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어릴 적에는 들이나 강가에 자주 놀러 갔다. 그때마다 큰 나무 아래에서 흙과 나뭇가지, 들풀을 재료삼아 작은 집을 짓곤 했다. 어떤 때는 몇몇이 함께 만들기도 했다. 미장이, 목공은 물론 소소하게 심부름을 해주는 조수까지 나눠서 하는 일이 확실해 흡사 진짜 집 짓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집을 지으면서 한편으로는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도 고민했다. 침대나 책상 등을 가져다놓고는 이 침대에서는 누가 잠을 자고 저 책상에는 누가 앉을지에 대해서도 계속 얘기를 나눴다. 사이좋게 논의할 때도 있었지만 이런 일로 다툴 때도 가끔 있었다. 그러다가도 그중에서 고집이 센 아이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화를 참지 못하고 다 지어놓은 집을 발로 망가뜨릴 때도 있었다. 이러한 애는 무리에서 고립되거나 욕을 먹기도 했다. 심지어 큰 싸움으로 번져 눈을 시퍼렇게 얻어맞고 펑펑 울 때도 있었다. 집이 그대로 나무 아래에 보존되어 있기를 바라는 아이나, 함부로 망가뜨리는 아이 모두 이를 큰일로 받아들였다. 당연히 사이좋을 때가 더 많았다. 집이 ‘완공’된 후면 입으로 “탁, 탁” 소리를 냈다. 집을 다 지었다는 것을 경축하기 위해서 폭죽소리를 흉내 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작은 집 앞에 앉거나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히 관찰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곤 했다. 집에 돌아가서도 지어놓은 그 집에 대한 생각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한참을 지나 다시 그 집을 찾아가 보는 애들도 있었다. 마치 집을 떠나 밖에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말이다.나는 홀로 집 짓는 걸 더 좋아한다. 그때면 나는 홀로 디자이너, 미장이, 목공이나 심부름꾼 역할을 다 도맡아 했다. 스스로 “빨리 벽돌 날라 와!”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네”하고 대답했다. 사실 어디 벽돌이 있겠는가? 그냥 벽돌을 날라 오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주 무거운 벽돌을 진짜로 나르는 것처럼 이를 악물고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이곳이 문이다!”, “창문은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 “이 방은 부모님 방이고 이쪽 작은 방은…… 아니 큰 방은 내꺼 해야지! 내가 큰 방에서 자야지! 창문 밖은 큰 강이다!”…… 라고 말한다. 그때 들판에는 아마 나 혼자였을 것이다. 주변에는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밀밭이었을 수도, 꽃가루가 흩날리는 일망무제한 벼 밭이었을 지도 모른다. 얼마나 몰두했는지 집 외의 풍경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하늘 높이 떠오른 해가 머리 위에서 나를 비추었을지도, 중천에 걸렸을 때보다 몇 배나 더 큰 해가 서쪽 끝의 갈대숲으로 곧 숨어버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집이 ‘완공’되었다. 그때 혹은 물오리 떼가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갔을 수 있고, 망망한 푸른 하늘에 순수함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완공’된 집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조용히 감상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내 작품이었다. 미켈란젤로가 교회당 천장에 유명한 작품을 완성하고 감상할 때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쉽게도 난 그때 남에게 고용되어 그림을 그린 이탈리아인이 작품을 완성했을 때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두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벽에다 이름을 새겨놓았을 것이다. 집은 내가 만든 위대한 작품이었다. 그 후로 연 며칠간 내 작품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자주 보러 가기도 했다. 그 집은 논두렁에 지어졌다. 이상하게도 논밭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그곳을 자주 오가곤 했는데도 그 집만은 망가지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 집을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조심스럽게 보호했던 것 같다. 그 후 어느 날 갑작스런 폭우로 자취를 감출 때까지 그 집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그때 블록 외에는 장난감이 별로 없었다. 한동안 나는 블록을 쌓는 데만 몰두했다. 정확히 말하면 집 짓는데 몰두했던 것이다. 형태, 색깔, 크기가 서로 다른 블록으로 집을 한 채, 두 채 많이도 지었다. 들에서 흙이나 나뭇가지, 들풀로 지은 집과는 달리 꾸준히 새로운 집을 만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밀어버리고 또 다른 형태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런 나무토막들로 형태가 상이한 집을 그토록 많이 지을 수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했다. 설계도에 따라 집을 지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설계도에 없는 집을 생각대로 지을 때도 있었다. 내가 집을 짓지 않고 쉴 때가 있다면 그때는 이상적인 집을 이미 침대 옆의 책상 위에 지어놓았을 때일 것이다. 그 집은 오로지 감상만 할 수 있다. 그 누구라도 절대 다쳐서는 안 된다. 그 뒤로 어느 날인가 암탉이나 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올라와 그 집을 망가뜨릴 때까지는 그대로 책상 위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가옥은 어린애 마음속의 정서이다. 인류 선조가 남겨준 정서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첫 미술 수업시간에 늘 선생님이 흑판에 평행사변형을 그리고 몇 갈래의 길고 짧으며 종횡으로 된 직선으로 가옥을 그렸던 이유이기도 하다.가옥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가옥의 탄생은 인류가 집에 대한 인식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영혼의 안식처이자 생명 연속의 근본적인 이유인 집이 있어야 보호받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은 모두 집과 연관이 있다. 행복, 고난, 거절, 청구, 분투, 은퇴, 희생, 도망, 전쟁과 평화……모두 집과 연관되어 있지 않은가!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피 흘리며 용감무쌍하게 싸우는 것은 오로지 나라를 보위하기 위해서이다. 집은 그 누구도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이다. 마치 높은 홰나무 꼭대기의 새둥지를 침범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릴 적에 보았던 정경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까치둥지가 누군가에게 털려 바닥에 떨어졌다. 수많은 까치들이 날아와 급강하 하더니 소리를 지르면서 죽기내기로 달려들어 둥지 턴 사람을 쪼아 죽였다. 그 모습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집의 의미는 이루어 다 말할 수 없을 것 같다.어른이 되고 나서도 어릴 때 집 짓던 욕망은 여전하다. 오히려 나이가 들고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지면서 그 욕망이 더 불타올랐다. 단지 재료가 바뀌었을 뿐이다. 더는 흙, 나뭇가지, 들풀이나 블록이 아니라 이제는 문자로 바뀌었다.문자로 지은 가옥은 나의 은신처 즉 정신상의 은신처이다.행복한 순간이던, 고통스러운 순간이던 나는 모두 문자로 표현한다. 마음속 감정을 표현하든지, 위안을 얻든지를 막론하고 이제 문자와는 영원히 떨어질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되었을 때, 더욱이 문자로 지은 집인 나의 집을 필요로 한다. 어떤 때는 실의에 빠져 집으로 돌아올 때도 있지만 나에게는 갈 수 없는 곳 문자 가옥이 있다. 이때야 비로소 철근과 시멘트로 지은 집은 나의 일부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몇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글도 많이 쓰고 책도 적지 않게 출판했다. 사실 이는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이 집은 나를 위해 지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개의치 않는다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집으로 생각해도 괜찮다.작가들이 문자를 사랑하는 그 마음은 문자에 대한 나의 이해와 대체로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르다면 나는 물가에서 자랐고 집도 물가에 지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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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열한 번째의 빨간 댕기 Part 2 해우(海牛)Part 3 빨간 조롱박 Part 4.미꾸라지Part 5 피곤한 트럼펫 Part 6 슬픈 운명Part 7 감귤나무Part 8야생 풍차Part 9바다독수리(魚鷹) Part 10어부Part 11먼 산 위의 조각상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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