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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동경대전

윤석산 주해

모시는사람들·2021-07-05

  • 602쪽
  • 152×225mm
  •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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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 어정쩡한 천도교인나는 할아버지 면목을 직접 뵙지 못했다. 아버지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두를 여의셨다. 또 큰아버지 역시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셨다.집안 어른들로부터 전해 듣기로는 선대 때부터 우리 집안은 천도교인이었다. 할아버지 함자는 시(侍) 자 병(炳) 자이다[道號는 侍菴]. 이 중 병(炳) 자는 항렬자이다. 함자 중의 모실 시(侍)는 천도교 주문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아버님 함자 역시 이와 마찬가지셨다. 아버지는 영(永) 자 중(重) 자신데, 중(重) 자는 항렬자이고 영(永) 자 역시 천도교 주문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에 이어지는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에서 따온 것이다[道號는 省菴, 1911~1992] . 아버지 고향인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무림리에는 천도교 전교실이 있었고, 시일 아침이면 궁을기가 게양이 되었다고 한다.일찍 혼자가 되신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셨다. 아버지에게는 작은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다. 집안의 가장 가까운 어른이시기도 했다. 작은할아버지도 천도교인이셨다. 함자는 화(化) 자 병(炳) 자셨다.[道號는 慈省]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병(炳) 자는 항렬자이고 화(化) 자 역시 천도교 주문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작은할아버지 모습이 생각나는데, 허연 수염을 기른 늘 조용한 모습의 할아버지셨다. 아버지에게는 친아버지와도 같은 분이기도 했다.당시에는 천도교인들끼리 혼인을 많이 했다고 한다. 가세나 지체 등은 보지 않고 천도교인이면 중매를 해서 결혼을 시켰다. 말 그대로 동학 천도교의 가르침이 그대로 실천되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부모가 안 계신 혈혈단신의 가난한 청년이었고, 어머니는 좀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이셨다. 그렇지만 집안 형편은 일체 고려하지 않고, 작은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께서 천도교인으로서 친분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혼인이 되었다고 한다.외할아버지는 학식이 높았던 분이라고 한다. 당시 천도교에는 학식이 높거나 사회적 명망을 지닌 분들이 많았다. 어느 원로로부터 내가 젊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천도교 마당에서 모르는 전고(典故)가 있으면 윤 교수 외할아버지께 여쭤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한문을 해석하는 데 전고(典故)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이 대형 사전도 없고, 인터넷은 더더욱 없어 순전히 사람의 머릿속에 내장된 지식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고(典故)’에 박식하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한학에 관한 독서량이 풍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외할아버지는 충청도 괴산 분이시다. 순흥 안씨(順興 安氏)에 함자는 상(商) 자 덕(悳) 자시다.[道號는 遜菴, 1880~1951] 기미삼일독립만세 때에 40세이셨다. 외할아버지는 1919년 2월 28일 오전 10시경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며 독립선언서 총괄책임을 맡았던 묵암(默菴) 이종일(李鍾一)로부터 독립선언서 2천 매를 인수하여 함경도와 강원도에 배포하는 책임을 지셨다. 28일 독립선언서를 인수한 당일로 강원도 평강의 천도교 교구장인 이태윤(李泰潤)에게 700여 매를 교부하고, 같은 날 함경도 영흥의 천도교 교구장인 김용환(金龍換)에게, 그리고 3월 1일에는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강인택(姜仁澤)에게 전달하여 민중에게 배포하도록 했다.1919년 4월 2일에는 인천 서공원(오늘의 자유공원)에서 예수교 대표 박용희(朴用熙)·장붕(張鵬)·이규갑(李奎甲), 유교 대표 김규(金奎), 불교 대표 이종욱(李鍾郁) 등과 함께 천도교 대표로 참석하여 수립을 선포할 것을 결의하였다. 4월 19일에는 통의동에 있는 김은국(金恩國)의 자택에서 거사 자금으로 600원을 거출했다. 또한 4월 23일 서울 동대문, 서대문, 종로 등지에서 군중 300명과 함께 국민대회를 열고 한성임시정부의 수립을 선포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셨다. 이후 외할아버지는 천도교 경성교구장, 천도교중앙총부 감사원장 등으로 천도교 요직을 맡아 활동을 하셨다. 6·25 전쟁 중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모두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는 1986년 대통령 표창에 추서되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친가 쪽의 어른들은 학식도 높지 않았고, 또 활발한 대외 활동도 하지는 않았지만, 당신들의 이름자를 천도교 주문의 글자를 써서 지을 정도로 천도교 신앙에 깊이 심취한 분들이었다. 외가 쪽 어른들은 깊은 신앙과 함께 학식도 높고, 또 교단 활동이나 독립운동 등에 적극적이었던 분들이다.부모를 일찍 여윈 아버지는 어려서 서당에서 공부하시고 보통학교 몇 년 다닌 것이 학업의 전부였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는 학식을 갖춘 분의 품격을 보여주셨다. 붓글씨도 잘 쓰시고, 학문적 식견도 높으셨다. 나는 아버님으로부터 지금은 안 쓰는, 그래서 잃어버린 우리 고유의 문화나 지식 등을 많이 배웠다. 아버지는 장인, 장모님과 함께 살았다. 나에게 늘 말씀하시기를 “내가 공부를 많이 못했는데, 장인어른께 많이 배웠다. 장인어른은 나의 스승님이시다.”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학교 공부는 많이 못하셨지만, 천도교 공부를 통해 많은 지식과 식견을 지니게 되신 듯하다.예전에는 모든 가정이 그렇듯이 우리 집도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아침과 저녁을 먹었다. 밥상을 대하고 앉으면, 아버지께서 식고(食告)를 하신다. 아버지의 식고가 다 끝나야 우리는 수저를 들 수가 있었다. 아버지의 식고는 길었다. 한참 식고를 드리시다가 몸을 한번 가볍게 부르르 떠시면, 우리는 속으로 아버지께서 식고가 다 끝난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면 우리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래 후에 알았지만, 아버지께서는 식고 끝에 지극한 마음으로 강령을 모시는 것이다.친가, 외가 모두 할아버지 때부터 천도교인인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천도교를 나가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저녁 9시면 가족이 둘러앉아 모시던 청수 기도식, 그리고 기도식이 끝난 후, 청수를 분작하던 기억, 어려운 일을 직면하면 나도 모르게 입안에서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하는 천도교 주문을 중얼거리기는 했어도, 나는 천도교인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의 한 사람으로 살아갔다.우리 집안의 선대 어른들도 일제강점기의 가혹독함을 누구 못지않게 도 겪었고, 6·25 전쟁의 아픔도 혹독하게 겪었다. 이런 와중에 부모님께서는 자식들을 건사하시느냐 많은 고생을 하셨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늘 천도교를 잊지 않으셨다. 한창 자라나는 자식들을 모두 대동하고 집에서 한참 먼 종로 경운동의 천도교중앙대교당에 버스를 타고서까지 나갈 형편이 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와 형제들은 자연 천도교와 멀어지는 생활을 했다.아버지께서 이런 우리 자식들 걱정이셨다. 자식이 일곱인데, 성장을 하며 부모 따라 천도교를 하는 자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수운 대신사께서는 포덕천하(布德天下)를 말씀하셨는데, 나(아버지)는 정작 자식 하나도 포덕을 못했으니, 그 죄가 얼마나 크냐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나에게 천도교에 입교하여 제대로 신앙할 것을 틈틈이 말씀하곤 하셨다.그래서 나는 결혼을 하게 되면 아내 와 함께 입교를 하겠다고 아버지께 약속을 드렸다. 그리고 결혼 후 우리 부부는 아버지의 전교로 천도교에 입교했다. 내 나이 32서른두 살 때였다.아버지께서는 입교 기념으로 경전을 한 권 사 주셨다. 내 생애 처음 접해 보는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였다. 아버지께서 주신 경전을 가끔 들여다보았다. 읽어보며 경전의 한문 문장이 조금은 쉽게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공부한 유학의 경전인 사서오경(四書五經)에 비하면 다소 쉽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과연 이 『동경대전』이 우리가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같이 유교, 도교, 불교를 대충 섞어 담은 것은 아닌가 하며, 그저 그런 심정으로 들여다보곤 했다.2. 그 해 여름이러한 안일한 생각과 함께 매우 의례적으로 시일(侍日, 천도교이 정기 종교 집회일. 일요일)이면, 천도교중앙대교당엘 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천도교회월보』라는 천도교 신문에서 ‘천도교 수도원’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경기도 가평 화악산 속에 천도교 수도원에 관한 것이었는데 제법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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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머리말 5Ⅰ 주해 31포덕문 | 布德文 33논학문 | 論學文 69수덕문 | 修德文 127불연기연 | 不然其然 171의례·시문 | 儀禮·詩文 193축문 | 祝文 195주문 | 呪文 198입춘시 | 立春詩 200절구 | 絶句 201강시 | 降詩 203좌잠 | 座箴 204화결시 | 和訣詩 206탄도유심급 | 歎道儒心急 219시문 편 | 詩文 篇 231결 | 訣 233우음 | 偶吟 236전팔절 | 前八節 247후팔절 | 後八節 252제서 | 題書 255영소 | 詠宵 256필법 | 筆法 269유고음 | 流高吟 273우음 | 偶吟 275기타 시문 | 其他 詩文 276통문 통유 의식 발문 | 通文 通諭 儀式 跋文 281통문 | 通文 283통유 | 通諭 285의식 | 儀式 288발문 | 跋文 290Ⅱ 한글판 동경대전(계미중하판 대역) 293Ⅲ 동경대전 문헌 연구 367‘새로 발견된 『동경대전』’에 관하여 369『동경대전』 간행의 서지적 고찰 397『동경대전』의 체제와 내용 414『동경대전』 간행과 『도원기서』 편찬의 의의 449해월 법설의 초기 자료 연구 475Ⅳ 자료 505새로 발견된 목판본(경진판으로 추정) 507계미중춘판(1883) 522무자중춘판(1888) 542신묘중춘판(1891) 557최초 활자본(1907) 573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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