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머리말(序文) 하이쿠는 자기 고백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소통과 성찰은 필수이다. 25人 129句의 다양한 결과물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다. 1. 토함산(吐含山) 日出과 선도산(仙桃山) 日沒 대한민국 중원의 大田에서 동남의 慶北으로 삶의 둥지를 옮긴지 32년째이다. 매년 새해 텔레비전으로 보던 토함산 일출을 얼마 전 직접 볼 수 있었다.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을 꽤 긴 시간 후에 만난 것이다. 일몰은 다르다. 월성(月城)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강은 천혜의 해자(垓字)이다. 북쪽의 북천 위쪽 시골에 조그마한 텃밭이 있다. 텃밭 일을 마친 후 귀로에서 만나는 일몰은 황홀하다. 일몰의 장관(壯觀)은 한 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임을 확신한다. 때때로 이 황홀한 순간을 같이 하는 귀한 존재가 있다. ひっそりと只乘りの蠅ソウル行き (ひっそりと ただのりのはえ ソウルゆき) 파리 한 마리 살며시 무임승차 서울 나들이 서라벌행 무임승차 파리 한 마리는 예사롭지 않다. 이 외에도 수많은 작은 생명과 자연을 외면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2. 남도기행(南道紀行)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다.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그리고 내륙 곳곳까지. 한 두 차례 해외여행은 덤으로. 이 중에서 네 번이나 다녀 온 곳도 있다. 장보고(張保皐)의 해상왕국 청해진(淸海鎭)이 있었던 남도기행의 꽃 완도(莞島)이다.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에 개설된 후, 문성왕 13년(851)에 철폐되었다. 청해진은 당시 신라를 넘어 당(唐)과 일본(日本)을 잇는 해상교통로의 거점이었다. 당시 이곳은 삼면의 조망이 확 트이고 수심이 깊어 선박의 진출입이 쉬울 뿐만 아니라, 태풍을 피할 수도 있는 천혜의 요새이기도 하였다. 청해진의 본거지는 장군섬으로 불리는 장도(將島)이다. 이곳의 중앙에는 망대(望臺)가 있어 멀리 남해안 일대와 해남과 강진을 지나 당의 산둥반도로 출입하는 바닷길을 감시할 수 있다. 장도의 둘레에는 목책(木柵)을 박아 외부선박의 접근을 막았으며, 섬 자체를 외성(外城)과 내성(內城)으로 나누고 3중으로 축성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청해진의 건설은 장보고가 신라 조정(朝廷)과의 교감을 통한 산물이었다. 조정이 내린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라는 직함을 이용하여 장보고는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권을 장악한 뒤, 국제무역을 하였다. 당에 교관선(交關船)을, 일본에는 회역사(廻易使)가 인솔하는 상선단을 보냈다. 무역 외에도 많은 유민(流民)과 골품제도(骨品制度)로 인한 입신(立身)의 길이 막혔던 인재들이 청해진으로 모여들었다. 장보고 휘하에는 1만 명 이상의 군졸(軍卒)과 상선단이 있었다. 마침내 청해진은 독자성을 띤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희강왕 1년(836년) 서라벌의 왕위계승분쟁에 밀려난 김우징(金祐徵) 일파가 장보고에게 의탁(依託)해 왔다. 청해진의 장보고 세력이 중앙정치에 휘말리게 되었다. 838년 희강왕이 피살되고 민애왕이 즉위하는 정변이 발생하였다. 청해진의 김우징 일파가 장보고의 지원을 받아 서라벌로 진격하였다. 승리한 김우징이 신무왕으로 즉위하였다. 청해진의 장보고 세력은 더욱 강성해졌고, 중앙귀족들은 큰 위협을 느꼈다. 딸의 왕비책봉문제로 장보고와 중앙정부는 심한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중앙정부는 청해진 세력을 정면으로 공격하지 못하고, 846년 자객 염장(閻長)을 보내 장보고를 암살하였다. 장보고의 죽음은 청해진 세력에 일대 타격이었다. 일부 잔존세력의 저항 등을 제거한 후, 851년에 청해진을 파하고 그 주민을 오늘 날의 전라북도 김제의 벽골군(碧骨郡)으로 이주시켰다. 이에 청해진은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고, 장보고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 셈이다. 현재 완도에는 시공간(時空間)을 넘어 청해진과 장보고의 역사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남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넘어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군상(群像)까지 그려 볼 수 있어 그 의미 또한 각별하다. 이 외에도 日本의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와 비교되는 고산 윤선도(尹善道)를 만날 수 있기도 하다. 서라벌과 완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용히 담아보고자 하였다. 就活の十年ぶりに秋はじめ (しゅうかつの じゅうねんぶりに あきはじめ) 취업한 장남 십년 만에 느끼네 새로운 가을 서라벌에서 완도로 간 젊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연령층의 자기 고백이 고백을 넘어 널리 사랑 받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하이쿠는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UNESCO Worl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등록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세계인을 향하여 다음의 4가지 매력을 주창하고 있다. Mass appeal of Haiku(하이쿠의 대중성), Universality of Haiku(하이쿠의 보편성), Peace and Haiku(하이쿠의 평화성), Transcending Education for the Next Generation(차세대를 위한 교육력). 언제나 나의 소망은 한가지이다. 대한민국의 시조(時調) 등도 한반도를 넘어 세계인들과 소통하며, 널리 사랑 받기를 기대한다. 오늘도 나는 그 길에 서 있다. 2017년 6월 12일 한국하이쿠연구원 원장 곽 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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