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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아침책상(서정시학)·2021-05-14

  • 245쪽
  • 152×225mm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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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37년씩이나 사랑받다니 무한감사할 뿐저녁밥을 지으러 쌀을 씻는데 전화가 울렸다. 문학사상사 편집장이 내일 아침까지 15매를 써 달라 했다. 땜통원고! 아무리 땜통이라도 하룻밤은 너무하잖아 그 문예지에서 원고청탁 받아본 적 있었나? 슬프고 화나고 불쾌 한심했으나, 기회라면? 비굴한 계산들로 혼란스러웠다.내 쓰기 버릇은 통행금지시간, 소음 없는 12시에서 새벽 4시까지다. 그 시간을 기다리느라고 조청처럼 진하게 탄 커피만 마셔댔다. 이렇게라도 써지는 글이 누군가에게 좋게 읽히기를, 화살기도가 스쳤던가? 광고이면지에 쓰고 썼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고는 원고지에 옮기느라, 통금해제 싸이렌도 못 들었다. 첫 교시 강의가 있어, 아침준비와 아이들 도시락 두개를 싸놓고, 서둘러 택시로 경복궁 앞 정부종합청사 뒤에 있는 문학사상사로 갔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닫힌 문 밑으로 원고를 밀어 넣고, 곧바로 관악캠퍼스로 가니 첫 시간 강의에 넉넉했다. ‘83년 3월호에 내 글이 실렸는데, 그달부터 특강과 원고청탁이 쏟아졌다. 어떻게 나를 아느냐니까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손필사로 등사기로 복사되어 동창생들과 친구들을 오간다고 했다. 어느 해 초여름이었나? 중1학년의 아들이 편지봉투 하나를 내밀며, 엄마의 글이냐? 동명이인의 글이냐? 고 했다. 교생실습을 끝내고 떠나시는 교생선생님들이 운동장에 모인 전교생들에게 마이크로 이 글을 읽어주는 것으로 작별인사를 했고, 전교생들에게 편지 편지봉투 하나씩 주셨는데, 열어보니 「지란지교~」였다고.여러 문우들이 일러줬다. MBC라디오에서, 작고한 이종환 피디께서 그 글을 읽었다고. 물론 방송은 못 들었지만. 어느 특강에서 한 여성이 불평 비슷이, 내 글 때문에 자기 아들이 너무 고생한다고. 나이를 물었더니 초등학교 5학년이라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산전수전 겪고 사는 중년의 내 글을 이해할 수 있겠나? 외우지 말라고 했더니, 담임선생님이 무조건 암송하라고, 그래야 자라가며 회상하게 된다고 강요했다나. 출판사들이 파주 문발리로 이사하던 때였다. ㅅ출판사가 새 건물을 지어, 입주식에 나도 갔다. 사장님이 하객들에게 인사하는 중에, 이 건물은 유안진시인의 「지란지교~」 덕분이 크다고, 창고에서 지게차로 「지란지교~」를 옮겼다고, 뒤에 서있던 나는 그 말과 쏠리는 시선에 안절부절했다.어느 해인가 교사연수교육에서 강의를 했는데, 강의 후 몇 분 선생님들이, 왜 교과서에 「지란지교~」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건 교과서 편성위원들의 일이라고 웃어넘겼다. 또 대학원생들과 세미나 후 사담 중에, 재수 학원에 다녔던 얘기를 나누다가, ㄷ학원과 ㅈ학원에서 아침 공부 시작 전에는, 전체방송으로 내 글 한편씩을 읽어준 다음에야 하루공부를 시작했다고, 그때 나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진즉 그 말 해주었어야지, 두 대형입시학원에 감사전화라도 하지, 대학원생이 되어서야 알려주느냐?고 원망농담도 했다. 어느 졸업생이 찾아와, 겨우 취직한 데가 문구회사인데, 내 글을 노트 등 겉표지에 몇 줄 사용하고 싶어, 제자인 자기를 보냈다고 애원하는 표정이길래 허락했더니, 우리 집 애들이 사와서 보여주는데, 차마 볼 수가 없어 늘 못 본 채 했다. 때로 사춘기의 자녀들이 그 글을 읽고 마음잡았다거나, 엄마아빠도 아이와 같이 읽어보니 좋았다는 전화도 많아, 참으로 민망하고 면구스러웠다.몇 년 전에는, 낯선 신부님이 오시어 그곳 성당이 너무 낡아 개축지원을 부탁하러 서울의 큰 성당인 우리성당에 오셨다고, 그날 그 신부님의 미사강론은 「지란지교~」 전문을 읽어주시는 것이었다. 성령강림기간 중 묵상시간을 갖는데 묵상 중에 「지란지교~」를 나직이 읽으신 신부님도 계셨다. 물론 내가 거기 있는 줄은 모르셨겠지만, 나는 죽을 맛이었다.강원도 험지에서 탈북인들과 함께 생태운동을 하시는 돈 보스코 생태마을의 황창연 신부님은, 자연농법으로 키운 콩으로 만든 청국장가루를 해외교민들이 더 많이 주문한다고 하시면서, 중학교 2학년 때 나를 만났다고 하셨다. 황당하다는 내 표정에, 신부님은 중학교 2학년 어느 아침에 담임선생님이 출석부를 들고 오시어, 출석은 안 부르시고 「지란지교~」를 읽어주셨는데, 지금에야 얼굴로 만났다고 웃으셨다. 서예전에서 「지란지교~」를 쓴 병풍을 봤다는 이들과, 족자나 가리개도 봤다거나, 목판각 전시회에 그 글이 있더라는 얘기는 지난해까지도 들었다. 하와이대학과 오하이오대학의 동아시아학과 교과서에 영역으로 게재되었고, 일본어로도 여러분이 번역해서 여러 잡지에 실렸다고도 했고, 그 글을 주고받다가 결혼하게 되었다는 전화도 받은 적 있었다. 여러 방송에서 몇 구절씩 언급도 많았고, 여러 신문에서도 길게 짧게 인용되기도 했으나, 저작권법이 생겨 좀 뜸했는데, 지난해(’19) 한국일보 12월 2일자 논설에서 김지은 위원께서 논설로 쓰셨단다.37년 동안의 수많은 일화는 기억도 할 수 없이 많아, 글에도 운명이 있는가? 초빙 받은 방송 때마다 하는 내 말이다. 나는 시인인데, 아직 대표시를 못쓴 탓인지, 하룻밤에 쓴 글이 대표 글이 되어, 이라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된다. “좋은 시도 많은데, 지란지교가 너무 뛰어나, 시인으로서는 손해”라는 우정 깊은 촌평도 들어왔다.읽어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변변한 광고 한번 없이, 37년씩이나 꾸준히 팔려 읽히다니, 그저 감사할 뿐, 세기가 바뀐 긴 세월 동안, 읽어주신 독자분들의 건강과 만사형통을 진심으로 빌며, 이렇게 감사인사를 대신하게 되어 더욱 면구스러울 따름이다.2020년 가을 지란지교를 회고하며유안진

목차펼치기

차 례머리말 󰋯 5제1부 오직 한 사람부끄러운 연서 󰋯 19선물을 안고 󰋯 22슬프고도 아름다운 혈연 󰋯 26젖은 몸을 맞아 줄 가정이 있다 󰋯 29오직 한사람 󰋯 33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 38최초의 페미니스트는 김수로왕과 왕비 허황옥 󰋯 43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 󰋯 46계약 결혼의 선구자 황진이 󰋯 54부부! 가장 엄숙한 종교 󰋯 60한 지붕 밑에 두 여자는 󰋯 65규희 양에게 󰋯 68스승 목월님께 󰋯 73버나드 쇼들의 오만과 편견, 여자는 남자의 기형? 󰋯 77사랑은 눈으로 󰋯 79제2부 미루나무 잎새만 한 엽서가을 초목의 겸손으로 󰋯 83미루나무 잎새만 한 엽서 󰋯 86가을에 열린 귀 󰋯 89용감하게 거역하라 󰋯 94겨울나무, 나의 자세 󰋯 98사월에 피는 꽃은 󰋯 101쇠붙이와 강철시대의 봄을 맞으면서 󰋯 105호박꽃에 어린 순수 󰋯 109봄비 오시는 오후는 󰋯 114묵은 그루터기에서만이 새싹이 돋는 이치를 󰋯 121꽃에도 등급이 있었네 󰋯 124제3부 사유와 고뇌의 계절사유와 고뇌의 계절 󰋯 129지나간 날은 아름다워라 󰋯 132내가 나의 주인일 때 󰋯 137뉘우치며 아파해야 할 때 󰋯 143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 146소설처럼 아름다운 사랑은 없다 󰋯 151정승되긴 쉬워도 명기되긴 어렵다 󰋯 156이상을 잃었을 때 비로소 늙는다 󰋯 169목숨보다 예술을 󰋯 173장의존적 충동적 원인은 󰋯 176더욱 다채로워져라, 우리 시대의 현대시 󰋯 179사랑, 다시 희망으로 달려갈 힘을 키우자 󰋯 182제4부 아낌없는 사랑포장마차와 과일 가게 󰋯 189시와 스포츠 󰋯 192새해 아침의 작은 꿈 󰋯 196도깨비가 보이도록 눈 맑은 마음으로 󰋯 199처녀 귀신 손각시의 해코지 󰋯 204외가댁의 숟가락 󰋯 211발견하는 매력 󰋯 214아낌없는 사랑 󰋯 217이름과 얼굴, 바뀔 수도 변할 수도 󰋯 221머리 좋고 게으른 리더와 일하는 행복 󰋯 226명절 차례 이대로 좋은가? 󰋯 229명사들의 기언 또는 기행 󰋯 232창조적 상징으로, 아라비아 숫자 몇 개 󰋯 235추천사 󰋯 239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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