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37년씩이나 사랑받다니 무한감사할 뿐저녁밥을 지으러 쌀을 씻는데 전화가 울렸다. 문학사상사 편집장이 내일 아침까지 15매를 써 달라 했다. 땜통원고! 아무리 땜통이라도 하룻밤은 너무하잖아 그 문예지에서 원고청탁 받아본 적 있었나? 슬프고 화나고 불쾌 한심했으나, 기회라면? 비굴한 계산들로 혼란스러웠다.내 쓰기 버릇은 통행금지시간, 소음 없는 12시에서 새벽 4시까지다. 그 시간을 기다리느라고 조청처럼 진하게 탄 커피만 마셔댔다. 이렇게라도 써지는 글이 누군가에게 좋게 읽히기를, 화살기도가 스쳤던가? 광고이면지에 쓰고 썼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고는 원고지에 옮기느라, 통금해제 싸이렌도 못 들었다. 첫 교시 강의가 있어, 아침준비와 아이들 도시락 두개를 싸놓고, 서둘러 택시로 경복궁 앞 정부종합청사 뒤에 있는 문학사상사로 갔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닫힌 문 밑으로 원고를 밀어 넣고, 곧바로 관악캠퍼스로 가니 첫 시간 강의에 넉넉했다. ‘83년 3월호에 내 글이 실렸는데, 그달부터 특강과 원고청탁이 쏟아졌다. 어떻게 나를 아느냐니까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손필사로 등사기로 복사되어 동창생들과 친구들을 오간다고 했다. 어느 해 초여름이었나? 중1학년의 아들이 편지봉투 하나를 내밀며, 엄마의 글이냐? 동명이인의 글이냐? 고 했다. 교생실습을 끝내고 떠나시는 교생선생님들이 운동장에 모인 전교생들에게 마이크로 이 글을 읽어주는 것으로 작별인사를 했고, 전교생들에게 편지 편지봉투 하나씩 주셨는데, 열어보니 「지란지교~」였다고.여러 문우들이 일러줬다. MBC라디오에서, 작고한 이종환 피디께서 그 글을 읽었다고. 물론 방송은 못 들었지만. 어느 특강에서 한 여성이 불평 비슷이, 내 글 때문에 자기 아들이 너무 고생한다고. 나이를 물었더니 초등학교 5학년이라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산전수전 겪고 사는 중년의 내 글을 이해할 수 있겠나? 외우지 말라고 했더니, 담임선생님이 무조건 암송하라고, 그래야 자라가며 회상하게 된다고 강요했다나. 출판사들이 파주 문발리로 이사하던 때였다. ㅅ출판사가 새 건물을 지어, 입주식에 나도 갔다. 사장님이 하객들에게 인사하는 중에, 이 건물은 유안진시인의 「지란지교~」 덕분이 크다고, 창고에서 지게차로 「지란지교~」를 옮겼다고, 뒤에 서있던 나는 그 말과 쏠리는 시선에 안절부절했다.어느 해인가 교사연수교육에서 강의를 했는데, 강의 후 몇 분 선생님들이, 왜 교과서에 「지란지교~」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건 교과서 편성위원들의 일이라고 웃어넘겼다. 또 대학원생들과 세미나 후 사담 중에, 재수 학원에 다녔던 얘기를 나누다가, ㄷ학원과 ㅈ학원에서 아침 공부 시작 전에는, 전체방송으로 내 글 한편씩을 읽어준 다음에야 하루공부를 시작했다고, 그때 나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진즉 그 말 해주었어야지, 두 대형입시학원에 감사전화라도 하지, 대학원생이 되어서야 알려주느냐?고 원망농담도 했다. 어느 졸업생이 찾아와, 겨우 취직한 데가 문구회사인데, 내 글을 노트 등 겉표지에 몇 줄 사용하고 싶어, 제자인 자기를 보냈다고 애원하는 표정이길래 허락했더니, 우리 집 애들이 사와서 보여주는데, 차마 볼 수가 없어 늘 못 본 채 했다. 때로 사춘기의 자녀들이 그 글을 읽고 마음잡았다거나, 엄마아빠도 아이와 같이 읽어보니 좋았다는 전화도 많아, 참으로 민망하고 면구스러웠다.몇 년 전에는, 낯선 신부님이 오시어 그곳 성당이 너무 낡아 개축지원을 부탁하러 서울의 큰 성당인 우리성당에 오셨다고, 그날 그 신부님의 미사강론은 「지란지교~」 전문을 읽어주시는 것이었다. 성령강림기간 중 묵상시간을 갖는데 묵상 중에 「지란지교~」를 나직이 읽으신 신부님도 계셨다. 물론 내가 거기 있는 줄은 모르셨겠지만, 나는 죽을 맛이었다.강원도 험지에서 탈북인들과 함께 생태운동을 하시는 돈 보스코 생태마을의 황창연 신부님은, 자연농법으로 키운 콩으로 만든 청국장가루를 해외교민들이 더 많이 주문한다고 하시면서, 중학교 2학년 때 나를 만났다고 하셨다. 황당하다는 내 표정에, 신부님은 중학교 2학년 어느 아침에 담임선생님이 출석부를 들고 오시어, 출석은 안 부르시고 「지란지교~」를 읽어주셨는데, 지금에야 얼굴로 만났다고 웃으셨다. 서예전에서 「지란지교~」를 쓴 병풍을 봤다는 이들과, 족자나 가리개도 봤다거나, 목판각 전시회에 그 글이 있더라는 얘기는 지난해까지도 들었다. 하와이대학과 오하이오대학의 동아시아학과 교과서에 영역으로 게재되었고, 일본어로도 여러분이 번역해서 여러 잡지에 실렸다고도 했고, 그 글을 주고받다가 결혼하게 되었다는 전화도 받은 적 있었다. 여러 방송에서 몇 구절씩 언급도 많았고, 여러 신문에서도 길게 짧게 인용되기도 했으나, 저작권법이 생겨 좀 뜸했는데, 지난해(’19) 한국일보 12월 2일자 논설에서 김지은 위원께서 논설로 쓰셨단다.37년 동안의 수많은 일화는 기억도 할 수 없이 많아, 글에도 운명이 있는가? 초빙 받은 방송 때마다 하는 내 말이다. 나는 시인인데, 아직 대표시를 못쓴 탓인지, 하룻밤에 쓴 글이 대표 글이 되어, 이라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된다. “좋은 시도 많은데, 지란지교가 너무 뛰어나, 시인으로서는 손해”라는 우정 깊은 촌평도 들어왔다.읽어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변변한 광고 한번 없이, 37년씩이나 꾸준히 팔려 읽히다니, 그저 감사할 뿐, 세기가 바뀐 긴 세월 동안, 읽어주신 독자분들의 건강과 만사형통을 진심으로 빌며, 이렇게 감사인사를 대신하게 되어 더욱 면구스러울 따름이다.2020년 가을 지란지교를 회고하며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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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머리말 5제1부 오직 한 사람부끄러운 연서 19선물을 안고 22슬프고도 아름다운 혈연 26젖은 몸을 맞아 줄 가정이 있다 29오직 한사람 33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38최초의 페미니스트는 김수로왕과 왕비 허황옥 43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 46계약 결혼의 선구자 황진이 54부부! 가장 엄숙한 종교 60한 지붕 밑에 두 여자는 65규희 양에게 68스승 목월님께 73버나드 쇼들의 오만과 편견, 여자는 남자의 기형? 77사랑은 눈으로 79제2부 미루나무 잎새만 한 엽서가을 초목의 겸손으로 83미루나무 잎새만 한 엽서 86가을에 열린 귀 89용감하게 거역하라 94겨울나무, 나의 자세 98사월에 피는 꽃은 101쇠붙이와 강철시대의 봄을 맞으면서 105호박꽃에 어린 순수 109봄비 오시는 오후는 114묵은 그루터기에서만이 새싹이 돋는 이치를 121꽃에도 등급이 있었네 124제3부 사유와 고뇌의 계절사유와 고뇌의 계절 129지나간 날은 아름다워라 132내가 나의 주인일 때 137뉘우치며 아파해야 할 때 143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146소설처럼 아름다운 사랑은 없다 151정승되긴 쉬워도 명기되긴 어렵다 156이상을 잃었을 때 비로소 늙는다 169목숨보다 예술을 173장의존적 충동적 원인은 176더욱 다채로워져라, 우리 시대의 현대시 179사랑, 다시 희망으로 달려갈 힘을 키우자 182제4부 아낌없는 사랑포장마차와 과일 가게 189시와 스포츠 192새해 아침의 작은 꿈 196도깨비가 보이도록 눈 맑은 마음으로 199처녀 귀신 손각시의 해코지 204외가댁의 숟가락 211발견하는 매력 214아낌없는 사랑 217이름과 얼굴, 바뀔 수도 변할 수도 221머리 좋고 게으른 리더와 일하는 행복 226명절 차례 이대로 좋은가? 229명사들의 기언 또는 기행 232창조적 상징으로, 아라비아 숫자 몇 개 235추천사 239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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