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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태안사

곡성 태안사

執筆·編輯者: 박철원, 오정훈, 백웅기, 최민주, 김준, 공종찬

동서종합문화재연구원·2022-05-01

  • 236쪽
  • 210×210mm
  • 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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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본 보고서는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 정비사업부지에 대한 발굴조사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조사는 2020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서 진행하였으며, 이에 대한 내용을 종합하여 정리하였다. 1차 조사는 2020년에 면적 1,070㎡(발굴:208㎡, 시굴:862㎡)에 대하여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탑(보물 제 273호)이 세워져 있는 방단 내부와 방단외곽 주변에 놓여 있는 초석에 대한 성격을 밝히고자 하였으며, 2021년에 진행된 2차 조사는 적인선사탑 동쪽에 대한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건물지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면적 722㎡ 범위에서 실시한 발굴조사 내용을 정리하였다. 곡성 태안사는 곡성군 죽곡면과 순천시 황전면의 경계에 솟은 봉두산(해발 753.8m)의 서쪽 산중턱에 위치하며, 해발 300m 내외의 계곡부에 입지하였다. 태안사는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에 걸쳐 적인선사 혜철과 광자대사 윤다에 의해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동리산파의 중심사찰로 대가람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는 효령대군의 원당이 되어 왕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사세를 확장하였다. 하지만 임진왜란기에 접어들면서 전란으로 사세가 축소되었고 조선후기에 건물의 중창 및 재건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였지만 한국전쟁 때 방화에 의해 대웅전을 비롯한 15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후 1969년 곡성군의 보조로 대웅전을 재건하는 등 근래에 들어와 많은 중창불사가 이루어져 현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보제루, 혜화당, 선원, 염화실, 능파각, 일주문 등의 건물이 세워졌다. 현재 태안사에는 적인선사 혜철의 승탑인 적인선사탑(보물 제273호)와 탑비, 광자대사탑(보물 제274호)와 탑비(보물 제275호), 청동 대바라(보물 제956호), 동종(보물 제1349호), 능파각(시도유형문화재 제82호), 태안사(문화재자료 제23호), 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170호) 등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어 당시 태안사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태안사는 그간에 전각이 차례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문화재 발굴조사와 같은 고증작업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있다. 따라서 태안사에서 처음 이루어지는 이번 발굴조사는 향후 진행될 정비·복원사업에 대한 실증적인 기초자료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적인선사탑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1차 조사에서는 적인선사탑을 세워놓은 방단 내부에서 초석의 적심시설이 각 모서리에서 확인되어 적인선사탑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현재의 지면 아래에서는 방단이 조성되기 전 축조되었던 건물지의 기단으로 추정되는 석열이 조사되었다. 2차 조사는 적인선사탑 일곽 동쪽으로 건물지 4동과 배수로 2기 등 다수의 건물지를 확인하였다. 이러한 건물지가 적인선사탑과 관련한 영역 내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건물이 지속적으로 증축, 개축 되는 과정에서 선행하는 건물지에서 사용되었던 석재를 재사용한 흔적이 나타나고 이후 경작 등에 의해 대부분의 건물지가 온전하지 못하고 유실이 심한 상태였다. 현재 태안사와 곡성군은 적인선사탑의 국보승격과 태안사 종합정비를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곡성 태안사에 대한 지속적이고 계획적인 학술조사가 이루어져 사찰의 옛 모습과 위상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목차펼치기

Ⅰ. 머리말 Ⅱ. 유적의 위치 및 환경 1. 자연ㆍ지리적 환경 2. 고고ㆍ역사적 배경 3. 조사지역의 지명유래 Ⅲ. 조사경과 및 조사방법 1. 조사경과 2. 유적의 층위 Ⅳ. 조사내용 1. 적인선사탑 2. 건물지 3. 기타 Ⅴ. 고찰 Ⅵ. 맺음말 사진 곡성 태안사 발굴조사 출토유물 목록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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