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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일본인들과 나눈 공공철학 대화

일본에서 일본인들과 나눈 공공철학 대화

김태창 구슬 이케모토 케이코 기록 조성환 (옮긴이)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2017-02-28

  • 888쪽
  • 철학
  • KDC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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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책머리에 ‘제재기복’(除災祈福)의 공공하는 철학 대화를 위하여 카타오카 류(片岡龍)_ 이 책을 손에 들고 계시는 한국의 여러분. 저는 이 철학이야기에 등장하는 일본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한국에서 어떤 인생을 보내고 계시는지요? 서울이나 부산 또는 대구와 같은 대도시에서, 회사나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 애쓰고 계시나요? 아니면 산이나 바닷가의 마을에서 자연을 벗 삼으면서 친구와 함께 생활하고 계시는지요? 한국에 남녀노소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듯이, 일본에도 다양한 인생이 있습니다. 그런 무수하게 다른 삶이 엮어 내는 직물을 전체로 보면, 각각 반도제(半島製)와 열도제(列島製)라는 차이도 느낄 수 있습니다만, 실 하나하나에 주목하면 역시 어디로부터 와서 언젠가는 어디로 사라지는, 그 길고도 짧은 시간 속에서 다양한 만남에 의해 다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의 흔적을 지구에 새기는, 하나의 생명 활동입니다. 그 생명 활동의 과정에서 우리는 서울 사람이나 부산 사람 혹은 대구 사람이 되고, 동경 사람이나 오사카 사람 혹은 센다이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됩니다. 그러나 역시 최후의 목적은 인간이 되는 것이지요.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행운, 그 행운을 살리기 위해서 완전한 인간이 되려고 하는 노력을 우리는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특히 근대 이래의 일본은 타율적인 행운의 연속에 의해서 달콤한 꿈을 꾸어 오는 과정에서, 스스로 인간이 되고 함께 행복한 세계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의지와 실천의 귀중함을 망각해 버린 것 같습니다. 한국은 어떤지요?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와 완전한 인간이 되려고 걸어가는 대장정에서 실감되는 생명 성장의 기쁨, 그것은 어느덧 진한 아스팔트에 의해서 완전히 포장된 상태는 아닌지요? 이 인생의 울퉁불퉁한 대장정을 이야기의 기복처럼 느끼는 것은 가능한가요? 제가 공공철학이야기의 주인공인 김태창 선생님과 처음 만난 것은, 이 책의 첫째 가름 넷째 마디에 수록된 「일본인의 참마음(實心)이란 무엇인가?」라는 대화가 행해진 2008년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 그때의 대화 내용이 들어 있는 『함께 공공철학한다-일본과의 대화·공동·개신』(『ともに公共哲学する日本での話·共働·開新』)이 간행되었는데, 저는 제가 나오는 대화 부분은 읽지 않고 건너뛰었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그때와 상당히 달라져 있는 것이 왠지 부끄럽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이번에 오랜만에 그때 대화하며 제가 한 말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자신이 변했다기보다는 성장한 것에 대한 솔직한 기쁨,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 주신 김 선생님 이하 여러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여기에서 인생의 불가사의함과 생명의 신비함을 느꼈고, 그것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일본인의 실심이란 무엇인가?」에서 김태창 선생님이 반복해서 끈질기게 우리에게 던진 물음은, 종래에 일본인의 마음이라고 여겨져 온 ‘무사’(無私) 정신은 윗사람으로부터 강제된 것으로, 일본인의 자연스럽고 진실한 마음은─한국인이나 다른 많은 민족들과 마찬가지로─역시 행복을 바라는 ‘사’(私)의 마음이 아닌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해 저는 그때, 확실히 ‘무사’(無私)의 연장선상에서 ‘멸사’(滅私)가 주창되고, 그것이 일본뿐만 아니라 근대의 아시아에 가져다 준 해악은 인정하지만, 그런 때가 묻기 이전의 가치를 동아시아 유교 등에서 다시 찾아내고 싶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때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김태창 선생님이 절실하게 제기하신 문제 자체에는 거의 마음이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입니다만, 전후(戰後)의 풍요로운 일본에 태어나서 근래의 장기화된 불황 속에서도 그다지 곤란을 겪지 않고 40년 이상을 한가롭게 생활해 온 인간으로서 “행복을 기원한다”고 하는 생명 활동의 본질 자체를 거의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김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조금씩 그 단순하고 직접적인 물음의 의미를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원전사고를 계기로, 저는 분명하게 제 마음이 가려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의 실심(實心)도 역시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실현하기를 바라는 ‘사’(私)의 마음이라고. 그리고 ‘무사’(無私)란 말은 그것의 실현 조건으로, 생명을 지닌 존재로 이 지구에 태어나게 된 것에 대한 감사와 그 실현 과정에서 성장해 온 것에 대한 기쁨을, 그것이 자기의 노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타자의 도움도 받은 것이라는 관점을 강조하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사’라는 말이 역으로 타자의 ‘사’를 무시하는 힘을 갖고 말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너무나도 자각이 없었다는 점도…. 물론 일본인들이 모두 저처럼 자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타자’라는 말이 일본에 넘쳐나면서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타자는 아직 자각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인간이 되는 행복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사’의 존재에 대한 자각이 희박한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인생을 진정으로 충실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 자는 타자의 그것도 소홀히 하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타자의 인생의 행복에 자신도 공헌하면서 느끼는 기쁨은, 자기 인생의 행복을 한층 더해 줍니다. 이런 단순명쾌한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는 명확한 의지를 갖고, 그것을 “생생한 인간과 마음을 열고 얘기한다”고 하는, 놀랄 정도로 솔직한 수단으로 실현시키고자 뛰어든 한 사람이 던진 파문에 의해, 처음에는 뭔가 알 수 없는 당혹감을 느꼈던 사람들도 조금씩 변해 가고, 그 변화가 인간으로서의 성장이자 생명의 기쁨으로 자각되고, 거기에서 다시 개개의 이야기가 빚어지는, 그 파문의 중심점을 맺는 활동이 「공공철학교토포럼」의 철학이야기였습니다. ‘생생한 인간’이란 눈앞에 있어서 잘 아는 것같이 생각되지만 실은 잘 모르는 것 투성이인 구체적인 타자를 말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는 산이나 강이나 건물이나 도구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각각 다른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의 모든 사물이나 사건은 독자적인 생명의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것을 우리는 평소에 일상의 편의를 위해서 언어로 한데 묶거나 분류하거나 합니다. 편의는 편의로 자각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우리는 종종 같은 말로 표현된 것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물 하나하나, 사람 하나하나는 제각각 다릅니다. 같은 인간이라 해도 한국인과 일본인은 다릅니다. 같은 일본인이라고 해도 오사카 사람과 센다이 사람이 다르고, 같은 센다이 사람이라고 해도 유전자와 환경의 조합에 따라 다 다릅니다. 그렇기는 해도 역시 센다이에 사는 사람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같은 센다이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같은 인간입니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와 마찬가지로 분명 상대방도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고 바라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각각 서로 다른 타자이기 때문에 그 바람이 함께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먼저 ‘마음을 열고 얘기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대화에서 시작해서 각자의 생명을 살리는 길을 힘을 합쳐(共働) 찾아 나가고, 그것을 통해 함께 행복해지는 꿈이 새롭게 열리게 됩니다(開新). 이것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발전 과정입니다. 이런 신중하고 역동적인 자타 관계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일본적인 타자 이해에서는 도저히 생각조차 못했던 것입니다. 일본에서 ‘공공철학’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10여 년간의 일입니다. 이 시기는 마침 김태창 선생님이 일본을 대표하는 학자들과 함께 「공공철학공동연구회」를 주최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계속해 온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사전에도 ‘공공철학’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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