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jayu.org
한국 근대시의 흐름과 고원

한국 근대시의 흐름과 고원

곽명숙

(도서출판)소명출판·2015-01-10

  • 문학
  • KDC 811.609

로그인하면 내 서재에 추가할 수 있어요.

책 소개

우리는 유전병이나 가문의 병보다는 오히려 다형적이고 리좀적인 독감 때문에 진화하거나 죽는다. ―『천 개의 고원』에서 시에 대해 본능적으로 매혹되어 즐기는 향유와 다르게, 시인과 작품을 연구하고 의미를 캐내는 작업은 지난한 일이다. 언어에 대한 끌림을 미뤄두고 나는 텍스트의 다양한 바깥을 기웃대거나 문학사의 지평 위에서 서성였다. 스스로가 체계라든가 계통의 성채를 구축하는 일에 취약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연구 결과를 책으로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은 개화기 무렵부터 시작하여 해방기까지 진행된 한국 근대시의 흐름을 따라 여러 시인을 다루었지만 어떤 체계의 모델이나 계통의 나무를 그리고 있지 않다. 문제의 지점들을 답사하듯이 오르다 보니 이 책의 장들은 하나하나의 고원처럼 떨어져있다. 때로는 동일성이나 선형성을 기반으로 구축된 저작물을 보면서 그 탄탄한 사유의 흠잡을 데 없는 아름다움에 찬탄을 보내기도 하지만, 단속적이거나 우연적일지라도 다양체와 탈주선의 흔적을 추적하거나 상상하는 것에 저자가 더 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1부에서 근대시의 출발 지점을 다루면서 『독립신문』의 애국?독립가나 김억과 이광수의 시론과 시가들이 기대고 있던 ‘노래’의 기능, 이와 대칭처럼 뻗어 나온 상징주의 시파의 예술적 욕망과 미의식을 다룬 것도 그런 욕구의 소산이었다. 2부에서는 193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였던 정지용, 김기림, 오장환을 통해 근대성의 형상과 파편을 추적하고자 했고 그 탐지기 노릇을 한 것은 여행과 감각, 알레고리와 언어였다. 3부에서는 윤동주, 오장환, 설정식을 중심으로 일제 말 암흑기와 해방기의 비극적 현실을 시인들이 어떻게 문학의 세계로 끌어올렸는가를 보고자 하였다. 시 문학에서 여러 다양체를 분화시키는 힘은 시대의 현실과 예술적 미의식 사이의 긴장이라고 생각한다. 시인과 시대는 텍스트를 감싸고 있는, 텍스트 위나 아래에 보이지 않지만 쓰여 있는 텍스트이다. 그러나 그것은 텍스트의 모든 것이 환원되는 중심이 아니라, 작품 속에 현전하는 동시에 독립해 있고 전복시킬 수도 있는 또 다른 구조일 것이다. 텍스트의 내부와 바깥에 대한 사유를 동시에 욕심 부리다 보니 실증적 연구와 텍스트 해석의 중간쯤에 머무르게 된 듯하다. 시의 발표 형태와 시집 수록본 사이의 개작 양상 등등에 점차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도 그러한 과정에서 취하게 된 버릇이다. 그러나 늘 실증적인 부분에서 학자로서의 엄밀함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남아서, 어떤 지점에서는 텍스트 해석을 내세워 그 뒤로 숨은 것은 아닌가라는 부끄러움이 든다. 석사학위논문의 주제였던 오장환은 오랫동안 한국 근대시의 흐름을 좇는 여정의 거룻배이자 이 책의 거멀못이 되었다. 어찌 보면 장대하고 파고 높던 한국 근대시의 역사를 무모한 한 마리 나비처럼 횡단한 셈이다. 기존에 발표했던 논문들을 모아 재구성하며 다듬어 수록했는데, 발표된 시기를 훑어보니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약 15년에 걸쳐 쓴 글들인 셈이다. 미숙하던 시절의 논문과 석사학위논문의 많은 부분을 미처 수정하지 못하고 수록하게 되어 아쉽지만 이 글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텍스트의 해석이 지평과 지평의 마주침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면 나는 이제 새로운 지평에서 다른 고원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시라는 근원에 대한 갈망을 품고 근대문학 담론의 지층에서 서성이고만 있었다. 하나의 고원에 오를 때마다 문학 연구자로서의 보람과 시인들에 대한 애정을 느꼈지만, 그곳에서 마주친 것은 일종의 황량함이었다. 그것은 나 자신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이 길 위에 서 있으면 현명하게 대답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 더 현명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표현이나 논리의 미흡함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료와 해석의 오류이다. 섣부르게 꺼내거나 말한 것들이 언제든지 새로운 발견과 고증에 의해 반박될 수 있다는 것은 연구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면서 학문의 소명이기에 연구자분들과 독자 제현의 질정을 바란다. 그럼에도 서문의 자리를 빌어서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쓰는 큰 보람인 듯하다. 첫 책을 늦게 내어서 감사의 인사가 늦어 송구스럽다.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제자를 학자로 다듬어 주시고 시의 길로 인도해주신 오세영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학자로서 귀감을 보여주시고 현대시 연구의 정도를 알려주신 김용직 선생님과 한계전 선생님, 그리고 한국 현대문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키워 주신 김윤식 선생님, 조남현 선생님, 권영민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커다란 나무와 같은 은사님들을 가까이에서 우러러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자 영광이었다. 이제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도 쑥스러워진 이들에게도 감사한다. 그들이 있어 우울하고 탁하던 시절을 열정과 연대감으로 지나왔고 그들의 명민하고 탁월한 지성의 빛을 따라 여기 서 있을 수 있노라고. 모두를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지금도 곁에서 나를 지켜봐 주고 분발하도록 격려해주는 선배님들과 동료들, 그리고 나에겐 둥지와도 같은 학과의 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린다. 더불어 부족한 원고를 출판하기까지 애써주신 많은 분들이 있다. 어려운 출판 환경 속에서도 인문학 학술서를 맡아주신 소명출판의 박성모 사장님께 존경의 마음을 올린다. 머뭇거리는 필자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시고 원고를 기다려 주신 공홍 편집부장님, 더딘 교정 작업을 함께 하며 책을 완성해 주신 편집부 최지선 씨께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부모님과 시어머님은 내겐 인생을 실감하게 하는 척도이자 긍정의 발판이다. 아직 기댈 곳을 비워드리지 못해 죄송스럽지만 부디 오래오래 곁에 계셔주길 부탁드리고 언제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서툰 엄마를 참아주고 함께 성장하고 있는 선과 원에게도 고맙다. 남편에게는 무엇으로 표현할 길이 없다. 함께 할 날이 길게 남아있길 바라며 그의 덕분에 이번 생은 따뜻하고 덜 외로울 수 있는 것 같다. 2015년 1월 곽명숙

리뷰 남기기

로그인하면 리뷰를 남길 수 있어요.

리뷰 0개

아직 리뷰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