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시집을 펴내며 ― 들녘에 그리움 한 송이 피워 내며 ― 제주의 들녘에는 계절이 삽니다. 봄이면 돌담 너머로 귤꽃이 팝콘처럼 톡톡 터지고, 그 하얀 향기를 바람이 실어 마을 구석구석을 적십니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밥 먹엉 바당에 가게!" 하는 한마디에 에메랄드빛 바다로 뛰어들고, 까르르 번지는 웃음소리가 파도가 됩니다. 가을이면 미깡밭이 노랗게 물들어 지난 계절의 땀방울을 "올해도 참 잘 살아냈다"며 가만히 위로하고, 겨울이면 붉은 동백이 눈 속에 피어 아궁이 장작불 곁의 그 아늑한 온기를 불러옵니다. 이 시집에 담긴 시는, 그렇게 제주의 들녘에서 태어났습니다. 『사계절 2 - 제주의 들녘, 그리움으로 피다』는 회원님들이 글쓰기 강좌를 통해 한 줄 한 줄 직접 써 내려간 시들을 모아 엮은 시집입니다. 다섯 분의 손끝에서 피어난 이 시들은, 화려한 수사나 어려운 관념을 좇지 않습니다. 대신 살아온 자리에서 길어올린 진심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더 깊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시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이 시들이 노래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요. 「금빛 밭담을 넘는 바람」에서 유월의 보리밭 앞에 서면 흙보다 거칠던 부모님의 손등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고, 「그리운 그 시절의 겨울」에서는 한라산 자락으로 꿩사냥을 가시던 아버지가, 가마솥에 고아내던 꿩엿 냄새와 함께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고망물 소리」에서는 물허벅을 지고 새벽하늘 별빛을 길어 나르던 어멍이, "하영 속았수다", "살아봅서" 서로의 시린 손을 맞잡던 그 다정한 위로가 아직도 맑은 물소리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움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지나간 것들이 우리를 두고 떠나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해마다 귤꽃은 다시 피어나도 그때 그 봄은 향기로만 돌아오지만, 그 향기가 있는 한 우리는 언제든 그 봄으로 다시 걸어갈 수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해 여름날의 바다를 가슴속에 고이 접어두었기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리움은 상실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사랑했던 시간이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다는 따뜻한 증언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집은 슬픔에 머물지 않습니다. 「미깡」이 "고생했노라, 애썼노라" 익어가며 우리를 위로하듯, 「갈치와 수평선」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저 수평선을 바라보며 묵묵히 물살을 가르는 일. 힘겨운 밤이 지나도 다시 떠오르는 아침처럼, 우리의 마음도 은빛 갈치처럼 반짝이며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제주의 들녘이 척박한 땅에서 기어이 금빛 이삭을 길러내듯, 사람의 삶도 모진 바람과 지독한 가뭄을 이겨내며 제 몫의 빛을 피워냅니다. 이것이 이 시집이 사계절의 순환을 빌려 조용히 건네는 삶의 지혜입니다. 봄에서 겨울로, 그리고 다시 봄으로. 계절은 돌고 돌지만 같은 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습니다. 그 순환 속에서 꽃이 피고 지고, 사람이 오고 가고, 그리움이 쌓이고 익어갑니다. 이 시집을 펼치신 독자님께서도 시를 따라 제주의 들녘을 천천히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귤꽃 향기를 맡고, 바다에 발을 담그고, 미깡의 위로를 받고, 동백꽃 곁에서 그리운 이름 하나를 가만히 불러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다 문득, 잊고 지냈던 당신만의 봄과 여름이, 당신만의 그리운 얼굴 하나가 떠오른다면, 이 시집은 제 몫을 다한 것입니다. 시를 쓰는 여정에 함께한 글벗들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처음 시를 써보신 분도, 오랜 마음의 이야기를 비로소 꺼내신 분도, 모두가 각자의 들녘에서 성실히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 마침내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글벗이 되어 걸어온 그 길이 있었기에, 이 시집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 작은 시집을 세상에 내어놓습니다. 제주의 들녘에서 피어난 그리움이, 이 책을 읽는 모든 분의 마음에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기를. 그리하여 저마다의 사계절이, 오래오래 향기롭게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시집을 출간할 수 있도록 애써 주신 대표님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상상력을 현실로, 함께 쓰는 글벗 연구회 김유경 · 강양순 · 김용찬 · 현필선 · 김영순 드림
목차펼치기접기
시집을 펴내며 / 08 서평 / 14 봄 ─ 春 봄 / 22 귤꽃 피는 봄 / 23 귤꽃 향기 따라 / 24 꽃비 우체통 / 26 금빛 밭담을 넘는 바람 / 28 할미꽃 / 30 여름 ─ 夏 여름 / 34 계곡의 한낮 / 35 우산 / 36 장마 / 37 에메랄드빛 바당 / 38 제주 갈치 / 40 윤슬 / 42 여름이 머무는 원앙폭포 / 43 향기를 품은 작은 요정 / 44 가을 ─ 秋 미깡 / 48 황금빛 감귤나무 아래서 / 50 주황빛 가을이 머무는 과수원 / 52 아름다운 위미리 / 54 겨울 ─ 冬 위미, 동백꽃 숨바꼭질 / 58 그리운 그 시절의 겨울 / 60 그리운 아버지 / 62 고망물 소리 / 64 사계절 너머(자유시) 바다 / 68 빗방울 / 70 자리삽써 / 71 노래방 아주망 / 72 커피의 향기로움 / 73 엄마 / 74 갈치와 수평선 / 76 새벽 갈치 / 78 은빛 바다에 오르는 아침 / 79 사계절 시집을 마치며 / 80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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