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민주의 역사학과 제국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기획/ 윤해동·이성시 (엮은이)
(주)도서출판 책과함께·2016-04-08
- 368쪽
- 신국판
- 역사
- KDC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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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머리말 식민주의 역사학과 근대 역사학 윤해동 1. 4월혁명 이후 ‘식민(주의)사학의 극복’은 한국 역사학계의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였다. 오랫동안 대표적인 한국사 개설서로 인정되어온 《한국사신론》은, 1961년 《국사신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간될 때 식민지 ‘어용사가’들의 ‘식민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으로 책의 첫머리를 채웠다.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15년이나 지났음에도 한국 역사학계는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에 자각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아시아적 정체성’ 이론이나 ‘사대성론’ 등의 각종 타율성 이론이 공공연히 학계를 배회하고 있었다. 또한 ‘식민주의 역사학’을 만들고 이끌어온 일본의 전후 역사학계도 그때까지 전혀 자신의 인식을 바꿀 의사가 없었다. 1950년대 후반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회담’이 오랫동안 중단되고 있었던 가장 크고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역사인식을 둘러싼 양국 간의 차이였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이런 사정을 짚어볼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식민주의 역사학’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오랫동안의 논의를 거친 끝에, 식민주의 역사학의 본질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첫째 ‘식민주의 역사학’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과 지배를 위해 만들어진 역사학으로서, 식민 정책의 일환으로 기능해왔으며, 이를 위해 ‘역사 왜곡’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식민주의 역사학은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크게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중심으로 자신의 논리를 구축해왔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식민주의 역사학은 식민 통치를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한국사를 타율적이고 정체적인 방식으로 구성해왔다는 것이다. 한편 이런 비판 위에서 구성된 새로운 시각이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이었고, 내재적 발전론에 바탕을 둔 한국사 연구는 민족국가 건설과 국민 통합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이 기대되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북한 등에서도 내재적 발전론 혹은 ‘내발적 발전론’은 자국의 민족주의적 역사 전개를 이론화하는 중요한 토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리하여 동아시아 지역의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은 민족국가 건설과 국민 통합을 위한 새로운 역사학 논리 곧 내재적 발전론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해체되고 새로운 세기로 접어드는 즈음, 내재적 발전론의 일국사적 시야를 비판하는 다양한 역사학적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그 가운데 하나로 거론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 이른바 ‘식민지 근대론’이라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론은 식민주의 역사학이 근거를 두고 있다고 비판받던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이 단지 내재적 발전론의 어두운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요컨대 서구를 중심으로 보는 ‘근대’는 ‘식민주의’를 그 이면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근대성과 식민성은 ‘동전의 양면’ 아니 ‘하나의 몸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가 아닌 ‘제3세계’의 형편은 어떠했던가? 식민지 근대론을 단지 일국사적 시야에서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헤겔을 비롯한 유럽 학자들이 ‘역사 없는 민족’이라고 간주했던 민족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회복하고 있는 것일까? 2. 영국의 역사학자 휴 트레버-로퍼(Hugh Trevor-roper)는 1963년 “유럽인의 개척과 식민 지배 이전의 아프리카에는 역사가 없다. 아프리카에는 유럽인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 그 나머지는 암흑이다”라고 선언하였다. 트레버-로퍼는 헤겔의 논리를 답습하면서, 문자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아프리카에 역사란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오래전 헤겔은 지리-기후결정론(geo-climatic determinism)에 입각하여, 극한기후 지역에 살고 있는 흑인들의 인간성과 문명의 가능성을 부정한 바 있다. 헤겔은 아프리카를 ‘유아기의 인류이자 고차원의 사고 능력이 없는 흑인’들의 땅으로, ‘어두운 밤의 장막에 둘러쳐진 대륙’으로 묘사하였다. 1960년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헤겔의 아프리카관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이자 학자인 레오폴드 셍고르(Leopold Senghor)는 헤겔의 지리-기후결정론을 수용한 위에서 흑인들의 정체성을 발견하려 노력하였다. 그는 흑인들이 추상적인 사고력보다는 문학과 예술 등의 감성적인 재능을 발휘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아직 헤겔의 유산은 섣불리 극복하기 어려운 뿌리 깊은 도그마로 남아 있었다. 한편 트레버-로퍼의 주장을 계기로 이른바 ‘아프리카 논쟁’이 촉발되었는데, 이후 아프리카의 역사를 둘러싼 새로운 시각이 힘을 얻게 되었다. 그 중심에 자리한 것이 이른바 아프리카 중심주의(Afro-centrism)였다. 이는 유럽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아프리카 대륙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복원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이런 움직임은 유럽에 대한 적대적 시각을 담은 낭만주의적 주장으로 나타나기도 했던바, 셰이크 안타 디오프(Cheikh Anta Diop)의 《문명의 아프리카 기원The African Origin of Civilization》(1974)이나 마틴 버널(Martin Bernal)의 《검은 아테네Black Athena》(1987) 등이 대표작이다. 이들은 고대 이집트문명과 그리스문명의 아프리카 기원설 등을 주장하였다. 이런 노력은 유네스코의 《아프리카사 개론General History of Africa》(1999, 전 8권)의 완성으로 결실을 맺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수전 벅모스(Susan Buck-morss)는 《헤겔, 아이티, 보편사Hegel, Haiti, Universal History》(2009; 김성호 옮김, 문학동네, 2012)라는 책에서 헤겔과 아이티 혁명을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그녀는 헤겔의 정신이 유럽의 식민지에서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의 피와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또 헤겔이 유명한 《정신현상학》에서 그렸던, 그리하여 서구 근대정신의 토대가 되었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가진 유럽 중심주의적 모순을 해부한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 대한 서구의 ‘기억’과 노예무역과 식민지의 노예노동에 대한 의도적 ‘망각’ 위에서 구성된 것이,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는 것이다. 3. 언뜻 보기에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과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의 탈식민주의적 역사인식은 상당히 다른 경로를 거쳐 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초기에는 양 지역 모두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약한 상태에서, 식민주의적 측면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비판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고 있었다. 이루지 못한 근대성 혹은 자신들이 갖지 못했다고 간주되어왔던 근대성의 여러 측면들을, 제국주의 침략이 없었다면 자신들도 가질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근대성에 대해 동일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식민주의 역사학이 주장하는 결여된 근대성은 열심히 노력하여 따라잡는다고 해서 성취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수전 벅모스의 헤겔 비판과 식민지 근대론은 그다지 먼 거리에 있지 않은 것이다.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 혹은 탈식민주의 역사학의 인식론이 이런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식민주의 비판만이 아니라 근대 비판이 함께 필요했던 것이다. 근대 비판이 식민주의 비판과 결합하는 지점에서 궁극적인 탈식민주의 역사인식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은 근대 역사학 비판으로 수렴한다. 혹은 근대 역사학이 갖고 있는 식민주의적 성격을 비판하는 데서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은 출발한다. 따라서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이 ‘관변사학’이니 ‘어용사학’이니 하는, 역사학자들이 처한 처지나 지위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할 수는 없다. 게다가 ‘역사 왜곡’이나 ‘식민정책학’과 같은 좁은 지형에 식민주의 역사학 비판을 가둬두어서도 안 된다. 관변이나 어용을 넘어서서 근대 역사학에 종사하는 역사학자 일반이 추구하던 것이 식민주의 역사학이었다. 또 식민정책학이나 역사 왜곡과 같은 작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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