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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제16회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2016 제16회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신동옥 외

새봄출판사·2016-10-29

  • 104쪽
  • 문학
  • KDC 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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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수상 소감 시론집 원고를 탈고한 것은 지난봄이다. 책머리에 썼다. 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은 “우리가 시를 쓰고 과학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해서 이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별개의 세계에 속한 것이고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하나의 세계 일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일종의 신비화이다.”(『신경생물학과 인간의 자유』, 강신욱 옮김, 궁리, 2010, 38~39쪽)라고 말했다. 정의할 수 없으므로, 논리를 동원해서 변증하기 곤란한 것들일랑 우리가 살아내는 마음과 몸의 세계 바깥의 어딘가에 괄호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손쉬운 해결책일 수도 있다. 시는 인간의 ‘몸-마음’의 연결고리 안팎 어딘가에 신비한 방식으로 ‘실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화된 통념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에 대한 사유를 중단시키려는 일종의 사술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인간을 규정짓는 조건들에 대한 사유를 포기한 대가로 얻은 대답이기 때문이다. 설은 ‘인간’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필요조건으로 여덟 가지를 든다. 의식, 지향성, 언어, 합리성, 자유, 사회 및 제도, 정치, 윤리가 그것이다. 나는 시를 정의할 용기도 없고, 지혜도 없다. 대신 설이 말한 저 여덟 가지 조건들에 관해 시로 품은 물음들을 풀어낸 소박한 궁금증으로 내 방식의 ‘오답’에 다가서고자 했다. 위로와 공감 내지는 연대와 해방적 실천의 가능성으로 ‘신비화’하기에는 시에 대해 묻고 싶은 것들이 아직 차고 넘친다. 시는 여전히 인간을 규정짓는 조건들 주변에서 사유되고, 인간이 살아내는 몸-마음 조건의 연결고리 안팎에 오롯이 실재하는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묻다보면 맨 처음 행과 연을 나누어 말을 한 사람은 누군지, 처음으로 문장을 이어 붙여 글을 쓴 자는 누군지, 글은 무엇에 관한 말이었는지 묻게 된다. 프로이트는 썼다. “모든 인간 속에는 시인이 숨어 있고 마지막 인간이 사라질 때 마지막 시인도 사라진다.” 친구들은 내가 ‘당연한 말을 당연한 방식으로’ 한다고 핀잔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시에 다가서는 것은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 상상력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곧장 미학을 향해 질주하기도 할 것이다. 내가 적어 내려간 문장 역시 그들이 열어젖힌 가능성에 빚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고 더디더라도 차근차근 처음부터 물어가는 것, 끝까지 사유하고 끝까지 느끼려는 악전고투 속에서 받아 적는 것이 내 몫의 시라는 것을 안다. 위악과 자기연민 속에서, 등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5년이 걸렸다. 조금은 담대해진 마음으로, 시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15년이 걸려서 마흔이 되었다. 누구나 한번쯤 꿈꿀 ‘우연’을 ‘상’으로 주신 심사위원 네 분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자신의 시를 지키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집필에서 발표와 출판으로 이어지는 생산조건에 관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정, 그리고 자신의 시를 둘러싼 평가를 재생산할 수 있을 최소한의 독자. 나머지는 건강과 우연의 몫이다. 그러니 시를 통해서 혁명적 실천을 이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모두 기망이다. 그러나 마법과 같은 우연이 ‘격려’의 이름으로 주어진다면 힘을 받을 수 있겠지. 예술가를 예술의 파멸로 이끄는 자기연민에서 벗어나는 수도 있겠지. 노작문학상은 내게 그런 ‘우연’의 이름으로 주어진 필연의 다른 꿈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 올린다. 물론 노작문학상은 ‘勞作’문학상이 아니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다섯 편의 작품 역시 ‘勞作’이 아니다. 시가 되기 전에, 시인이 되기 전에, 언어가 되기 전에 결국 한 인간으로 살아간 그이의 민낯이 저 스스로 시가 될 것을 안다. 피와 땀으로, 몸이 담기는 그릇은 결국 언어라는 물질이다. 자신의 삶을 고백하지 못하고 죽은 허다한 시인들, 전쟁이나 혁명 부근에서 삶에 대해 증언하기를 그치고 만 시인들 그리고 여생을 침묵으로 일관한 시인들에 비하자면 홍사용의 삶은 어쩌면 외침으로써의 삶에 가까울 것이다. 약관 근방의 ‘흑방黑房’ 시절을 건너, 신극운동과 민요시 운동을 건너 고전 연구에 매진하다 삶을 마감한 노작의 일대기는 ‘침묵과 훼절’이 드물지 않은 근대문학사에 남은 귀한 ‘외치는 자’의 표상이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 상은 언제까지가 될지 모를 ‘시인으로서의 삶’에 내리는 당부의 서판일 것이다. 이 빈 서판에 시와 삶을 올곧이 깎아 넣기 위해 매진할 것을 약속드린다. 폭염이 계속되면 저수지 수문을 며칠이고 열어둔다. 물이 빠지면 고기 아니면 진흙이다. 물이 모두 빠진 저수지에는 어린아이만한 잉어와 장어가 뒹굴고, 온갖 자잘한 생명들이 진흙 속에 머리를 쑤셔 박는다. 포대와 갈쿠리를 들고 인간들은 그걸 또 잡는다. 물이 빠진 저수지에는 생명이 씨가 마를 것인가? 저수지에는 관정과 우물이 있다. 지름이 1~2m는 될까? 긴 대롱모양으로 깊이 뚫어놓은 관정 속으로 고기들은 몰려들겠지. 가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관정 바닥에 머리를 박고 숨을 쉬겠지. 어린 시절에는 물 빠진 저수지에서 민물장어를 잡아다 팔았다. 진흙을 밟아 숨구멍을 막으면 장어가 머리를 내미는 거다. 손을 갈퀴 모양으로 만들어 잡는다. 어른 팔뚝만한 장어를 잡았다. 내가 머리를 친구가 꼬리를. 저수지 아래 친구 집으로 갔다. 친구의 엄마가 식칼로 장어를 두 동강 냈다. 그날 핏물이 뚝뚝 듣는 손바닥만 한 장어꼬리를 움켜쥐고 산을 넘어 집에 갔다. 핏방울이 떨어지는 장어꼬리를 어디에 쓸 것인가? 도시에 가정을 꾸리고 살게 되었다. 불현듯 그날의 난감함이 치밀어오를 때가 있다. 내가 사는 곳은 강북구 미아5동(송천동) 재개발지구다. 낮은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좁은 골목을 만든다. 모두가 노인 아니면 어린 아이다. 누군가는 이 골목을 제발 가만히 두라고 시를 썼지만,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될 지경이다. 이곳에는 버려진 개와 고양이와 오소리와 들개가 모여들어 사람과 밤낮을 바꾸어가며 살고 있다. 지구대 하나 가까이 없는 골목 곳곳에서 소년과 소녀들은 무리를 지어 담배를 태운다. 밤 11시가 넘으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불을 끄고 침묵을 켠다. 병원은 멀어 노인들은 골목에서 병든 몸을 재활한다. 치안은 멀고 행정은 남의 나라 일이다. 비관적인가? 낙관적이지 않을 뿐이다. 그곳에서 두 살배기 딸 ‘열음(烈音)’과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세 몸의 삶을 연구하며, 세상에 대해 할 말, 못할 말을 적어도 문장으로만은 구분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순천 부모님, 삼각산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한양대 선생님들과 동학들에게도 인사 전한다. 축하 인사 건네준 모든 분들께도 지면으로나마 답례를 올린다. 결혼을 하며 시를 쓰는 모습은 보이지 않겠노라 약속을 했었다. 아내가 고치란 대로 고친다. 아내는 이제 내 시-삶의 전속 비평가가 되었다. 열음에게도…… 네 몫으로 주어질 더 나은 삶을 향한 꿈을 버리지 않겠노라, 아빠가 약속하마. 오래 멀리 가겠다. 오늘의 우연을 필연으로 바꿀 수 있도록 시를 살겠다. 그리고 이 우연에 얹힌 인정과 기대를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 - 신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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