께끼로 정리된 바 있다. 설화는 신화·전설·민담이라는 하위 갈래로 구분된 바 있으나, 경험담과 설화의 관계가 문제가 되었다. 설화는 허구를 기반으로 하지만 경험담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경험담도 구술 과정에서 경험의 허구화라는 과정을 거친다. 경험담은 설화는 아니지만 설화적 허구성을 지닌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민요·무가·판소리는 어떤가? 이들 갈래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 노래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노래를 기반으로 이야기·몸짓·말이 결합하여 다양한 형식의 말의 예술을 구현한다. 민속극은 이야기나 노래가 아니라 몸짓(혹은 춤)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사람이 직접 탈을 쓰고 춤을 추느냐 인형을 사용하느냐 또는 춤판이 세속적이냐 종교적이냐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구현된다. 민속극은 몸짓이 바탕이지만 이야기 없이 구현되지는 않는다. 구비문학의 갈래들은 이처럼 중첩되어 있고 서로 열려 있다. 각 갈래들은 구술문화라는 하나의 마당에서 피어오른 문예의 꽃들이기 때문이다. 구비문학은 한동안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문학이라는 이유로 크게 주목된 바 있다. 구비문학이 가장 오래된 문학 양식이고, 문자를 사용한 이후로는 문자로 문학 활동을 영위했던 이들이 주로 지배계층이었기 때문이다. 틀린 시각은 아니지만 구비문학은 그보다 더 포괄적이다. 설화 가운데 인물전설 같은 경우는 민족적인 특성이 강하지만 설화 대부분은 인류적·지역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무가나 판소리는 마을의 굿판이나 거리의 소리판에서 시작되었지만 상층이 후원자로 개입하면서 예술적으로 고양되었다. 오늘날 구비문학은 다양한 예술 장르 또는 미디어와 결합하면서 대중적 예술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가 구비문학 작품을 열린 시각, 다양한 시각에서 이해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비문학은 가장 오래된 문학이고, 비유적으로는 국문문학을 낳은 어머니의 문학이다.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이 중‧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구비문학은 여전히 한국문학의 비주류에 머물러 있다. 교과서에서 다뤄지는 작품들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구비문학의 세계에는 기록문학만큼이나 폭넓은 상상력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작품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만이 아니라 다뤄주었으면 하는 작품까지 두루 다루었다. 이 책을 통해 구비문학의 다채로운 세계를 들여다보길 희망한다. 2018년 9월 기획위원 조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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