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들어가는 글 다음의 말을 생각해보자. 1. 마크 세이지맨은 ‘정부 대테러 컨설턴트’는 테러가 ‘테러리스트 개인의 신앙이나 지각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2. ‘신성한 쿠란’의 개념은 대략 1,400여 년 동안 존재해왔으나, 이슬람 테러리즘은 과거 40여 년 동안 나타난 현상이다. 확실히 쿠란이 근본 문제는 아닌 셈이다. 나는 이 두 가지 말이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들의 동기를 밝히려면 먼저 그들의 신앙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ISIS나 탈레반 등 수많은 지하디스트 단체의 행위들은 단순히 욕구불만에 빠진 폭력적이고 가난한 사이코의 행위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부유한 무슬림들이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을 교육하고 이러한 행위를 계획한다. 그들의 목적은 신의 말씀인 쿠란에서 나타나는 이슬람의 신성한 법 샤리아Sharia와 예언자 및 그 일행의 행동과 말씀을 기록한 수나Sunna 및 전통(하디스hadith, 단수로 아하디스ahadith)에 따라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이슬람 테러리즘이 지난 40여 년간 홀연히 나타났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이슬람교가 태어난 7세기경부터 진정한 이슬람을 부흥시키겠다는 폭력적인 움직임은 언제나 존재해왔으며, 주로 당시 무슬림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이를 이끌었다. 작금의 무슬림 사회가 초대 무슬림 지도자들의 이상에 따르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7세기경 아즈라키트 파 등의 단체들은 잊혀버린 신앙과 의식들을 되살리고자 했으며, 순수한 무슬림 신앙을 더럽힌 행위들을 이슬람의 요체에서 씻어내고자 했다. 한 예시로 데오반드 파 극단주의자들은 지난 8~9세기 이슬람의 발전을 거부하는 이들로, 그 사상은 1762년에 세상을 떠난 샤 왈리 알라Shah Wali Allah의 철학에 특히 잘 드러나 있다. 9세기부터 10세기 초반까지의 바그다드에는 여러 종류의 종교적 폭력이 들끓고 있었다. 이를 이끈 사흘 이븐 살라마Sahl ibn Salama와 바르바하리Barbahari 등의 사상 지도자들은 혁신(비다bih'a)을 거부하면서 911년~1092년 사이 바그다드에 더 큰 종교적 폭력을 몰고 왔다. 17세기 이스탄불에서 일어난 폭력적인 카디자델리 운동은 18세기의 아라비아의 이븐 압드 알 와하브Ibn 'Abd al-Wahhab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결국 오늘날 거의 모든 테러리스트들에게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와하비 파의 극단주의는 인도에까지 전파되었으며,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아라비아 경계를 훨씬 넘어서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의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바바라 매트캐프Babara Metcalf는 무슬림들의 문화가 쇠락하려 할 때마다 무슬림들 스스로 ‘전통을 무기삼아 해석하고 행동 패턴들을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인도의 데오반드 파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은 그들의 전통과 이슬람의 태곳적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의 활동주의적 역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산 알 바나Hasan al-Banna부터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Ayatollah Ruhollah Khomeini까지 이 책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근대적 이슬람 사상가들 또한 그들의 정치적 행위 및 운동들을 이슬람의 전통 및 쿠란 등의 정본, 그리고 이슬람의 역사를 이유로 정당화시킨다. 이븐 타이미야와 같은 주요 이슬람 사상가들 또한 한 몫을 더했다(이븐 타이미야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행위는 보통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수세기 동안의 중동 및 이슬람 역사를 연구하는 마델린 질피는 카디자델리 운동(제11장 참고)을 가리켜 “17세기 이스탄불에서 형성되었던 종교적 담화들은 이전 수세기 동안 이어졌던 담론의 반복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 16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일미예(ilmiye, 오스만 제국의 종교기관)의 운명은 오스만 제국의 종교계 안에서 일어난 이데올로기적 소요와 함께 독특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비슷한 역할을 담당했던 세속기관들 역시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따라서 ‘고위’ 종교 대 ‘민간신앙’ 간의 갈등을 집중해서 살펴보자는 것이 나의 논지다. 이와 같은 ‘울라마ulama’ 국가의 긴장상태는 이슬람 역사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 주제는 놀라우리만치 비슷한 형태의 담론들이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질피는 1998년 자신의 주요 저서인 『신앙의 정치The Politics of Piety』에서 카디자드라는 이름의 근본주의적 성격의 설교자에 대해 논한다. “(카디자드는) 스스로도 여러 번 자랑스럽게 알렸다시피 근본주의적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와 메디나의 초기 이슬람 공동체 시대 이후로 축적되기 시작한 이슬람 신앙 및 의식을 제거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질피의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혁신과 원리주의 간의 새로운 대립 구도는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7세기 종교정치의 성격을 결정지었다. 한쪽에서는 절제와 금욕이, 다른 한쪽에서는 혁신과 자유가 대립하는 사태는 이슬람의 역사를 따라 끝없이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근본주의적 윤리관은 과거 이슬람 공동체와의 연결고리를 통해 자신을 내세운다.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 동료들의 시대에 존재했던 금욕과 정의를 추구한다는 식이다. 따라서 근본주의자들의 행위는 이슬람의 과거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혹자는 혁신과 원리주의 간의 변증법, ‘정통’ 이슬람 또한 수세기 전부터 나타난 개념이라고 논한다. 질피는 이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그처럼 열정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공동체 자체가 자신의 과거를 마치 ‘정의의 시대’인 양 미화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고결한 동료들의 시대 이후로 이슬람 공동체는 점차 그 이상에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경향을 보였다. 모든 인간 활동이 신성한 일의 일부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행동양식이나 태도 혹은 의복을 아주 약간 변화시키는 일 또한 과거 예언자와 그 동료들이 세운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행위이자 용납될 수 없는 혁신으로 간주되었다. 전통(하디스)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이상 모든 혁신은 이단이요, 이단은 과오이며, 모든 과오는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여기에는 이슬람 역사를 따라 아주 매끄럽게 흐르는 길이 하나 존재한다. 이 길은 7세기 하와리즈파에서 출발해서 9~11세기 바그다드의 폭력적인 종교 혁명을 거쳐 15세기와 17세기의 이스탄불, 18세기 아라비아의 나즈드, 19세기 인도의 와하브파(‘힌두스탄의 광신도’로도 알려져 있음)를 지나 탈레반, 알 카에다, 그리고 현대의 지하디스트까지 연결된다. 프린스턴대학교 근동학부 명예교수인 버나드 루이스는 1993년 저술한 글을 통해 이슬람의 과거가 오늘날에 미치는 영향력을 평소와 같이 우아하게 설명했다. 이슬람 원리주의의 신념과 정치적 행위들이 자유민주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특히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원리주의는 하나의 거대한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그 분파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일대기 이후로도 많은 시간이 흐른 14세기 때만 하더라도 광신도들의 편협하고 공격적이며 폭력적인 운동이 수차례 발발했다. 주로 이슬람 공동체 바깥에서 나타난 카리스마 넘치는 종교적 인물들이 이 운동들을 주도했으며, 보통 당대의 군주와 악한 무슬림 지도자, 그리고 거짓된 신앙 때문에 이슬람 신앙이 변질되었으며 사회가 부패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때때로 현존하던 지배계급이 운동을 억누르고 중지시키는 일도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 이들은 권력을 잡고 성전을 일으키고자 했다. 성전은 본래 본토 내의 배교자와 변절자들을 배척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나중에는 외국으로 그 영역을 넓혀서 진정한 신앙에 반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적으로 삼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정권들은 비교적 빠른 기간 내에 무너지거나 스스로 변모했는데, 이렇게 탄생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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