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몇 해 전부터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2017년 10월을 어찌 맞을까를 생각해 왔다. 500이란 숫자의 의미가 중(重)해서뿐만 아니라 기독교, 아니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하나의 거대한 행사로 이날을 지나겠으나 새로움을 일으키는 사건으로 만들 역량이 이 땅 교회들에게는 없는 듯하다. 2016년 10월, 필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주제로 열린 독일 개신교의 날 행사를 경험했다. 수십 만이 모인 이 행사에서 독일 교회는 난민을 비롯한 세계적 차원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마치 하느님께서 곤경에 빠진 하갈의 형편을 살펴주셨듯이(창16:13) 슬픔을 겪는 세상에 대한 교회의 책임으로 종교개혁을 완수하자고 다짐한 것이다. 특히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를 환호하고 아멘으로 수용하는 광경에 감동되었다. 유럽 교회를 향해 죽었다고 선포한 한국 교회 지도자들을 무색케 하는 광경을 베를린 교회의 날 행사장에서 목도한 것이다. 이에 반해 사회의 문젯거리로 전락한 이 땅의 교회들이 2017년을 지나는 방식이 정작 너무 안이하다. 아직도 시선은 교회 속에 함몰되었고, 자신에 대한 비판적 성찰보다 보신(保身)에 급급하며, 자기 밖에 적을 세워 자신들의 실책과 잘못을 모면코자 한다. 어느 신학대학들 하나 성한 곳이 없고 교단들마다 돈과 권력을 쫓다 율사들의 노예가 되고 있으니 가관이다. 예수를 여전히 빌라도 법정에 세우면서도 자신들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른다. 지난 촛불혁명으로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건만 교회의 변화를 가능타 여기는 사람들 수는 아주 적다. 말로는 초대교회로, 혹은 루터시대로 돌아가자 하나 실제로 그리 될 것을 누구도 절박하게 믿지 않는다. 해서 종교개혁 500년과 함께 오히려 교회의 종말을 걱정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기에 필자는 2017년이 교회 개혁을 넘어 기독교 혁명의 원년이 되길 바랐다. 천년을 지탱하던 가톨릭교회, 이후 500년을 유지한 개신교를 대신할 새로운 기독교가 이 땅에서 새롭게 태동될 것을 소망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기독교를 로마화시킨 역사적 형태라면 지금의 개신교는 자본주의화된 종교라 할 것이다. 3개의 ‘오직’(only) 교리로 대표되는 종교개혁 원리들 모두가 타락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지탱하고 있는 탓이다. 달리 말하면 현실 교회들이 타락한 자본주의 문화를 떠받치는 밑기둥이 되었다. 행위의 정의로움를 묻지 않는 ‘오직 믿음’, 물질적 축복과 등가(等價)로 이해된 ‘오직 은총’, 그리고 타자 부정적인 문자적 ‘오직 성서’가 개신교회 내에 만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주지하듯 대다수 교회들의 존재 양상은 철저하게 자본주의화되어 있다. 2-3중직 현실로 내몰리는 목회자들이 있는 반면 세금을 반대할 정도로 고액 연봉을 받는 성직자들이 병존한다. 몇백 억의 비자금을 조성한 목회자도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렇듯 빈부격차를 비롯하여 성직매매, 교회대물림 현상이 편법으로 확산되고 있는 바, 총칭하여 영적 파산의 경지라 할 것이다. 신앙보다는 법과 돈이 우선가치가 되었고, 평화와 관용보다는 배척과 정죄가 교회적 에토스가 되었기에 날개 없는 천사처럼 이들의 끝이 너무도 명백해 보인다. 이 책을 구상하기 전 읽은 책 중에서 성서신학자 A. 호슬 리가 쓴 『서기관들의 반란』이란 책이 있다. 제사장 중심으로 이스라엘 역사가 흘러왔고 그들을 견제·비판하기 위해 예언자 집단이 활약했던 것을 배워 알고 있다. 하지만 서기관들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신약성서 탓에 이들에 대한 평가는 박했고 상대적으로 부정적이었다. 오늘의 신학자들이 바로 구약시대 말기로부터 신약성서 시대를 살았던 서기관들, 율법학자들과 동류(同類)라 할 것이다. 포로기 말엽,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제사장들이 집단적으로 타락하자 서기관들이 이들의 문제를 지적·비판했으며 그 비판의 근거이자 토대로서 묵시문학 문서들을 쏟아냈다. 인습화된 성전(교회)이 아니라 ‘새로운 신학’, 즉 묵시문학의 틀거지로서 이스라엘 종교운동을 이끌었던 것이다. 당시 이들 서기관들은 현실비판을 넘어 현실을 부정할 만큼 제사장들의 성전신학과 불화했고 반목했다. 하느님의 새로운 현실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 재현되길 바라서였다. 이를 일컬어 호슬리는 ‘서기관들의 반란’이라 칭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 500년을 맞은 시점에서 이 땅의 신학자들 역시 교회 현실에 대해 반란을 꿈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삶이 고단하고 어렵기에 눈감고 ‘을(乙)질’을 감내하며 사는 현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예 길들여져 무수한 갑(甲)에 대해 용비어천가를 읊거나 힘 있는 제사장들 곁에서 권력을 탐하고 이득을 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는 분노한다. 교회를 섬기는 학문이란 이름으로 신학자는 자신의 비판적 기능을 방기할 수 없다. 제사장들이 타락한 시대에 신학자들이, 제대로 사유하는 목사들의 루터가 보였던 그 저항을 온몸으로 보여줄 때가 되었다. 촛불혁명 시대에 도처에가 갑(甲)의 부정과 횡포가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더 이상 ‘을(乙)질’하며 살지 않겠다는 자각에서 비롯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책을 함께 쓴 저자들이 필자의 생각에 힘을 보태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필자는 이 책을 기획했다. 종교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종교는 끝이다. 계시종교로서 자부심 넘친 기독교라 할지라도 바람에 날리는 한 줌 티끌에 다름없게 된다. 불교계 적폐청산을 위해 단식하는 한 스님의 이야기도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2016년 10월, 종교개혁 500주년을 1년 앞둔 시점에서 기획되었다. 고(故) 변선환 선생님 20주기 행사를 마친 시점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살아 계셨다면 2017년에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나셨을까를 상상한 결과라 말해도 좋겠다. 지난 20년 세월을 유지한 변선환아키브 이름으로 의사를 타진했고, 학자들을 모았다. 필자의 제자들로서 아키브에서 활동한 소장학자들 다수가 마음을 합해 주었다. 그리고 감신대 밖의 학자들로서 평소 필자가 눈여겨 보았던 몇몇 소중한 학자들도 함께했다. 신학 방향성은 다를지라도 삶과 생각이 진실했기에 필자가 청한 경우라 할 것이다. 전남 고흥, 프랑스 파리, 그리로 일본 오사카에서 강의하며 글을 쓰는 제자들도 필자의 계획에 힘을 보태주었다. 낯에는 강의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제자들도 죽을 힘을 다해 글을 써주었다. 목회자이면서도 학자의 본분을 지키며 살던 이의 글도 함께 실렸으니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이는 모두 변선환 선생의 삶을 존경했고 필자의 청(請)을 거절 못한 결과였겠으나 하늘의 은총이라 생각한다. 종교개혁 500년을 맞아 한국 땅에서도 서기관들의 반란이 일어나는 징조라 여기는 까닭이다. 그동안 10번 이상 모였고 하룻밤을 지새웠다. 이 책을 공동 지성의 산물로 만들고 싶었던 까닭이다. 필자는 집필진들에게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는 최소한 루터의 한 시각과 논쟁할 것이며, 둘째는 그 논쟁점을 아시아적 시각에서 진일보시켜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토착화 신학 전통 속에서 살아온 필자에게 이런 원칙은 대단히 중요했다. 더구나 루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루터의 시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 신학발전에 필요하다는 성서학자들의 의견도 있었던 탓이다. 집필자 19명 모두가 이런 원칙을 지켜 글을 완성시키지는 못했으나 우리는 모일 때마다 토론했고 각 저자들의 생각을 수정토록 요구했다. 지난한 과정이었고 귀찮은 일이었으며 때로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을 터인데 잘 감내해 주었다. 모두가 인격적으로 성숙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끝까지 함께하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도중에 글을 포기한 몇몇 분들 얼굴도 떠오른다. 안타까워하며 마음을 접어야 했던 선생님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19명의 글을 받고 필자와 편집위원들(이은선 교수, 최태관 박사, 홍정호 박사, 김광현 전도사)이 몇 차례 모여 다음처럼 분류했다. 처음 뜻과는 글 방향이 달라진 것이 있었기에 묶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크게 네 갈래로 묶을 수 있었다. 제1부에는 루터 신학 자체를 심화시키거나 서구적으로 적용·발전시킨 글 몇 편을 묶었다. 아…
목차펼치기접기
책을 펴내며 5 제1부 루터 안에서 루터 톺아보기 01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최성수 17 02 비구상적 하나님 / 심은록 53 03 근친애적 고착과 그리스도인의 자유 / 최태관 75 제2부 루터를 넘어 루터 밖으로 01 마르틴 루터의 『로마서 강의』 새로 읽기 / 김종길 107 02 ‘오직 행위’, ‘오직 믿음’에 응하다 / 김광현 131 03 타락/구속의 영성에서 창조 중심의 영성으로 / 최대광 157 04 자연을 통한 은총 / 이성호 185 05 종교개혁의 포스트휴먼 / 박일준 215 제3부 루터, 아시아적 문화에서 만나다 01 루터의 코랄과 한국찬송가 / 이천진 251 02 한국교회 예배개혁의 길 / 이정훈 279 03 식탁의 나눔과 소외로부터 보는 종교개혁의 현대적 과제 / 김진희 301 04 떡과 포도주로 본 종교개혁 / 이한영 327 05 한국 개혁교회의 경제신앙 / 김영철 355 06 촛불의 미학, 촛불의 시민신학 / 김정숙 379 제4부 루터 밖에서 아시아적으로 01 한국 개신교 시장신학의 해체를 위한 비평적 분석 / 박상언 407 02 대결에서 대화로 / 정경일 433 03 탈근대/탈식민 시대의 선교신학 / 홍정호 457 04 종교개혁 以後 신학으로서 ‘역사유비’의 신학, 그 아시아적 함의 / 이정배 479 05 유교 문명사회에서의 한국교회와 제2의 종교개혁 그리고 동북아 평화이슈 /이은선 507 주석 526 참고문헌 553 찾아보기 563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리뷰 남기기
로그인하면 리뷰를 남길 수 있어요.
리뷰 0개
아직 리뷰가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