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발간사 오래된 새길, 생명평화의 길 옛것은 사라져가고 새것은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잠겨가는 시대. 복합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인류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으며 향후 나라의 진로를 가늠해야 할 엄중한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강자들의 공개념 실종은 우리를 좌절케 하고 대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며 인간적 삶의 희망을 잃어 가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삶의 고통으로 인해 극단의 선택인 죽음으로 행진한다. 사회의 전영역이 시장화되어가고 인간의 상품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민주화와 산업화는 인간화를 위한 과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화에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생명평화는 ‘생명을 존엄하게 여길 때 평화가 온다’는 말의 약칭이다. 화폐가치가 체제의 현실적 중심가치라면 인간가치, 생명가치는 체제 밖에 자리한 사회적 약자들의 이상적 가치이다. 그렇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가치와 생명가치는 중심부보다는 주변부의 이상적 가치로 자리하고 있었고 새로운 문화는 늘 주변부에서 창조적 소수자들에 의해 태동되었다. 하늘 뜻을 깨달아 앞길을 밝혀주었던 사람들, 자연의 빛을 드러내고 땅의 소리를 전해준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한 사람들은 대개 당대의 문명을 비판하고 새로운 전망을 품는 체제밖 사유를 한 사람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깨달은 영성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하늘·사람·땅과의 바른 관계를 이루려는 공생적 사유와 삶을 추구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주변부에서 체제밖 사유를 하며 새로운 문명을 전망하고 새길을 열어온 영성의 사람들, 풀뿌리 사상가, 다양한 삶을 꾸리는 생활자들이 있다. 이들은 생명평화라는 공동의 언어를 매개로 지난 30여 년 더불어 성찰하고 공부하며 일해 왔다. 이 책의 필자들은 종교인, 학자, 시인, 여론지도자, 사회운동가들을 포함하여 지역과 시민단체의 현장에서 일해온 생활자들을 망라한 남녀노소 30인이다. 새 문명을 전망하며 생명가치를 찾아온 사람들의 오랜 대화가 이제 결실을 맺어 자생적 풀뿌리 생명평화 담론이 책으로 엮어져 나옴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의도한 기획출판물도, 그렇다고 우연한 결과물도 아니라고 본다. 사상서, 이론서, 이론번역서, 방법론에 관한 책들이 체제적 성격이라면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주변부에 서서 반문명적 영성과 다양한 삶의 현장 증언, 그리고 실존적 고뇌가 담긴 자생적 풀뿌리담론으로서 마치 무크지 같다. 요기(yogi)적 관점과 커미싸르(commissar)적 관점, 더 나아가 요기-싸르(yogi-ssar)적 관점까지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이 담겨 있는데 이점이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생명평화의 패러다임이 다양한 입장을 포용하는 개방성을 담은 통 큰 사유의 틀이라는 인식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밥을 비롯한 일상적 삶에 관한 작은 이야기들 역시 흥미로울 뿐 아니라 소비자가 아닌 생활(생산)자로서, 유권자가 아닌 주권자로서 삶의 정치, 일상의 정치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한편 주목할 점은 필자들의 다양한 견해와 활동의 밑바탕에 흐르는 공동체와 영성에 대한 관심이다. 생명평화운동의 사회적 책임과 지향성이 우주적, 사회적 공공성의 창출에 있다면 이는 앞으로 영성(종교성)을 갖는 건강한 시민운동으로의 성숙과 도약을 기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본다. 또한 문명론적 접근을 해온 생명평화운동이 다가온 위기를 넘어서는 전위적 현실참여의 장을 열어가며 그 깊이와 폭을 더 확충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다만 여기서의 종교성은 종교적이라는 의미는 아니어야 할 것 같다. 또한 이러한 정신적 흐름은 앞으로 미학적 주제로도 이어져 갔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외람된 훈수를 두자면 생명담론은 지속적으로 이어가더라도 관념적 추상성에 기운 사상중심의 연구, 즉 연구를 위한 연구는 절제하면 좋겠고 실사구시적 접근에 주안점을 두었으면 한다. 또한 현실적합성을 갖는 생명평화의 의제설정과 실행기획이 절실히 요청된다.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서 인간적 삶이 가능한 문명사회를 이뤄갈 수 있을까? 3.1운동 100주년을 맞으며 생명평화의 새물결이 널리 널리 번져가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은 원불교 100주년 생명평화활동가마당 관계인사들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어려웠던 시절인 80년대 초반, 문명론적 접근으로 생명평화의 길을 여는 초석이 되셨던 작고하신 장일순 선생, 박재일 회장, 문순홍 박사, 그리고 김지하 시인, 장회익 교수님 등 선각적 현자들을 기억하며 높은 경의를 표한다. 생명평화는 모든 고등종교가 지향하는 오래된 새 길이다.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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