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머리말 겉만 보면 별 문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보인다. 만남과 소통은 피상적이며 겉-치레와 겉-짓 속에 겉-돈다. ‘사람크기’, ‘삶의 크기’는 자연스럽게 ‘물질크기’에 환원되고, 나와 너 혹은 위와 아래의 사이는 곳곳에서 ‘잘못 나뉜다’. ‘물질 중심주의’ 속에 ‘나 중심주의’와 ‘위 중심주의’가 몸과 맘에 배어, 작거나 다른 것은 부정한다. 외적인 ‘큰 크기’만 올려보고 끌어들이는 함께의 모습일 때, 일방과 폭력, 무시와 배제, 독선과 불신은 쉽게 일어난다. 그리하여 형제와 부자, 부부, 친구 사이에서조차 빈번하게 물질크기를 앞세우면서 만남의 모습은 한없이 일그러진다. 그러므로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상대의 말과 행동에 쉽게 화(火)와 짜증을 내며,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한다. 인자한 이웃집 아저씨가, 일자리를 제공한 사장님이, 일자리에서 쫓겨난 동료가 성폭력자로, 살인자로 돌변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들에게 ‘인’(仁) 자와 ‘님’ 자, ‘동’(同) 자를 붙여왔다. 지(智)와 덕(德)을 쌓고 정서를 함양하며 ‘사람을 만드는’ 신성한 배움터에서 학생들은 학생들을 놀리고 때리고 속이고 빼앗고 급기야 죽게 한다. 다르다고... 약하다고... 그리고 집안에서는 배우자에게, 자식에게 그리고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살해까지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집밖에서는 정치와 경제를 시작으로 ‘갑질’과 ‘얼렁뚱땅’이 관행이다. 군대나 일터는 예외인가? 유치원이나 대학은? 또한, 남들을 내다-보면서 자신을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남들도 나를 많이 내다보듯이, 나도 남들을 많이 내다본다. 나의 삶인지 남의 삶인지도 모를 만큼 남들을 많이 내다보지만, 남들과 잘 소통하지는 못한다. 이런 경향은 - 특히 위아래로 - ‘너무 나뉘는’ 곳에서 강화된다. 남들을 많이 보는 눈은, 남들을 많이 이야기하고 간섭하는 일로 이어진다. 간섭은 많지만, 배려는 모자라다. 경청과 이해, 배려는 잘 못하면서도, 시선과 관심이 남들에 많이 향하는 신기함이다. ‘만남과 소통의 바른 법’이 아니다. 예(禮)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온 나라가 ‘세월호적’이라 해도 크게 지나친 판단은 아닌 것 같다. ‘비이성적’인 소통문화 속에 함께의 크기와 사람의 크기가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나만 사람이려 하거나 강자와 주류(主流)만 사람일 수 있을 때, 남들이나 약자, 소수는 보이지 않게 된다. 보여도 사람이나 목적이기보다 사물이나 수단으로 보이면서 폭력과 배제의 갑질 소통, 아니, 갑질 불통은 쉽게 일어난다. 위로서, 다수로서 힘 있는 자들이 나 중심주의 속에 힘 없는 자들을 일방적으로 만나는 ‘함부로 함께’ 내지 ‘제멋대로 함께’가 자연스러울 때, 작아지는 함께 크기 속에 피해자는 물론, 결국은 가해자의 사람크기도 크게 작아진다. 무엇보다 같음에 갇힘이 생각크기, 인성크기를 작게 한다. 가치에서든 사실에서든 나에 갇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이 다이고 나의 입과 배, 욕정이 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명예욕 등이 더해지면서 나 중심주의는 더욱 복잡해진다. 다가 다가 아니라 하나의 부분이 다로 되니, 다른 부분들은 안 보인다. 사람이든 생각이든, 다름이 안 보이는 속에 다름에 대한 무시와 폭력, 경시와 멸시가 일어난다. 만남이되 밀어-내는 만남이요, 함께이되 겉-도는 함께이다. 그러니 ‘따로 함께’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이익이나 앎, 신념, 감정에 붙들리거나 이를 관철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만 키우려 한다. 목소리만이 아니다. 팔 굵기, 인맥, 차 크기, 지위, 무서운 눈 뜨기, 문신, 주먹 쥐기 등을 내보이며 자신의 ‘옳음과 그름’, ‘앎과 모름’ 내지 ‘예와 무례’의 지식을 보인다. 자신에 갇히고 붙들려 남들을 함부로 대하는 속에 다름들이 깃들 자리는 매우 좁아져, 배려나 관심, 적어도 비폭력의 ‘내적 크기’는 등한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의 언행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며,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와 함께할 가능성은 아주 작아진다.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에게는 ‘칭찬받을 만한 성질들’이 ‘덕’(德)이고, 중세의 토마스(Thomas, 1225?~1274)에게는 ‘자연스런 경향’이 ‘덕의 시작’이다. 모두가 거대한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 쫓고 쫓기는 삶에서 여간해선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잘 구분이 안 될 때도 많다. 사람-이기, 함께-이기, 나-이기가 쉽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Pope Francis, 1936~) 신드롬의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세월호도 교황 신드롬도 과거형이 아님을 안다. 이거는 아니다. 여기에서 ‘이거’는 있는 현실이다. 있는 현실을 아니라 함은 있는 것이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러니 글자 그대로 보면 모순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방관해서는 안 되고, 이를 넘어 이것이 아닌 상태를 찾아 현실이 되게 하여야 한다는 표현의 압축이다. 있는 현실을 없게 하고, 없는 현실을 있게 하자는 뜻이다. 폭력 있음과 죽임 있음, 갑질 있음과 얼렁뚱땅 있음을 없음의 상태로 만들 때, 사람크기, 함께의 크기는 커진다는 뜻이다. ‘아니다’는 부정의 말이요, 비판의 말이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함께 가운데 ‘아닌 함께’를 찾아내어 말하는 일이다. 이것이 비판(批判), 크리틱(critique, Kritik)의 본질일 것이다. 비판력은 문제를 제기하고 드러낼 수 있는 힘이자 좋고 나쁨과 이고 아님을 가릴 줄 아는 이성능력이다. 그러니 문제 있는 삶, 문제 있는 세상에서 문제를 가릴 수 있는 비판력이 빛난다. 고대그리스어나 라틴어에서 유래하는 크리틱은 판단(判斷)하기, 분리하기의 뜻을 갖는다. 크리틱은 무엇보다 이고 아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갈라내는 일이다. 또, 비판(批判)의 비(批) 자에는 크고 작음, 옳고 그름의 ‘견줌’(比)의 뜻이 있으며, 판(判) 자에는 물론 판단(判斷)과 가르기의 뜻을 갖는다. ‘견줄 비’(比) 자는 두 사람이 오른 쪽을 향하여 나란히 서 있는 모습( )을 나타낸다. 가르기는 가리기의 시작? 감추는 가리기가 아니라 드러내는 가리기... 국민이, 학자가, 문필가가, 예술이, 종교가, 검찰이 각자의 방식으로 가리고 비판한다. 비판 받을 일이 없는 세상이어서든, 비판할 수 없는 정신이어서든, 비판 없는 세상은 마비되어 일종의 ‘다름 없는’, ‘다를(1) 수 없는’ 그리하여 동시에 ‘같을(1) 수도 없는’ 세상이라 할 것이다. ‘어떻게’가 문제이다. 비판은 개선의 가능성을 인정함을 전제한다. 어차피 개선이 불가능하다면 비판은 무의미할 것이다. 다행히도, 아님을 판단해 내고 아님에 ‘No!’를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노자(老子, ?~?)는 그 중 하나다. 노자는 ‘하급 지식인들은 도(道)를 들으면 큰 소리로 비웃는다.’고 한다. 이들이 비웃는 노자의 도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큰 ‘다른 생각’임에 틀림없다. 이들이 모를 뿐이다. 아니다. 모를 뿐 아니라, 배척한다. 일종의 지행합일일까? 세상에는 두 종류의 노자가 있는 것 같다. 노자는 ‘없을 무’(無) 자, ‘아니 불’(不) 자를 써서 기존의 경직되고 갇힌 생각방식이나 가치관을 부정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간다. 노자는, 보통사람들이 기존의 생각방식이나 행동방식과 ‘그냥’ 같아지려 하면, ‘No!’를 말한다. 이렇게 같음에 ‘No하는 사람’들이 ‘No-子’로서 ‘노자1’이다. 반대로, 노자가 No로 부정하려는 우리들의 대부분은 인습에 갇혀, ‘더 사람’이나 ‘더 함께’의 ‘더’나 새로움을 찾아 기존의 생각이나 행동의 방식과 달라지려 하면, 서슴없이 No를 말한다. 그렇다. 이들도 노자는 노자다. 다만, 다름에 No를 말하는 이들을 ‘노자2’라는 이름으로 ‘노자1’과 구분하려 한다. 같음에, 기존에 혹은 인습에 갇히는 ‘노자2’적 사고와 가치는 삶의 크기를 크게 작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문자 그대로, ‘늙은이’라 불릴 수 있는 노자가 기존의 생각방식이나 가치를 끊임없이 뛰어 넘으려는 혁신과 창조의 ‘젊은’ 자세는 이 시대, 이 땅의 교육이나 정치, 경제, 문화, 생태, 종교 등 모든 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자1의 늙은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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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책을 펴내며 머리말 1장. 소통 않고 살 수 있을까? 1. 만나야 산다 나뉠 수 없다/또 만나고 더 만나야/만남과 떠남은 서로를 전제하고 2. 만나면 소통한다 탁구공도 탁구선수도/막힘없는 흐름/소통의 두 의미/함께 나누기 3. 삶은 소통이다 한숨 아닌 ‘큰 숨’/밥 길, 말길/다-사람, 다-입/없-음들만 있-으니/탈-폭력 2장. 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1. 나의 입만이 입이다 당신만 힘들어?/너는 아니다/자꾸 원위치/너무 달라서이고 너무 같아서이다 2. 위의 입만이 입이다 어른을 가르치려 하느냐?/10 ~ 20kg/반만 나-서라/위아래로 나누어야/누르고 눌리지 않는 위아래 3. 죽어 살아라 이런 데서 일하는 주제에/각자 제자리로/움직임 아닌 움직임 4. 따라다니는 따돌림 왕따 무시하고 때리고 따돌리고/무전(無全)유죄/누가 더 장애인? 5. 자신의 뜻이 국민의 뜻이라네 고의 아닌 것처럼 고의로/민객(民客)일수록 민주(民主)라네/자꾸 사정하여 채용했더니 6. 남들을 내다보는 과도한 시선 보느라고 고생, 보아져서 고생/다른 사람이 나라고?/우리 요새 신혼이잖아/크게 보이기, 작게 보기/없는 속도 있는 겉-처럼 7. 얼렁뚱땅의 미학 슬그머니 그러나 재빨리/‘공주 밤’만 있네/또 이름표가 문제/친구 형인데/가리키고(指) 이끄는(導) 사람들/감추는 보임/‘공주 밤’들은 부지기수/중의법의 힘 3장. 불통이 자연스런 시대 1. 수직주의적 예문화 전통 잘 오셨어요/빼고 더하고 강조하고 비트는 힘/다른 옷의 같은 수직분리/쿨투어(Kultur)가 나투어(Natur)로 2. 물질크기로 쫓고 쫓기는 외로운 길 지쳐도 있고 의심도 가고/미래 같은 과거/꼼짝없이 꼼짝 못할 수밖에/모두가 적이네 3. 대신 생각해주는 전달교육 일방적으로 받아서/같은 생각하기/졸업 후에도 4. 우리에 갇힌 우리들 같은 가족이지만/수상한 강조/나눔이 나눔을 방해하네 5. 다수와 같아져라 일제히 제일만/다른 문화들도 다 문화면 다문화/‘작은 다름’만 배제 6. 반도, 섬보다 더 섬 우물 밖의 우물 안 개구리/반도의 반(半)도 하나의 우물 4장. 소통 열음, 인성 열음 1. 배제의 ‘배’에서 배려의 ‘배’로 ‘정말 같은’ 사람은 아니라고?/다 나이고 다 너이다/밀어-내기, 끌어-들이기 2. 역지사지 그리고 여행 갑돌이가 아니야, 갑순이야/만남과 떠남은 서로를 전제하고/역지행지(易地行之)로/다름 만남 여행 3. 같음과 다름 사이 다를 수 있는 같음, 같을 수 있는 다름/‘갑-질’, ‘을-질’/‘둥근 나란히’ ‘병-질’(竝-)/수직적, 수평적 같음과 다름/안에서 밖이기 4. ‘이통치통’(以通治通)의 소통 공간 시대의 요청이다/같이 생각하기/생각 열음, 생각 나눔, 생각 키움의 마당/실천 맺음말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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