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서문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유관순 누나가 역사책에서 사라졌다”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북한은 국가 수립” “역사 국정화는 이승만/박정희 우상화 시도”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로 온 나라가 야단이다. ‘올바른’ 역사 편찬의 사명을 짊어졌다고 자임하는 권력층은 “다양성은 사라지고 편향성만 남은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실패로 단정하면서 통일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국정 교과서 체제로 돌아간다고 선포했다. 검인정 교과서들이 다양하지 않아 국정 교과서로 단일화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게다가 21세기가 아닌가. 개성과 창의가 꽃피는 교육을 강조하면서 지난 20세기의 획일화된 교과서로 회귀하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이다. 국정보다 검인정 교과서가 낫다는 유엔이나 헌법재판소의 권고에도 ‘올바른’ 역사에 꽂힌 권력자는 한 치의 미동도 없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비난과 ‘원칙과 결단’이라는 찬사가 도처에서 부딪치지만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과 고민은 부족한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시절이 하 수상할 때는 뿌리로 돌아가 생각해보는 것이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중 하나다.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왜 역사를 공부해야만 하는가. 수천 년 전,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삶과 사건이 도대체 지금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유럽의 대문호 괴테는 “지난 삼천 년의 세월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깨달음도 없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리라”라고 말했다. 그렇다.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기억하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을 역사적 동물이라 부른다. 과거를 잊어버리거나 무시할 때, 우리는 인간이나 민족으로서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역사라는 등대가 없다면 누구인들 제대로 항해할 수 없다. 때로는 불빛으로, 때로는 무적霧笛으로,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돌파하는 좌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역사를 배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이름과 연도를 외우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명실상부한 도구 과목이다. 역사는 타임머신이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 그때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대리 경험하면서 제2, 제3의 삶을 살게 해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헷갈리는 데자뷔d?j? vu와 자메뷔jamais vu 사이를 왕복하면서, 선악을 판단하고 시비를 구분하는 데 뒤죽박죽의 곤란을 겪으면서, 지혜를 갈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지혜는 결국 역사’라는 기준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무엇보다 재미를 준다. ‘태정태세문단세’ 식의 주입식 역사 공부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겠지만, 사실 역사는 참으로 생생한 인간학이다. 조선 시대의 기생들은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 삼국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연애하고 사랑했는지 궁금했던 적은 없는가? 조직폭력배의 원조라고 할 만한 ‘검계’라는 대담무쌍하고 잔악무도한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던 백정이 실제로는 북방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 조상들의 식사량은 어느 정도였는지, 쌀밥이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 우리의 주식으로 자리 잡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사극에 나오는 의복이나 장신구, 음식 등의 고증이 과연 정확한지 한 번쯤 의심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 역사에 대한 이 모든 호기심과 궁금증을 모아 흥미를 일으키고 재미를 선사하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 그렇다고 오로지 괴이하고 신기하고 희한한 괴력난신怪力亂神이나 엽기적인 호사가의 이야기로만 빠져드는 것은 경계했다. 지금까지 역사의 뒤안길에 방치된 다양한 인간들을 통해 위인과 왕조 위주의 무미건조한 교과서적 역사가 아닌, 피와 땀이 흐르고 정과 삶이 통하는 살아 있는 역사 콘텐츠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조상들이 열연한 희로애락의 민족사적 드라마에 묻어 있는 신명의 체취가 오늘날 ‘한류’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 책이 애초의 목표에 얼마만큼 부응했는가에 대해서는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는 말로 갈음한다. 좋든 나쁘든 과거를 통해 현재 생활에서의 과오를 최소화하고 미래를 살아가는 지침을 얻는 것이 역사의 매력이고 동력이다. 그렇기에 꼭 자랑스러운 역사나 올바른 역사관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에서 오늘의 국정 교과서 사태를 예감하듯, 시공을 넘어서는 우레와 같은 메시지로 포효했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하여 지금 이 소란스러운 시대, 현재는 어지럽고 미래는 아득하여 도무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쓸쓸한 시절에, 한민족 역사라는 ‘거대한 뿌리’에 기대 불쑥 튀어나온 이 책을 독자 여러분께 감히 권하고자 한다. 떡국열차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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