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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원서명: JACQUES PREVERT: Poèmes et textes by Gabriel Lefebvre)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원서명: JACQUES PREVERT: Poèmes et textes by Gabriel Lefebvre)

자크 프레베르

(도서출판)열림원·2017-03-15

  • 416쪽
  • 문학
  • KDC 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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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개인적인 고백부터 시작하자면, 예전에 나는 프레베르를 잘 알지 못했다. 그를 모르면서도 안다고 착각했다. 대학에서 여러 해 동안, 「20세기 프랑스 시」를 강의했을 때, 프레베르 차례가 되면 학생들에 게 그를 프랑스의 일반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자 이브 몽탕 의 샹송으로 유명한 「고엽Les Feuilles Mortes」의 작사자로 소개하고, 그의 대표작인 「바르바라」, 「절망은 벤치 위에 앉아 있다」, 「열등생」, 「내 사랑 너를 위하여」 등을 읽게 했을 뿐이다. 이러한 강의 경험이 그의 시에 대한 내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공고하게 만든 원인이었는지 모 른다. 그 당시 나는 그의 시가 독특하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그렇다 고 해서 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뜻은 없었다. 그 이유는 첫째, 그가 동년배의 브르통, 엘뤼아르, 아라공 같은 초 현실주의 시인들이나 르네 샤르, 프랑시스 퐁주 같은 지성적 시인들 에 비해서 문학적 비중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 른 시인들은 평생 시인의 길을 걸었던 반면, 프레베르는 시보다 영화 에 더 많은 관심을 쏟기도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젊은 날 대학원 학 생이었을 때 모리스 나도의 『초현실주의의 역사』를 읽으면서 1930년 초 초현실주의 그룹의 리더인 브르통이 그룹을 정비하기 위해 축 출한 여러 동료들 중에 프레베르가 포함된 것을 알고, 무슨 까닭에 서였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대중적(?) 시가 초현실주의의 실험적인 문학적 이념에 맞지 않아 그가 제명되었을 것이라고 단정지은 데 있 었다. 그 이후 이러한 편견은 바로잡힐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내 머릿속 에서 거의 사실처럼 자리잡았다. 프레베르에 대한 나의 잘못된 이해 혹은 선입견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된 것은 정년을 맞아 자유로운 시 간 속에서 우연히 이브 쿠리에르가 쓴 프레베르 전기를 읽고서였다. 그 전기에 의하면, 프레베르는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이후, 가난 한 집안형편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더 이상 학교를 다니고 싶은 생 각이 없었던 까닭에 학교를 떠나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 었다고 한다. 그가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한 것은 군대에서 가깝게 지낸 화가 이브 탕기의 제안에 의해서였다. 그때가 1925년이었다. 그 는 1930년까지 초현실주의 그룹에 속해 있으면서 여러 가지 토론이 나 실험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시를 쓰지도 않았고 시인 행세를 하지 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초현실주의와의 결별 이유가 그가 쓴 시 때문이라는 나의 추측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시집 『말』에 실린 시들이 1930년부터 1944년까지 씌어진 것이라면, 그는 초현실주의 그룹에 있는 동안 그 나름대로 시와 문학 공부를 하기는 했겠지만, 그룹에서 나온 다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브 쿠리에르가 쓴 전기 못지않게 프레베르에 대한 나의 몰이해 혹은 편견을 뒤바꿔놓은 것은 바타유가 쓴 「석기시대로부터 자크 프레베르까지」라는 매우 주목할 만한 비평을 읽고서였다. 바타유에 의하면, 프레베르의 새로운 시는 “그동안 시의 이름으로 정신을 경 직되게 만들어온 모든 것에 대한 생생한 거부이자 조롱”이고 ‘사건 의 시’이다. 여기서 사건이란 위반과 전복과 변화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프레베르는 대중의 시인이기는커녕,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대한 위반과 전복과 변화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반성하기 위해 그의 시 전집을 구 해 읽었고, 프레베르가 매우 대단한 시인임을 깨달으면서, 그의 시들 을 번역해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마침 가브리엘 르페브르의 멋진 그림과 함께 비교적 많은 시들이 다양하게 수록된 이 책을 발 견하여 본격적으로 번역에 착수할 수 있었다. 이 작업은 2016년 초, 두 달 간 미국의 애틀랜타에 사는 딸 집에 머물면서 진행되었다. 번 역과 해설을 병행해서 하는 동안, 프레베르의 시와 관련하여 두 가 지 의미 있는 우연적 사건을 경험했다. 하나는, 어느 날 찾아간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High Museum에서 피 에르 보나르P. Bonnard, 1867~194)의 「아침식사Le petit d?jeuner」(1922)라는 그 림을 보았을 때였다. 그림을 보지 않고 제목만 본다면, 어떤 집에서 의 밝고 분주한 아침식사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러한 예상과는 달리, 그림은 단란하고 평화로운 아침식사의 광경이 아니라 어두운 색조를 배경으로 혼자 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 여주었다. 그 여자는 왜 울고 있는 것일까? 왜 화가는 여자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지 않은데도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일까? 내가 이런 의 문을 품으면서 동시에 프레베르의 시 「아침식사」를 연상하게 된 것 은 당연했다. 프레베르의 「아침식사」 역시 울음을 터뜨리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시에서는 두 사람 이 등장하고, 여자가 왜 울게 되었는지를 독자가 짐작할 수 있는 근 거가 있다.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냉정하고 무뚝뚝한 모습으로 아 침식사를 마친 남자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이별을 예감했 기 때문이다. 프레베르의 시를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보나르의 「아 침식사」에서 여자가 왜 울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프 레베르가 보나르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어 시를 쓴 것이 아닐까라 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추측은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 나 화가가 울고 있는 여자의 슬픈 표정을 설명하지 않는 이상, 그 해 석은 독자의 몫일 수 있다. 작품의 동기나, 작가의 의도는 중요한 문 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사건은, 시 번역을 마친 후, 서울에서 떠날 때 프레베르의 시집과 함께 가져갔던 사마요의 『롤랑 바르트』(2015) 전기를 읽다가 바르트의 ‘어린 시절’이 언제 어떻게 끝났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어린 왕자’였던 행복한 ‘어린 시절’ 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 어린 시절이 언제까지였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로서는 이 두 가지 우연적 발견이 뜻밖의 수확이었다. 초현실주 의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인생에서 우연처럼 중요 한 일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모든 우연의 가치는 객관적 사실 에 좌우되기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관적 이해에서 비롯 된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우연들이 나의 삶을 결정 지 었고, 많은 ‘좋은 사람들’과의 우연적 만남이 오늘의 ‘나’를 만든 원 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모든 우연들은 막막하거나 어려웠 던 삶의 한 순간에 찾아와 늘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런 점 에서 ‘고엽’의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헤어지게 만든 인생을 원 망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만나게 해주었던 인생에 감사한다고 말 했듯이 나는 모든 우연들의 삶에 감사한다. 또한 이제 내 삶에 또 하 나의 우연으로 슬며시 들어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 프레베 르와 그의 시들에게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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