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쓰나미는 수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일본에서는 이 재난을 어떻게 기억할지, 약 2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들을 어떻게 추모할지를 둘러싸고 여러 방면에서 논의가 이루어졌다. 잇따라 발생한 후쿠시마 제일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의 확산은 후쿠시마라는 지명이나 ‘3.11’이라는 숫자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독일과 대만 등은 탈원전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에서도 경계를 넘어 영향을 미치는 방사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고, 이는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출을 둘러싸고 지금도 계속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편, 지난 2019년 12월 말 중국의 우한 지역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후,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한 뒤로 지금까지 세계적인 코로나 유행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가 여러 곳에서 논의되기 시작되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지만, 이 같은 전염병이 사회의 취약계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다. 재난은 일견 평등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미치는 여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바이러스가 신체의 경계를 넘어서 이동하는 만큼, 글로벌한 이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신체와 국민국가의 경계가 어떠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물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본 사업단은 총 7년간의 사업 기간 가운데 절반을 넘어선 4년의 시간을 연구 아젠다인 을 위해 노력해 왔다. 2단계 1년 차인 지난해는 재난이 끼친 영향과 그에 대한 대응의 문제를 조명함으로써 ‘재난인문학의 정립’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접근법으로 학술세미나, 포럼, 초청특강, 국내 및 국제학술대회 등의 다양한 학술행사와 함께 사업단 내부 구성원 및 국내외 학술 네트워크 구성원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협동 연구 모임인 클러스터(cluster) 운영을 통해 아젠다를 심화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시도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물 중 하나로,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에서 대지진이나 팬데믹과 같은 재난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경험되었는지를 고찰한 성과물을 모은 것이 이 총서이다. 개개인의 다양한 경험 속에서 분명해졌듯, 재난의 피해는 경계가 없이 일어나는 동시에 기존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방사능과 바이러스는 경계를 넘어서 신체에 침투한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서 전파되는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가중시켰다. 한편으로 해외에도 큰 충격을 준 동일본대지진 같은 재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셔널한 맥락에서 종종 이야기되었고,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적인 재난이면서도 피해 규모와 백신 공급의 격차에서 볼 수 있듯 계층이나 지역 간의 간극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음을 우리는 보아왔다. 그 가운데에서 재난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은 통계조사로 나타나는 숫자나 미디어가 보도하는 사실들만으로는 아우를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총서에서는 동일본대지진과 코로나19 팬데믹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계선 위에 위치한 연구자들이 직접 경험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재난을 ‘경계’라는 관점에서 사유한 글들을 담았다. 필자들의 공통되면서도 다른 경험들을 통해 흔히 대립되는 것으로 그려지는 한일의 경계를 다시금 고찰하는 동시에, 동아시아라는 사정거리 속에서 재난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또한 모색하고자 하였다. 총서에 참여한 필자들은 한국과 일본, 혹은 두 나라를 오가면서 활동하는 연구자들로, 역사학, 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분과를 아우르고 있다. 1995년의 한신아와지대지진의 경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의 ‘자발적’ 피난자들, 쓰나미의 죽음을 다룬 문학, 쓰나미 피해지역의 현재를 묻는 잡지의 실천, 재난과 정치의 관계, 코로나 팬데믹이 대학의 비정규직에 가져온 영향, 한국 혹은 일본이라는 두 나라의 경계 위에서 생활인으로서 겪었던 팬데믹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재난과 경계라는 물음에 응답하고자 시도한 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감사드린다.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면서 비로소 그 선명성을 분명히 하고 있는 기후 위기를 비롯하여 지난 10월 29일 밤 10시 15분경, 서울의 한복판인 용산구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를 경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고 보니 일상화된 재난의 무게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올겨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폭설과 한파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니만큼 재난공동체의 사회적 연대와 실천이 아니고서는 이 재난의 시대를 살아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할 것이다.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삶 속에서 다양한 것들로 여겨지는 ‘경계’들이 재난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를 다시금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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