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차례 I. 삶이 몹시 어두웠던 그때 II. 1989년 III.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IV. 장벽이 무너진 자리. 함께 간 길 V. 장벽이 무너진 자리. 혼자 간 길 VI. 주워든, 띄운 유리병 편지 VII. 번역 “정본”을 생각하며 VIII. 넓혀지는 다른 장(場) 그리고 독일출판 IX. 좀더 높은 곳이 열러오다 X. (책갈피) 2010년의 간행작업, 2011~12년의 건축공사, 2014년의 건축공사 XI. 여백서원의 책들 XII. 여백서원에서 쓰이고 있는 책들, 만들어지는 중인 책들 겨울방학 숙제 서문 내 힘만으로. 누구를 탓하거나 어디엔가 그 무엇엔가 의지하지 않고, 말똥말똥한 맨정신으로 살아내보고 싶었다. 늘 무언가 수를 써야 살아남 을 듯한 세상에서, 그냥 자신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살아지 는 것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젊은 날 했던 생각이다. 그런데 돌아보니 취해서 산 것 같다. 무엇에 취했었는지는 잘 모르 겠다. 어두운 삶을 헤쳐가는 방법이, 배운 글을 읽고 쓰는 것이었다. 여러모 로 어려운 시대를 관통하면서 살아온 탓인지, 늘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는 느낌만 가득했다. 시대의 어둠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결국은 소극적 으로 살았고, 거기에 무슨 뜻이 있을까도 많이 생각했다. 뭐든 배워 스스 로 깨쳐보고자 읽었고 대체로 많이, 옮기며 읽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종종 책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이 저절로 나오는 법은 없었다. 이제는 죽겠구나 싶 은 즈음에야 나왔다. 늘 조금이나마 나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을 만들었지만 그 각고와, 탈진과, 남은 미진함은 여전했다. 이제 책도 상품이 된 세상이라, 더구나 책을 단 한 번도 상품이라고 생 각한 적 없었던 내 손에서 나온 책들이라 더욱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고 그만큼 많이 사라져버렸다. 절판되고 파지도 되고 출판사가 망해서 없어 져버리기도 하고…… 책이 나오면 돈 있는 만큼 사다 기회가 닿으면 이 리저리 나누어주다보니 내 손에조차 한 권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있다(누 군가 가지고 있는 책을 빌려다 복사를 해서 뻔뻔하게도 복사본을 돌려 주고, 원본을 내가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사라져버리기도 한 책들이 한 권 한 권 나올 때마다 썼던 후기 들을 한데 모아볼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책을 정리, 해설하고 남은 말들을 조금 덧붙이기도 하고, 또 제때 못 쓰기도 했던 그 글들을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그 책들을 만들 때의 착잡했던 감정들이 새롭다. 과연 이 책은 그 비싼 종이값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책으로 인쇄된 종이뿐만 아니 라 그 이전에 내가 다시, 또다시 고치고 고치느라 소비한 종이만 해도 나 무들을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집안 가득 원고를 늘어놓고 그 사이를 걸어다니며 살펴보니 몇 가닥 길 같은 것이 보였다(그래서 12개 꼭지의 제목을 달 수 있었다). 당시에 는 도무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제 보니 지나온 곳에 몇 가닥 길이 나 있다. 인생에 계획표나 시간표가 있었을 리 없고, 무엇보다 조감이 없었다. 그런데 나름의 길을, 비교적 바르게 온 것 같다. 나 혼자 의 힘이 아니다. 무언가 이끌어주는 큰 힘이 있었고, 늘 혼자라고 생각했 었는데 실은 멀리 또 가까이에서 격려와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돌아보니 나 자신은, 알 수 없는 열정에다 부끄러움과 소심함이 겹쳐 있고 계산능력이 전혀 없다. 그냥 바보같이, 우직하게 한 길로만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디에 나의 정체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은 했다. 돈 없는 사람을 부자라고 부르는 법은 없는데, 있는 힘껏 공부하지 않으면, 힘껏 읽고 쓰지 않으면, 나는 나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라는 생각. 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더욱, 벌써 뒤돌아보게 된 것 같다. 그렇다 해도 기왕에 나온 책의 후기를 모으는 일에 무슨 뜻이 있을까 많이 생각했다(십오년 전에 누가 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십 년 뒤에 무얼 하겠느냐고. 그래서 며칠 생각한 뒤 후기들을 묶겠노라고 대답했 다. 십 년 뒤에 이 글을 묶어놓고 다시 오 년 넘게 생각해보았다). 나 자 신이 무슨 기념비같은 것이 될 일은 없다. 그러나 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그렇지만 있는 힘껏 헤쳐온 삶이, 홀로 조용히 펼쳐온 몹시도 외로웠던 고투(苦鬪)가, 혹시 하나의 길로 비쳐서 어느 젊은이에겐가 위 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이 책을 펴낸다. 자신은 없다. 물론 어디를 향해서인지는 모르는 것에 대한 큰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 다. 내 힘만으로 살았다고는 생각지 않기에. 첫 다섯 장의 사진은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숙소가 바로 건너다 보이는 연구실, 그리고 서울의 연구실과 여주 집필실 책상 사진이다(2008년 겨 울부터 2013년 겨울까지의 방학 동안에는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에 서 일했다). 프라이부르크의 두 책상 사이의 거리는,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도 했으나 늘 가까웠고, 가장 가까웠을 때는 15m 정도였다. 서울 연구실과 여주 집필실 책상까지는 99km이다. 프라이부르크에서는 그 15m를 못 건너가서 걸핏하면 연구실에서 밤을 새웠다. 서울에서는 갈 형편만 되면 심야에도, 새벽 두시든 세시든 떠난다. 가다가 너무 지쳐서 사고라도 나겠다 싶으면 노변에 차를 세우고 눈을 붙이기도 한다. 늘 그 렇게 달려간다. 그곳의 작은 책상이 내가 글을 쓰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 년간 프라이부르크의 그 15m 사이에서 네 권의 독문 연구서가 마 무리되었다. 첫 책인 괴테 연구서와 두번째, 세번째 책은 독일의 좋은 출 판사에서 출판되었고 네번째 책은 고맙게도 독일 괴테학회의 명저 시리 즈에 포함되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고등연구원 의 객원연구원 초빙을 받은 이래, 학기 중에는 서울의 학교에서 정상근 무를 하면서 방학기간 동안에 마무리 한 책들이다. 연구서를 사람이, 그 것도 남의 나라 말로, 그렇게 단시간에 연이어 써낼 수는 없다. 그뒤에 는, 또 그 앞에도 무언가가 있다. 예컨대 첫 책 괴테 연구서 “Sage denn, wie sprech ich auch so sch?n?” Zur Macht der Poesie bei Goethe(‘말해 주세요, 어찌하면 나도 그리 아름답게 말할 수 있나요?’ 괴테의 시가 가 진 힘)?그 한 권의 책 앞에는 세 권의 방대한 책이 있고 그뒤에도 심 혈을 기울인 두 권의 책이 따른다. 『괴테 시전집』, 『괴테와 발라데』, 괴테 자서전인 『시와 진실』(공역)이 그 앞에 있는 책이고 뒤따르는 책이 『서 ?동 시집』과 『서?동 시집 연구』이다. 이 책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국내에 서 나온 방대한 괴테 관련서들이다. 그밖에도 『헤세 시선집』, 『죽음의 푸 가?파울 첼란 시선』 같은 중요한 책들이 이 시기에 나왔다.) 『괴테 시 전집』은 대시인 괴테가 평생 쓴 헤아리기도 어려운 시를 거의 전부 옮긴 것이다. 『괴테와 발라데』는 괴테의 담시만 모아 해설을 달고, 작곡된 작 품들의 해설에는 연주 작품까지 함께 CD로 첨부하였다. 『괴테 시전집』 과 『시와 진실』은 각각 출간되기까지 십오 년씩 걸렸다. 그 이상으로 오 랜 세월이 걸린 『서?동 시집』과 『서?동 시집 연구』는, 첫 독문 연구서와 마찬가지로 독일 발슈타인 출판사에 가 있는 네번째 책의 토대가 된 책 들이다.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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