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저자의 말 이 글의 주인공은 물론 두말할 것도 없이 김일성이다. 1945년 ‘8 · 15 광복’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가 독재정권을 세우고 1950년에는 ‘6 · 25 한반도전쟁’까지 일으켜 자기 동족 수십만을 학살하였던 인물. 김일성의 죄행들은 이미 세상에 알려질 만큼 알려져 있다. 그 뒤를 이어 아들 김정일과 손자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3대째 정권을 세습하면서 북한이라는 나라를 세계에서 제일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로 만들고 2천만에 달하는 북한의 인민들을 헐벗고 굶주리게 만들고 있는 죄악의 괴수로서 김일성을 지목하는 데는 아무런 이의도 없다. 어쩌면 김일성 본인도 자기가 저질러온 죄행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북한 당국이 오늘날까지도 그렇게나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를 정성 들여가면서 위조하고 왜곡하여 날조하고 있는 행위에 대하여 여러 가지의 의미로 해석한다. 그 가운데서도 주요한 것은 바로 자기들이 저질러왔던 그 많은 범죄와 죄행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데에 목적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이다. 즉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또 그 규모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자기들이 이러한 권력을 세습하고 있는 것 자체마저도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 때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 유훈으로 변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했던가? 과연 김일성은 북한에서 선전하고 또 김일성 본인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조선의 항일혁명을 주도하고 승리로 이끌어왔던 위대한 영웅이었을까? 아니면 남한에서 매도하고 있는 것처럼 ‘가짜’까지는 아니더라도 형편없이 보잘것없는 그런 미미한 존재였을까? 이에 대하여 정말 자세하게, 그리고 실사구시하게, 남, 북한 어느 한 쪽으로도 편향하지 않은채로 공정하게 대답하고 있는 책을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동안 김일성에 대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또 특별히 항일투쟁사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집필하였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의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과 같은 논문도 나왔으나 그 정도의 자료만을 가지고는 김일성의 본래 모습, 즉 ‘쌩얼’을 목도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외에도 임은(林隱)의 『김일성왕조비사』나 서대숙(徐大肅)의 『김일성』 그리고 또 김찬정(金贊汀)의 『비극의 항일빨치산』 같은 책들도 더러 나온 것을 알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읽어보면서 내가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미흡한 점은 바로 김일성과 관련한 실제 연고자들의 회고담을 하나도 제대로 채취하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이었다. 여기서 내가 지칭하는 연고자들이란 결코 김일성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가 이 정권을 세우는 데 한몫씩 했던 ‘항일빨치산투쟁의 참가자’들이 아니다. 김일성의 우상숭배에 동참하여 전반적으로 항일투쟁사를 위조하고 있는 북한의 연고자들은 누구도 과거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반면에 김일성을 따라 북한으로 들어가지 않고 중국에 남아버렸던 대부분의 연고자들은 하나같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특히 중국인 연고자들은 그냥 사실만을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김일성의 과거사에 대한 현실에 몹시 불쾌해하며 가능하면 김일성과 북한정권에 의해 위조되고 날조되어 있는 이런 사실들이 제대로 바로잡혀지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한 중국인 연고자의 가족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김일성이 일본군 한 놈을 죽여 놓고 열 명을 죽였노라고 거짓말하는 데 대하여 아무런 의견도 없다. 열 명이 아니라 백 명을 죽였다고 거짓말해도 상관이 없다. 다만 자기가 하지 않은 일, 남이 한 일도 자기가 한 일이라고 거짓말하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다. 이것은 도적질과 같은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그들을 취재할 때마다 반드시 바로잡아드리겠노라고 약속했었지만, 어느덧 20년이 넘도록 실현하지 못하였다. 일단 준비 작업을 진행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였다. 1993년에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처음 나오기 시작하였을 때까지도 나는 첫 1권과 2권을 읽고 별로 이의를 제기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집중하여 조사연구를 진행하였던 부분은 김일성의 항일투쟁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가 장악하고 있었던 자료들은 주로 김일성이 중국 공산당 영도하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 부분에 대한 자료들은 중국에서도 발굴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때까지의 중국 자료들은 대부분 김일성에 대하여 함부로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것을 회피하였다. 그렇기에 거의 대부분의 자료들에서 김일성을 ‘김모모’로 대체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그 ‘김모모’가 바로 김일성이라는 것은 이미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조금만 연구를 진행하여도 이 ‘김모모’의 항일투쟁사와 당시 북한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명성을 드높이고 있었던 ‘항일의 명장 김일성’의 항일투쟁사와는 서로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아주 많다는 것을 금방 밝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김일성이 아무리 북한의 국가주석이 되었고 또 중국의 국가 지도자들이었던 모택동, 주은래 등과 아주 친하게 지냈더라고 해도, 국가적인 조치로도 입단속이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이 중국에는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그들과 직접 만났다. 그리고 이 책의 많은 자료들이 주로 그들의 회고담 속에서 나왔다. 『세기와 더불어』의 제3권과 4권이 나왔을 때 나는 북경에서 직접 이형박과 만나 이 회고록속의 몇 가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고증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김일성 본인이 회고록 제3권에서 “주보중의 요청으로 제1차 북만원정을 진행하였다.”고 한 고백은 전혀 사실에 들어맞지 않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후에 또 만난 당시의 연고자 종자운이 직접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의하면 ‘민생단’으로 몰려 당장 처형 직전까지 갔던 김일성을 주보중이 있었던 영안(북만주)으로 피신시켰던 사람은 당시의 동만주 특위위원 겸 왕청현위원회 선전부장이었던 왕윤성(王潤成, 馬英)이었다. 당시 왕윤성은 마영(馬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으며 동만주의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동만 특위 마영’이라고 하면 당시의 특위 서기였던 동장영 못지않게 유명한 인물이었다. 김일성을 체포하려고 나자구까지 쫓아갔던 ‘민생단숙청위원회’의 조직원들이 당시 종자운을 만나 김일성을 내놓으라고 요청하자 종자운은 “김일성이 새 근거지를 개척하려 북만주 쪽으로 나갔는데 통제가 되지 않으니 후에 다시 보자.”고 하면서 왕윤성을 도와 김일성을 빼돌리는 데 협조했다고 한다. 이 일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던 김일성이 후에 중국에 방문을 왔을 때 직접 종자운을 찾아가 그때의 일을 회고하면서 감사까지 드렸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또한 『세기와 더불어』는 제3권부터 눈 뜨고 보아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여기저기를 위조하고 날조한 것도 모자라 제4권에 들어가서는 일본군 토벌대 사진을 잘못 올려놓고 토벌대를 항일유격대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착오는 비단 김일성의 회고록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의 항일투쟁사 박물관에서까지도 범하였던 엄중한 실수들이었다. 김일성과 북한 당국이 ‘밀영에서의 항일유격대’라고 소개한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또 확대하여 보면 사진 속의 군인들이 어깨에 달고 있는 견장과 모자에 붙어있는 별들이 모두 그들이 일본 군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실제로도 이 사진은 최현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돈화현 경내의 우심정자 밀영을 토벌한 일본군 노조에 쇼토쿠 부대의 대원들이 남긴 기념사진이었다. 『세기와 더불어』를 제4권까지 읽고 나서 나는 이와 같이 틀린 사실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놓는 작업을 진행하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솔직하게 고백하는 말이지만 나는 처음부터 김일성에 대하여 폄하하거나 또는 그를 과소평가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아직도 나는 개인적으로 1945년 ‘8ㆍ15 광복’ 이전의 김일성에 대하여 상당 부분에 걸쳐 호감을 갖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가 하지 않았던 남의 한 일도 자기가 하였노라고 거짓말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차마 보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1990년대까지 중국에서 살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런 일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죽을 둥 살 둥 이런 작업을 진행하여 보아야 어디에서 발표해줄 신문이나 잡지도 없었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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