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프롤로그 인문학은 시대마다 늘 모습을 달리했다 소크라테스와 공자에게 인문학을 묻다 며칠 전에 꿈을 꾸었다. 이 책의 서문을 쓰기 위해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던 차에 꿈에서 소크라테스와 공자를 만난 것이다. 꿈 속에서 나는 연이어 두 사람을 만나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다. 춘추(春秋) 시대 노(魯) 나라의 말이나 소크라테스 시대 아테네의 말을 몰랐던 내가 어떻게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만남이었기에 매우 설레었고, 언제 깰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다짜고짜 궁금한 사항들을 물었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요?” 그러자 두 사람은 의아한 듯이 내게 되물었다. “자네가 말하는 인문학이 무엇인가?”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차분하게 대답했다. “인문학이란 서양의 말로는 휴머니티즈Humanities 혹은 자유학과Liberal Arts라고도 하고, 동양의 말로는 ‘문사철文史哲’ 즉 문학과 역사, 철학을 아울러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더욱 답답한 듯 다시 물었다. “문학, 역사, 철학이라고? 내 제자 플라톤은 시인을 추방하자는 생각을 했지. 철학은 아마 애지자의 학(學)인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인문학은 뭘 하는 것인가?” 공자 역시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물었다. “인문학이라고? 그건 어떤 사람들이 하는 것인가? 그게 군자(君子)의 학을 말하는 것인가?” 그 순간 질문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는 ‘인문학’이란 말이 없었고, 대학도 없고 철학과와 사학과도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순식간에 그간 책을 통해 익혀 온 사항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자유학과’는 7학과로도 불리며 본래 자유 시민들의 교양으로, 중세 대학에서는 문법, 수사학, 논리학(변증술)과 산술, 기하학, 점성술, 음악을 가리킨다는 것을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인문학을 모른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아는 문사철로서의 인문학은 어쩌면 인문대학이라는 단과대학의 문 앞 비석에 새겨진 말일 뿐이다. 서양 중세대학에서 유래했지만, 우리에게 전해진 문사철로서의 인문학은 근대 유럽과 미국을 거쳐 자유로운 사고를 계발하기 위해 교양교육으로서 근대에 새롭게 편제된 것임을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인문학’이란 명칭이 ‘자유학과’에서 ‘인문학’으로 바뀐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인문학은 역사의 산물이며 시대마다 내용과 목적이 바뀌어 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는 동아시아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문헌은 ‘경사자집(經史子集)’으로 편찬되었고, 조선의 과거제도는 시문(詩文)을 위주로 하는 ‘진사과’(進士科)와 경학을 중심으로 하는 ‘생원과’(生員科)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과거는 일반 시민적 교양이 아니라 국가를 통치하는 관리가 되기 위한 시험이었다. 이미 눈치 챈 독자들이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꿈을 핑계로 지어낸 가상의 이야기다.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한 까닭은, 인문학조차 역사를 초월하여 늘 존재했던 그런 학문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물음의 내용이 달랐고, 그 분야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직업이 달랐고, 소속된 기관이나 사회제도가 달랐으며, 따라서 사회적 역할 또한 달랐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달리 말해 인문학도 늘 변해왔다는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와 붐, 어떻게 이해할까?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인문학과 관련하여 설명하기 어려운 모순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는‘인문학 위기라는 논란이 분분하다면 사회에서는 ‘인문학 붐’이 한창 열기를 더해가는 모습이다. 한편에서는 위기라고 말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붐이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그렇다면 정말 인문학은 위기인가, 아니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학자로서 살아가는 내게 이 문제는 학문적 물음이기 이전에 실존적인 문제, 먹고 사는 것과 직결되는 절박한 현실이다. 하지만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없었고 현실로 직접 느낄 정도의 상황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는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대부분 교양강의를 담당하면서 최소한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박사과정에 진학한 1996년 무렵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더욱이 1997년의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위기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기업 구조조정의 바람은 대학에까지 몰아쳤고, 대학에서 인문학 관련 교양과목은 점점 축소되거나 사회적으로 인기 있는 강좌들로 대체되어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1990년대 말의 ‘인문학 위기 담론’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듯하다. 다른 한편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비중이 커지면서 많은 인문학 전공자들은 학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 가운데 일부는 학원 강의를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세기말과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조선의 역사와 18세기 문학, 일제 강점기의 문화 연구가 일종의 붐을 일으켰고, 일반 시민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인문학 강좌가 유행하면서 인문학은 다시 붐을 일으키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대학의 상황은 이와 전혀 달랐다. 90년대 말부터 일부 대학의 철학과가 폐과되고 대신 문화콘텐츠학과 혹은 문화기획학과 같은 새로운 학과 명칭으로 바뀌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흐름은 계속 지속되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인문대학은 철학과와 국문학과, 사학과 그리고 영어영문학과,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점차 학과들은 통폐합되고, 인문학 관련 교양과목들은 다른 실용적인 강좌들로 점차 대체되어 왔다. 분명 대학의 상황만을 놓고 보자면 인문학이 위기인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인문대학 출신 졸업자들의 취업률이 갈수록 하락하는 상황은, 전반적인 대학졸업자 취업률 부진이라는 현실과 상관없이 인문학을 전공하면 취업이 더 힘들다는 사회적 추세를 돌이키지는 못하였다. 이제 모든 것은 ‘취업’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취업에 불리한 것은 대학에서 축소되거나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람직하든 바람직하지 않든 지금 현실은 그렇다. 그렇다면 정말 인문학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한때 2000년 서울 인사동에 문을 연 ‘철학아카데미’에서 개설한 철학과 예술에 대한 다양한 강좌들은 성황을 이루었고, 몇몇 연구자들의 공동 연구공간이었던 ‘수유+너머 연구실’은 학자와 시민이 일종의 공동체를 이루며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였다. 지금은 전국의 수많은 지역자치단체와 공공 도서관에서 다양한 인문학 관련 강좌가 개설되며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인문학 위기와 붐’이라는 모순된 현상의 공존은 대학의 ‘안’과 ‘밖’이라는 시야에서 보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의 ‘안’에서 터져 나오는 인문학 위기가 인문학 학제의 위기라면, 대학의 ‘밖’에서 보이는 인문학 붐의 열기는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새로운 요구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학의 안과 밖을 나누게 한 인문학에 대한 요구가 어떤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돌아온 현자와 전문가의 진지전 나는 인문학 위기와 붐이라는 현상을 두 가지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가 ‘돌아온 현자(賢者)’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다른 하나는 전문가의 ‘진지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표현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 변화의 양상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절단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가 대중매체를 통해 잘 보이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돌아온 현자’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나는 ‘돌아온 현자’라는 사회적 현상이 개인적 고민의 해결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이른바 인문학자가 사회적으로 비쳐지는 모양새가 달라지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보편적 물음을 던지고 이성적 추론을 통해 새로운 개념과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현자는 인문학을 통해 개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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