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정치인 중에 가장 불운한 사람’ 그의 삶은 실패와 시련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고 어머니는 미혼모의 딸이었으며 둘 다 문맹이었다. 그 역시 15살이 될 때까지 글을 쓸 줄 몰랐다. 23세 때 사업에 실패했으며, 다음해에는 주의회 선거에서 낙선했다. 이어 사업이 파산하면서 이 빚을 갚기 위해 17년간 고생했으며, 26세 때는 약혼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기도 했다. 28세 때 신경쇠약으로 입원한 데에 이어 30세 때는 주 의회 의장직 선거에서 패배했고, 32세 되는 해에 정부통령 선거위원으로 출마했지만 역시 패배했다. 이후 하원의원 선거에 낙선하고, 하원의원 공천에 탈락했으며, 하원의원 재선거마저 낙선했다. 47세 때 상원의원 선거에 후보로 나왔지만 낙선했으며, 48세 때는 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섰지만 100표차로 낙선한 데 이어 50세 때는 상원의원 출마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처럼 실패를 거듭하자 동료들은 그가 자살할까 두려워 모든 칼과 흉기를 그의 주변에서 치워버렸을 정도였다. 일리노이의 한 신문에서는 “정치인 중에 가장 불운한 사람이며 어떤 것이든 실패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으로, 보통 사람 같으면 더는 헤어나지 못할 실패를 그는 밥 먹듯 하고 있다”라는 기사를 쓸 정도였다. 링컨의 대표적인 정적 중 한 명인 애드윈 스탠턴으로부터 “고릴라를 만나기 위해 아프리카에 갈 필요가 없다.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가면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만날 수 있다”라는 모욕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절망에 갇혀 있지 않았다. “넘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미끄러졌을 뿐”이라며 낙선 후 음식점으로 달려가서 배부르게 먹었으며 이발소로 가서 머리를 다듬고는 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이런 면모는 1832년 3월 9일 일리노이 주의회 의원에 입후보하면서 쓴 연설문에 그대로 드러난다. “선량한 유권자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에 따라 낙선하더라도 저는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시련을 겪었고 그 시련에 익숙하므로 앞으로 절대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졌지만 그를 빛나게 한 힘 정치적으로 무명에 가까웠던 링컨이 전국적인 명사로 떠오른 것은 1858년의 연방 상원의원 선거였다. 상대는 네브래스카법 제정을 주도한 거물 정치인 더글러스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더글러스와 달리 당내의 입지가 약했고 정치 경력은 미천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남다른 포용력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말하는 능력이었다. 일곱 차례에 걸친 더글러스 상원의원과의 공개 토론에서 그는 당시 큰 논쟁거리였던 노예제도 문제에 대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더글러스는 노예제 결정권을 주민에게 주어 각 주에서 결정하게 하자고 주장한 반면, 그는 “분열된 집은 스스로 설 수 없다”라며 노예제도 확대는 독립선언서와 ‘이 나라의 틀을 짠 선조’들이 만든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노예 해방이라는 총론에 동의하지만 표를 의식해 구체적인 접근법과 해법에서 망설이는 경쟁자와 달리 명확한 근거로 토론에 임했고,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널리 알렸다. 이 선거에서 낙선하기는 했지만 2년 후인 대통령선거에서 마침내 미국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탁월한 선거 전략과 정치적 식견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의 남다른 포용력은 분열의 위기에 처한 미국과 그가 속한 공화당을 구한 희망이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자신의 경쟁자들에게 장관직을 맡기며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안았다. 특히 그를 ‘고릴라’에 빗대고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국가적 재난”이라고 혹평했던 애드윈 스탠턴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통합이 아니라 국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경쟁자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낸 것이었다. 링컨이 서거한 후 스탠턴은 “여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 슬퍼했다. 연설문에 담긴 소신과 진심 포용력과 함께 링컨의 또 다른 무기는 빼어난 연설 능력이었다. 그가 정치 생활을 했을 당시 《뉴욕 트리뷴》 편집인인 호러스 그릴리는 이런 말을 했다. “링컨의 말은 매우 단순하고 쉽지만 힘이 있다. 지혜와 상식, 정치인으로서의 넓은 안목과 확고한 신념, 순수한 열정이 그의 말과 연설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좋아해, 어린 시절 또래를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으며, 말 잘하는 사람들의 연설을 자주 흉내내곤 했다. 변호사들의 변론을 듣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능력을 연마하면서도 어떤 주제라도 그에 들어맞는 재미있고 풍부한 예화를 곁들여 듣는 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미사여구와 화려한 문장이 유행하던 당시, 번뜩이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 교육적이면서도 재미있게 핵심을 찔렀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설파했다. 예를 들어 1864년 재선 연설 당시 ‘일리노이주 농부’의 우화를 소개하면서 청중의 이해를 빠르게 돕고 자신의 연설에 공감하게끔 했다.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청중의 마음에 간단명료하면서도 구체적으로 파고들었고 은근하면서도 강렬하게 새겨졌다. 그의 소신과 진심은 ‘게티즈버그 연설’로 불리는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헌정식 연설’로 집약된다. 1863년 11월 19일, 미국 남북전쟁의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의, 전사한 장병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식전에서 행한 이 말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이자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문이다. 272단어로 2분여 남짓밖에 되지 않지만 이 말은 그의 정치철학을 대표하며, 특히 내용 중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이후 민주주의의 이념을 상징하는 문구로 지금도 회자하고 있다. 그는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자유와 평등, 인류애,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소신과 진심으로 대중 앞에 나섰고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은 면모는 그가 정치활동 중에 한 연설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는 민주주의를 믿습니다》는 ‘시대 앞에 외친 링컨의 진심’을 묶은 것으로, 이를 통해 정치인으로서의 링컨뿐만 아니라 시대를 고뇌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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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나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 생거먼 카운티의 유권자 여러분에게 허위 앞에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 멕시코 전쟁에 관한 연방의회 하원 연설 분열된 집은 스스로 설 수 없듯이 ― 일리노이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수락 연설 정의만이 우리의 힘 ― 쿠퍼 유니언 연설 스프링필드를 떠나며 ― 스프링필드 작별 인사 죽는 날까지 지키고 싶은 것 ― 독립기념관 연설 모두가 나아갈 길 ― 제1차 대통령 취임 연설 새로운 자유를 향한 걸음 ―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헌정식 연설 국민의 정치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 재산 축하 환호에 대한 답례 나는 이 길을 믿습니다 ― 제2차 대통령 취임 연설 (부록) 나의 삶 ― 선거운동을 위해 쓴 자서전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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