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타카노 아야의 회화 세계(에 대한 비평적 메모) 임근준 AKA 이정우 _ 미술·디자인 평론가 타카노 아야(タカノ綾)는,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Takashi Murakami, 1962-)의 공장형 창작 스튜디오이자 신인 작가 매니지먼트 그룹인 ‘카이카이기키(Kaikai Kiki, 구 히로퐁팩토리[Hiropon Factory])’를 대표하는 화가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업 조수로 일했던 그가 카이카이기키 사단의 우청룡 같은 존재라면, 좌청룡 같은 존재가 미스터(Mr.[岩本正勝(이와모토 마사카츠)], 1969-)다. 1976년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난 타카노 아야는, 2000년 타마미술대학(多摩美術大?) 예술학부를 졸업했고, 일본의 아니메-망가 서브컬처를 연상케 하는 의사(pseudo)-순정만화(少女漫?)의 몽환적 화풍으로 특유의 SF소설적 회화 세계를 펼쳐내 작가로서 이름을 얻었다. 화가 자신의 페르소나로 해석될 수 있는 미성숙한 소녀의 캐릭터를 내세워, 아니메-망가의 세계뿐만 아니라 네오-팝 회화의 계보와 버내큘러 일러스트레이션의 문법과 고래의 미인도 전통 등을 소환해 한데 엮고, 그를 통해 문제적 교집합을 창출해내는 솜씨는 절묘하다. 그는 자신이 창출한 회화적 의사-순정만화의 시스템을 통해, 현대사회/문화의 현실과 실존에 대한 우회적 논평이 되는 장면?일상이나 보통의 대중문화에서 언캐니(uncanny)한 아름다움을 포착해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귀여움으로 양식화해내는 것이 핵심이 되는?을 꾸준히 작업으로 물화-제시해왔고, 이제 다소 폐쇄적이었던 그간의 대사회적 태도를 수정해, 모종의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1997년의 에서 작가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됐으니, 타카노 아야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프로테제로서 운명 공동체를 이뤄 포쿠(Poku)/수퍼플랫(Superflat)의 대표 작가로 활동해온 것도 벌써 20년에 가깝다. 1999년 일본 나고야의 파르코갤러리에서 열린 그룹전 에서 처음 유사한 의제를 파고든 여성 작가들과 함께 일파로 호명됐고, 그 호명의 비평적 효과는 2004년 미국 뉴욕의 매리언보스키갤러리에서 동명의 전시가 열릴 때도 여전했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기획한 두 차례의 기념비적 전시 (2000년)과 (2005년)에도 주요 작가로서 참여했고, 또 그 후광을 업고 2002년 프랑스 파리의 나노갤리리에서 개인전 를 열고, 2003년 역시 파리의 엠마누엘페로텡갤러리에서 개인전 를 열며 국제적 명성을 키우기 시작했다. _ “타카노의 작가성은 ART업계에서 아직 해석되지 않았다” 카이카이기키의 프로필 소개글은, “타카노의 작가성은 ART업계에서 아직 해석되지 않았다”라고 시작하는데, 이는 어느 정도는 사실로서, 대개의 평자는 그의 작업 세계를 진지하게 회화로 해석하기보다는 일본의 아니메-망가 서브컬처에서 태동한 다소 이국적인 화풍의 의사-팝아트로 묘사하려는 (다소 게으른) 경향을 봬왔다. 분석을 사절하려는 경향은 카이카이기키의 프로필 소개글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90년대부터 최근까지 할리우드 영화는 1960년대 미국의 공상과학 소설 군, 예를 들어 필립 K 딕 등의 하드 SF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난해한 내용을 일반이 이해하기까지는 3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타카노의 진가는 이후 30년 이상의 미래에서야 이해될 것으로서, 엄청난 미지의 정보가 넘쳐난다.” 해석이 쉽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수퍼플랫의 비평이 주로 남성 오타쿠(オタク, 汚濁后)를 중심으로 이뤄져온 탓이다. 예컨대, 미스터의 작업 세계는 ‘모에 미소녀’의 개념적 분석틀로 명쾌하게 비평해낼 수 있고, 그의 사랑스러운 소녀화들은 실상 하나도 빠짐없이 그의 더러운 성욕/남근과 등가물을 이루는 것으로 쉽게 단언해버릴 수 있다. (미스터는, 모에를 보는 눈을 결여한 무라카미 다카시와 달리, 진짜 오타쿠로서 메타-오타쿠의 아트를 창출하는데 성공한 첫 사례다.) “더러운 자신의 방 가운데에서 작품이 굴러가는(汚い自分の部屋の中に作品が?がってる)” 미스터 특유의 전시 연출 방식은, 이른바 “씹덕후”의 세계를 노골적으로 가시화해버리는 전략으로서, 문제 집단 ‘카오스 라운지’ 등의 활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하지만 타카노 아야의 작업은, 눈에 뵈는 것과 달리, 모에 미소녀의 문법으로는 비평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타카노 아야의 몽환적 소녀들도 분명 모에화 과정을 거쳤지만, 그들의 창조주인 화가의 욕망이 그려내는 세계에서 소녀 그 자체가 초점(소실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타카노 아야에게 소녀는 스킨일 따름이다. 후죠시(腐女子)들의 1차 창작에서 인물들과 양식화가 모두 스킨에 불과하고 핵심은 인물 간의 관계, 즉 커플링의 낙차에서 발생하는 갭모에(ギャップ萌え)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충 타카노 아야의 작업도 새로운 각도에서 분석이 가능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타카노 아야는 골방의 오타쿠도 아니고, 여성향(女性向, 죠세이무키)을 추구하는 넓은 의미의 후죠시(腐女子)도 아니다. 그래서 서브컬처의 렌즈로 해석을 시도하는 많은 이들은, 독해에 실패한 채 그의 그림을 낯익은 듯 낯선 이국?타자화된 아니메-망가 스타일의 소녀들이 타자화된 모습 그대로인 채로 타자가 아니라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한 세계?으로 물끄러미 관음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의사-오리엔탈리즘의 성립은 작가가 의도한 바일 테다.) 그렇다면, 타카노 아야가 발명해낸 미적-기계를 기동시키는 주된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바로 캐치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것은 그림 밖의 현실계(혹은 아니메-망가의 재현 세계)와 그림 속 메타-상상계 사이의 낙차에서 온다. 어릴 적 그가 SF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이유는 단순한 문학적 호기심이었을까?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불평등과 불합리에 대한 반작용은 아니었을까? (타카노 아야의 회화 작업은 현실 혹은 현존과의 낙차를 전제로 작동하는 미적-기계이기에, 그에서 파생된 설치 미술이나 입체 작업은, 현대미술계에서 그럴듯한 미적 확장을 연출하기 위한 것으로 뵐뿐, 작가가 정말로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아니라는 점이 강하게 느껴진다. 미스터가 제 망상계의 모에 소녀들을 3D 피규어로 만드는 일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거나 또 쓰레기 기관차의 설치와 전시 연출을 통해 제 모에 의인화의 폐쇄 회로를 공개적으로 자조하는 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아무튼, 타카노 아야는 일찌감치, 연도를 특정하자면, 대략 2002년을 기점으로, 완결성이 높은 자신만의 회화적 가상 세계를 창출해냈다. 이는 무작정 그리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성장시켜낸 세계가 아니다. 타카노 아야는 SF소설을 창작하듯이 몇 가지 전제 조건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서 그림을 그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테면 그는, 회화 작업에 나선 문학소녀였던 셈이다. _ 타카노 아야가 설정해놓은 회화 세계의 기본 특징 일단, 타카노 아야가 설정해놓은 회화 세계의 기본 특징을 꼽아보자: 1. 어린이 동화 일러스트레이션의 그림체나 망가-아니메의 템플릿을 가져다 쓴다; 소녀들의 팔 다리는 길고, 눈은 초점 없이 커다랗고(독해하기에 따라 ‘레이프 눈[レイプ 目]’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 눈은, 타카노 아야의 회화 세계에서 남녀 공용이긴 하다), 표정은 지극히 미약하고, 가슴은 납작하고, 관절 부위는 발기라도 할 듯 발그스름해서 성적 페티시를 자극하는 동시에 성장 가능성을 암시한다. (작가는 자신의 소녀 캐릭터들이 타케미야 케이코나 야마기시 료코 등을 참조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순정만화 전성기의 캐릭터들에 메타-기생하는 좀비적 존재들인 것.) 2. 종종 미인도나 춘화의 전통을 소환한다. (이에 관해선 전시 (2014)에서 여러 연구자들이 충분히 논한 바 있으니,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다.) 3. 중력이 극도로 약화된 무시간성(atemporality)의 공간이다. (SF적으로 재매개된 도시 공간에선 중력이 극도로 약화되지만, 현실도피적 자연 속에선 중력이 다소간 강화되기도 한다. 무시간성은 수퍼플랫의 시각성에 부합하는, 역사를 DB로 바라볼 때 발생하는 레트로 감각에 의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얼핏 현재 같아 뵈지만 실상 현재가 아닌, 어떤 유예된 차원에서 교묘히 직조된 시간대를 제시-구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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