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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미학

맛의 미학

이재준, 한의정, 윤영규, 노철환, 최상섭, 최유경

예술공작소 시주라·2016-08-05

  • 210쪽
  • 예술
  • KDC 59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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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맛의 미학|이 재 준 미학자들 사이에서는 ‘맛 味子 미학’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마도 맛과 아 름다움에 해당하는 한자어 味와 美의 우리말 발음이 같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정작 그 우스갯소리가 아예 근거 없는 말 같지는 않다. 맛이라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진정 근원적이라고 할 만한 인간 경험이다. 생명 진화가 시작된 저 멀리에서 말이다. 상상 속에서나마 내 몸의 세 포들을 하나하나 때어 내어 태곳적 물웅덩이로 되돌려 보내면, 오직 하나의 세 포가 물속에서 만났을 그 화학물질이 바로 맛의 처음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우 리는 계속 망각했고 또 소멸했다. 기억할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 대신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내어 그 성분과 구조를 세포 하나하나에 새겼 을 것이다. 어쩌면 몸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이 무엇인 지 알지 못한다.” 이 딜레마가 나를 항상 수고로움으로 내몬다. 여러 번 움직여 야하고, 느껴야하고, 보아야하고, 읽어야하고, 써야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얼마 전에 우연히 바리스타 한 사람을 만났다. 그의 카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온통 커피에 관한 것들로 가득해서 작지 않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내 쪽으로 향 한 스탠드바 위에는 커피를 담은 유리병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고, 그 각각 에는 내게 재배지역을 알려주고픈 레이블들이 붙어있었다. 커피 알맹이들은 옅 은 브라운 색을 띠고 있어서 여느 커피와 비교했을 때 사뭇 독특해 보였다. 가볍 게 로스팅된 커피들은 고유한 향을 살릴 순 있지만 맛이 신 단점이 있다. 예상처 럼 나는 코스타리카 커피 한 모금에서 커피가 쓰다는 상식을 무색케 할 만큼 새 콤함을 느꼈다. 대신 정말 다양한 향기들을 경험했다.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커피의 두 가지 경험을 다시 떠 올렸다. 맛과 향. 홀로 앉아 있는 그에게 몇 마디 말을 붙여보았는데, 풍요로운 향을 얻기 위해 사 람들이 없애려 애쓰는 신 맛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의 등 뒤에 놓여있던 온 갖 도구들은 그가 향기의 차이들을 분별하기 위해 수많은 냄새맡기와 맛보기를 거듭했던 흔적이었다. “커피는 과일입니다.”라는 멋쩍은 그의 말에서 나는 강 한 신념, 열정, 그리고 자부심을 보았다. 그렇다. 세포들이 무차별적으로 반응 한 섬세한 것들, 그 수많은 것들을 대량생산된 맛과 그 기호들로 맞바꿔버렸던 것이다. 나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무수히 많은 그것들을 내가 영원히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내게서 잊힌 그리고 잊은 그 섬세함만이 나를 다시 섬세 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커피콩은 커피과육이 아니며 익은 커피과육이 항상 신 것도 아니다. 그 렇기에 커피콩이 반드시 신 맛을 내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맛이 아니 라 향기에 매료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또 다른 이들은 커피의 쓴 맛과 캐러멜 향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신념이 옳다 하더라도 그가 과연 얼마나 많은 향기들을 변치 않은 채 간직하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커피콩의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 모든 신경세포들의 전위차가 역치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커피를 걸러내는 필 터 못지않은 인식의 필터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커피 성분의 물질적 차이 가 아니라 분별된 기표들의 차이에 의존해서 그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담아내 려 하고 기억해내려 한다. 그리고 또한 어딘가에 전기화학적 신호의 패턴을 감 춰 놓았다가 우연히 끄집어내고는 스스로 놀란다. 맛과 냄새의 기억에는 슬픔과 기쁨이 잔뜩 묻어있어 눈물이 나거나 웃음이 난다. 그러니 결국 붙잡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보내는 것이 미덕이다. 우리는 이 작은 글모음에서 맛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을 다루었다. 은 느낌을 좀 더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래서 느낌은 감각작용 과 구별되었으며, 대상은 기표들의 물질성으로 간주되었다. 미학은 자신의 오랜 역사에서 정신과 물질로 뒤엉킨 감각의 이중성을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그것은 맛의 느낌이 보여주는 몇몇 측면들과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은 맛의 인식론적 조건들로부터 역사상 미학의 조건들을 되짚어보았다. 맛의 느낌은 물질적 요소들과 과학적 규칙들에 따라 작용한다. 느낌이 이러저 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지만,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란 얼 마나 어려지도 잘 안다. 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 다. 좀 더 정연한 설명 말이다. 이 글은 그야말로 느낌에 관한 과학적 설명을 담백하게 다룬다. 하지만 과학적 지식이 패러다임 내적인 정당성만을 가진다는 사 실 또한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는 인공조미료의 기원인 ‘아지노모토’를 통해 산업자본 주의 시대에 맛이 대중적 기호로 재생산된 과정을 해명한다. 그것은 1907년 이 케다 기쿠나에(池田菊苗)가 MSG에 ‘맛의 원소(근원)’을 뜻하는 ‘아지노모토’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동기와도 관련된다. 일반 화학의 지식에 따라 설명될 수 있는 맛은 느낌이 아니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될 수 있는 상품이다. 결국 느낌의 보편 적 소비가 시작된 것이다. 낡은 예술학 사전은 영화를 종합예술이라 쓰고 있다. 일상 경험에서 질적으로 구별되는 몇몇 감각들이 종합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영화가 우리에게 주기 때 문이다. 은 한 영화를 따라가면서 가족사에 얽힌 주 인공의 질곡들을 분리된 감각들의 통합과정으로 풀어간다. 우리가 성장하는 것 은 욕망의 무의식적 운동과정이다. 감각적 기억과 망각은 의식과 무의식의 역학 관계에서 다채롭게 조응한다. 맛의 기억은 그런 것이다. 은 음식의 문화학을 주장한다. 그래서 이 글 은 맛의 외재적 측면들에 집중한다. 음식 재료를 마련하고 그것을 조리하는 일 은 일정한 규칙과 관례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사회적이다. 음식의 노모스 는 축제로, 음주로, 제례로 그 모습을 자유로이 바꾸며, 맛 또한 그러한 경험 방 식으로 제시된다. 맛의 감각에 대해 생각해볼 때도 그렇지만 우리는 늘 감각에 대해 이런 저런 해 석을 해왔다. 그것은 바깥에 존재하는 것에 의해 촉발된 것이기도 하고, 또한 그 반대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과학적 인과론을 벗어던지 고 감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둔다. 그에게 감각이 존재하는 곳은 내적 인 것들과 외적인 것이 묶인 곳이다. 이러한 이중성의 존재가 살이다. 은 맛의 감각이 어떤 것인지를 현상학의 입장에서 살핀 다. 맛은 단일한 감각도 아니며 그것이 의미를 촉발할 때, 즉 의식될 때는 언제 나 여타의 감각들과 공명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술 경험과 마찬가지 이다. 맛의 느낌과 미학의 접점을 더듬고 있는 『맛의 미학』은 프로젝트 아메바의 두 번째 성과물이다. 지난 2015년의 『망각, 기억 없는 신체』은 과도한 충격 경험 속에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망각과 그 윤리적 의미들을 미학의 측면에 서 다루었다. 그 때처럼 이번의 『맛의 미학』도 이라는 문 화예술기획과 함께 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이 책의 제2부에 수록되었다. 2016년 여름 이 재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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